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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의 젊은 선교사, 베트남 부족 마을로 들어가다”

▶ 베트남 고원지대 쟈라이성의 풍경(출처:awl 캡처)과 쟈라이 민족의 민속악기 연주 모습(출처:vietnamnews 캡처)
▶ 베트남 고원지대 쟈라이성의 풍경(출처:awl 캡처)과 쟈라이 민족의 민속악기 연주 모습(출처:vietnamnews 캡처)
▶ 베트남 고원지대 쟈라이성의 풍경(출처:awl 캡처)과 쟈라이 민족의 민속악기 연주 모습(출처:vietnamnews 캡처)
베트남 선교 열전(4) – 베트남 전쟁 전후시기 선교 이야기

이 연재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베트남에 입국한 찰리, 에그롱 선교사 부부가 전쟁의 참화 가운데에서 복음의 통로가 된 과정과 베트남 주민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대하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베트남의 현대 선교사(史)를 엮은이들의 회고록 ‘베트남에 사랑을 담아’(To vietnam with Love)의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번역은 익명을 요청한 L선교사의 도움을 받았다. <편집자>

매일 산에서 제(Jeh)족들이 내려왔다. 우리는 제족 난민들을 위한 약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얼마 후 우리가 찾으려했던 제족이 그 산의 다른 쪽에 산다는 것을 알았다. 곧 관청에 입산 허가를 신청했지만 디엠 정권(응오 딘 디엠 대통령)의 정치와 종교 상황이 맞물려 허락받지 못했다.

나는 제족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서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보고서를 썼다. 이전에 산 속을 동행했던 방위군들 중 6명이 살해당하고 16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제 그들과의 동행도 안전하지 않았다. 선교부에서는 우리를 케산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때 나는 24살이었다.

‘짐 싸고 떠나고’ 를 반복하며

케산은 브루(Bru)족 중심의 베트남인 마을로, 베트남 북쪽 국경과 라오스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는 5월이 되어서야 짜미 마을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짜미에서의 시간이 길지 않았던 것처럼 케산에서의 생활 역시 그랬다. 거주허락을 받지 못해 2주가 되기 전 철수해야 했고, 선교부에서는 우리를 다시 쟈라이 족 마을 쁠레이꾸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케산은 1948년부터 CMA교단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쟈라이(Gia rai, Jarai) 족이 많이 사는 쁠레이꾸 지역에는 아직 서양 선교사가 없었다. 우리는 짐 싸고 떠나고, 또다시 짐 싸고 떠나고를 반복했다. 덕분에 일찍부터 선교사들의 삶을 배우고 있었다. 한 지역에서 오래 사역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주기적으로 자주 삶을 옮길 준비를 하는 것이 더 편했다.

1960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월남을 북 월맹과 구분된 독립 주로 간주한다는 성명을 공표했다. 월맹은 군사 동원령을 내렸고 호치민은 이미 국경을 넘어 남쪽으로 기간 요원들을 침투시키고 있었다. 12월 20일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된 후 6주 만에 월맹은 민족해방전선을 발표했다. 우리는 1960년 7월, 쁠레이꾸에 도착했다.

쟈라이 왕국의 쁠레이꾸로

쁠레이꾸는 720미터 높이의 고원지대로 쟈라이 왕국의 중심이었다. 프랑스는 쟈라이 부족을 통제할 중심 도시로 쁠레이꾸를 건설했는데, 1954년 프랑스 철수 전까지 베트남인들은 쁠레이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 군이 패전한 후 모든 것이 변했다.

쁠레이꾸는 베트남인들의 지방 수도가 되었고 쟈라이 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정부 관료와 군인이었으며 중국 상인들도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그 지역에 흩어져 사는 원시적인 쟈라이 족들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마을을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있는 넓은 마을들은 복음을 위한 충분한 기회의 땅이었다. 고원 평지의 지배층 베트남인들뿐 아니라 산 속의 부족들까지 모두가 회개하여 주의 복음을 들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었다.

쁠레이꾸에서 처음 떨어진 명령은 쟈라이 언어를 배우라는 것이었다. 한창 재미를 붙이고 베트남어를 배워 실력이 늘어가는 중이었는데 다시 새로운 언어를 배우라니…. 우리는 일주일에 6일, 하루 8~10시간씩 공부하기로 작정했다. 그런 식으로 한 달이 지나자 가르치던 선생은 마을로 돌아가 다시 오지 않았다. 잠시 쉬었다가 다른 선생을 구하면 한 달 만에 또 가버렸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 나는 베트남 사역자들과 함께 쟈라이 마을로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베트남 사역자들이 설교하고 나는 운전사 노릇만 했다. 그러나 쟈라이 사람들은 내가 떠듬거리는 말로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더 좋게 여겼고 그들의 설화와 전설들을 녹음하려고 녹음기를 입 가까이 대면 즐거이 녹음해 주었다.

그러나 쟈라이 족은 숲의 호랑이와 사슴, 들판의 바위까지 모두 영이 얽혀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집을 짓고 난 후에도 신을 달래는 의식을 하고나서야 들어갔다. 그들은 이 영들을 두려워했고 그 신을 달래는 것이 일상이었다. <계속>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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