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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예수의 좋은 병사여, 함께 고난을 받으라(2)

사진: Pixabay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우리는 각자 모두 바쁜 삶을 살아갑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청년의 때에 그 많은 시간 뭐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지금 자기 나름대로 바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갈수록 일이 더 많아지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남는 것이 수고와 슬픔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시 90:10).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은 분명한 방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 스스로도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고전 9:26)

그리스도인은 달려가야 할 목표가 있고 싸움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고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병사로 징집된 목적이며 삶이라는 경주의 목표이고 날마다 싸우는 영적 전쟁의 목적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병사가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선언합니다.

병사로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다!

맞는 말입니다. 취미로 낚시를 즐기거나 매일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 병사를 본 적이 있습니까? 군사적인 유익과 맞지 않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수시로 진영을 벗어나 원하는 곳에 마음껏 드나드는 것이 가당한 일입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병사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그 목적과 어긋나는 그 어떤 일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번역한 것처럼 “자기의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를 군영 생활의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한 가지 뚜렷한 목적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 목적을 벗어난 다른 것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취미나 쉼을 누리더라도 그것이 군인이 갖는 한 가지 목적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 개인의 생활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철저히 희생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 종종 간첩으로 활동을 하다 잡힐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독약을 몸에 품고 있는 등장인물을 봅니다. 자기 목숨까지도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끊어버리는 것이 군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병사에게 요구되는 것이 절제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병사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자기 사생활을 즐기라고 모집된 것이 아닙니다. 병사는 철저히 통제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약을 받습니다. 한 가지 뚜렷한 목적을 위해서 먹고, 자고, 걷고, 움직이고, 행동하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에게 절제가 요구된다는 사실은 바울이 다른 말씀에서 경기를 비유로 들어 이미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썩을 상을 위해서도 고통스러운 자기 절제로 피나는 훈련을 하는데, 썩지 않을 상을 위해서 다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왜 이리 힘들고 고달픕니까? 세상 사람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 분명한 이유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절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하고 싶은 것 실컷 하면서, 즐기고 싶은 대로 즐기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먹지 말라는 것을 피하고 마시고 싶은 것도 멀리하고 마땅히 단정한 옷을 입고 주가 기뻐하시는 일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주의 영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즐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니 더 힘이 드는 것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윤택하고 명료하게 만들어줄 하나의 비결을 소개하기 원합니다. 절제하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지 않은 개인의 사사로운 일을 과감히 끊어 버리십시오. 이도 저도 아닌 삶에서 갈팡질팡하지 말고 이제 분명하게 하나의 목적에 사로잡힌 삶을 선택하십시오. 과감하게 내 삶에 얽매여 있는, 그래서 그리스도의 병사로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더디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십시오.

언제까지 인터넷과 씨름하실 생각입니까? 언제까지 웹툰이나 게임에 빠져 세월을 낭비할 것입니까? 인기 있는 영화마다 다 봐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검색순위에 오르는 사건과 사고에 대해 내가 바로바로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패션에 선두주자가 될 필요도 없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것을 나도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매년 새로 하고 계속해서 실패하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할 이유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감한 절제입니다.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병사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삽니다. 언젠가 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으로 좋은 병사가 될 수 없습니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과감한 절제를 배울 때 병사는 그 목적에 걸맞은 능력을 갖춥니다.

그렇다면 그 한 가지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누가 우리를 병사로 모집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 바로 그리스도 예수, 그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기 위한 목적, 그 한 목적을 위해 먹고 마십니다(고전 10:31). 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나 죽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입니다(롬 14:8).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한 가지 목적입니다.

잠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지도 감사하지도 않게 된 사람을 자기 아들을 주시면서 구원하신 이유는 바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창조와 구원의 목적 모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영광을 통해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신다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요 17) 우리는 결론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의 병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쉽게 “그럼요. 당연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지요”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살았습니까?

병사에게 있어 국가의 안전과 평안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은 삶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가 먹는 시간과 먹는 음식의 종류와 일어나고 자는 시간을 비롯하여 모든 행동방침에 관여합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병사의 사적인 감정이나 생활은 과감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일상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계속해서 꼬리표처럼 한 가지 질문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할때 따라 붙을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는 일인가?
과연 이것이 그리스도가 기뻐하실 일인가?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 질문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속삭입니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지 나쁜지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이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관해도 좋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 아담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군사로 모집한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사가 되었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떻게해서든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기 원합니다. 쓸모없는 군사로 전락시키려합니다. 우리가 허송세월 보내도록 태초부터 응집된 모든 계략과 무기를 사용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자기의 사사로운 일에 얽매여 그리스도의 병사로서 분명한 목적을 위해 사는 일에 전념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합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병사가 주적으로 삼는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따라 우리를 얽매는 모든 것을 절제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한 자, 그는 그리스도의 훌륭하고 떳떳한, 나무랄 데 없는 병사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칼럼 시리즈를 권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권위가 있다면, 그래서 확신 가운데 믿고 그 권위에 철저히 굴복해도 좋은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와 동등한 권위를 가진 아들을 통해 그 권위를 내려놓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군사로 모집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권리를 내려놓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권위는 은혜롭고 온유합니다.

이 사랑의 권위는 언제나 믿고 따를 수 있는 권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인생이 가장 값지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바로 이 권위에 온전히 굴복할 때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로서 철저하게 이 권위에 굴복하며 살기 위해 절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복종하고 싶어 하는 다른 세상의 권력, 재물, 인기, 명예, 인정, 정욕과 방탕함을 절단해버리고 오직 한 목적, 그리스도의 영광을 붙잡기 위해 방향을 가지고 뛰어야 하는, 목적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병사입니다.

다시 한번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여, 내 전우여, 이제 함께 고난을 받읍시다.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철저히 자신을 절제하고 얽매는 모든 것을 뿌리칩시다. 우리를 불러모은 그분 앞에 승전보를 전합시다.

당신의 능력과 은혜로 우리가 승리했으니 모든 영광을 당신께서 취하시기를 선한 싸움 다 마치고 주의 면류관 받을 때 당신께 그 면류관 돌려드리며 함께 승전가를 부르리라!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예수의 좋은 병사여, 함께 고난을 받으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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