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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 마을에서 복음 전해 일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 제(Jeh)족과 짜미마을을 향해 상인들이 걸어가는 모습(출처: vnexpress 캡처).
▶ 제(Jeh)족과 짜미마을을 향해 상인들이 걸어가는 모습(출처: vnexpress 캡처).
▶ 제(Jeh)족과 짜미마을을 향해 상인들이 걸어가는 모습(출처: vnexpress 캡처).
베트남 선교 열전(3) – 베트남 전쟁 전후시기 선교 이야기

이 연재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베트남에 입국한 찰리, 에그롱 선교사 부부가 전쟁의 참화 가운데에서 복음의 통로가 된 과정과 베트남 주민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대하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베트남의 선교사(史)를 소개한 이들의 회고록 ‘베트남에 사랑을 담아’(To vietnam with Love)의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번역은 익명을 요청한 L선교사의 도움을 받았다. <편집자>

부족마을에 하나님을 전하다
우리는 짜미 지역의 행정 관청에 숲 너머와 인근 지역에 대한 조사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정글을 잘 아는 방위대를 동행시켜주었다. 나는 정글 속의 제(Jeh)족을 조사할 생각이었다. 주민수가 얼마인지, 그 지역에 얼마나 많은 방언이 사용되고 있는지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처음으로 선교부와 별도로 추진하는 여행이라 마음이 들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낭에 있는 캘리포니아 출신 대일(Dale) 선교사에게 청하여 함께 짠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빽빽한 정글 속으로 들어가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방위군과 헤어져 몇몇 제 족 사람들의 안내를 받으며 자부이(Xa Bui)마을로 들어갔다. 해발 1050미터에 있는 이 마을은 100미터가 넘는 긴 집이 하나로 연결되어 칸막이로 나누어진 현대의 연립주택 구조였다. 방에는 긴 들소 꼬리가 그 지역의 영들을 달래기 위한 제물로 걸려 있고 마루에는 두 개의 큰 화로가 있었다.

언덕에는 영에게 제사드릴 들소를 달아매는 높은 장대가 있었다. 주민들이 모여 들었으나 부족어로 대화를 할 수 없어 빨리 언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쳤다. 그들에게 내 마음에 가득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대신 날이 어두워진 후에 동행한 관리인 숭(Sung)이 횃불 곁에서 하나님을 전하였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립된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방위대와 합류하여 평생 처음 보는 깊은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거머리들이 우글거렸다. 마을에서 안전할 거라 여기며 마셨던 물도 뱃속에서 탈을 일으켰다. 혈변을 쏟으며 처음으로 무리에서 뒤쳐졌다. 그렇게 시작된 이질은 베트남을 떠날 때까지 계속 나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제 족 마을에 들어섰다. 그 곳에는 약 25명이 작은 몇 채의 집에 살고 있었다. 그날 밤도 숭이 복음을 전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빨리 부족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날 제 족 두 사람을 따라 강 구경을 나갔다가 놀랍게도 산 속에서 어깨에 장총을 멘 젊은 청년 두 명을 보았다. 아마도 베트콩 같았다.

짜미에서의 생활과 부족난민들

짜미에서의 시간은 날마다 새롭고 신기했다. 선선한 저녁이면 우리 가족은 짜미 골목을 산책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호의적이고 사람을 반겼으며 우리 가족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아들 나단을 데리고 나가면 아이 주위에 모여들어 깔깔거리며 웃고, 안고, 꼬집어보았다.

가까운 교회 사역자의 제안으로 베트남 마을에 들어가 전도를 한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아내는 등잔 곁에 자리를 잡고 수백 명의 주민들 앞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베트남 사역자가 말씀을 전했다. 그럴 때면 시간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중 일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러나 이틀째 밤, 베트콩 청년이 마을에 침입했다가 총격전에서 사살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글 여행에서 돌아오다 보면 제 족 난민들을 수용한 캠프가 보였다. 그들은 집을 떠나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가족 모두가, 때로는 강아지와 모든 가축들을 이끌고 시내 수용소에 들어와 살았다. 한 사람에게 왜 이곳에 있냐고 묻자, “베트콩들이 우리 마을을 불 태웠어요.”라고 말했다.

어느 날, 저녁 늦게 난민들이 내려왔다. 그들을 보자 긍휼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여자는 아기를 낳다가 탈출해 왔는지 종아리 쪽으로 아직도 검붉은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고, 서너 명의 여자들은 갓 낳은 아기들을 안고 있었다. 우리는 급히 죽을 끓여 주었다.

그들의 슬픈 사정을 보며 연민, 아픔, 분노가 뒤섞였다. 동시에 그들이 느끼고 있는 공산주의자에 대한 두려움, 뒤에 도사리고 있는 거짓 가르침, 어두움의 영을 느꼈다. 그들 안에 하나님의 빛이 비치어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했다. <계속>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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