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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의 선교역사 베트남, 하나님의 선교로 문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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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선교 열전(1) – 베트남전쟁 전후 선교 이야기 

본지는 지난 125호에 베트남에 다수가 거주하는 미전도종족 브루족의 성경이 선교역사 85년 만에 헌정식(獻呈式)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격동기를 거쳐온 베트남의 선교역사를 현장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연재한다.<편집자>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미국과 동남아시아가 아무 연관이 없고 국익에도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곳에는 월남과 라오스, 캄보디아의 2800만명이 넘는 생명이 달려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공산주의자들의 복음에 대한 태도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만약 동남아시아가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그 곳에서의 모든 복음 전파 활동은 다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날 다시 돌아보니이런 양측의 시각 모두 온전한 평가는 아니었다.

인도차이나 반도는 전쟁으로 100만 명에 가까운 캄보디아와 수십만의 베트남인과 라오스인들의 생명이 한 시점에 사라졌다. 또 공산주의자가 그곳을 차지한다면 복음의 문은 모두 닫힐 것이라고 생각한 선교사들의 생각도 빗나간 예측이었다. 하나님은 복음이 더 넓게 전파돼 이 땅에 영원한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셨다.

1911년 베트남 복음화의 서막

근대 역사에서 베트남 선교 역사는 CMA(Christian Missionary Alliance)교단 설립자인 알버트 심슨(Albert Simpson) 목사가 1882년 인도차이나 반도를 품고 기도함으로써 시작됐다. 그가 세운 뉴욕선교훈련센터에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1891년 7월, 선교사 지망생이 갑작스럽게 늘어났다. 2년 뒤 훈련경험이 1년을 채 지나지 않은 200여 명의 선교사 지망생들이 정탐여행을 떠났다. 그 지망생 중 데이비 렐라추어(David, LeLacheur)가 당시 안남으로 불리던 베트남에 선교사를 보내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1896년 캐나다 출신의 로버트 제프리(Robert A. Jaffray)가 뉴욕을 떠나 베트남 장기 선교사로 헌신, 1899년 2월 하노이에 도착했다. 그러나 제프리의 선교비전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04년 일시 귀국했다가, 1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1911년에 첫 복음의 전진기지가 마련됐다.

그들은 현재 다낭으로 불리는 베트남 중부의 항구 도시로 들어갔다. 당시 이 땅을 다스리던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선교활동에 제동을 걸고 선교사들을 대부분 추방했다. 그리고 거주하던 소수의 선교사 및 그리스도인들을 다낭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시골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며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프랑스는 믿는 자들의 모범적인 행동에 좋은 인상을 받고, 선교사들의 활동에 대한 제약을 완화시켰다.

당시 호치민(胡志明 1890~1969)은 공산주의 사상을 통하여 나라를 통일하려고 했고 그를 돕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으로 1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정신이 없는 통에 북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훗날 베트남의 국부로 여겨지게 된다.

1948년에 남북 베트남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나눠지고 북에는 월맹이 남에는 월남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해서 북은 모든 해외 선교사들의 접근 금지지역이 되었고 대부분의 교회가 문을 닫고 수십 명의 목회자들과 수백 명의 신도들이 살해되고, 수천 명이 감옥에 들어가거나 유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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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OMF International 캡처

1차 대전 직후, 남북 분단과 선교사 추방

2차 대전 이후 프랑스가 다시 돌아와 하노이와 남북의 다른 도시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예전의 통치권을 확보하려고 할 때 호치민의 공산 군대(越盟, Viet Minh 베트민)는 중국 국경 지대 등 산속으로 들어가 중국의 원조로 프랑스에 대한 무장 투쟁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1954년 5월 베트남 서북쪽의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 군이 월맹의 보 응우엔 쟙(武元甲) 장군의 고립 작전에 패전, 프랑스가 완전히 물러가게 된다. 북에서는 물러간 프랑스를 대신하여 완전히 나라의 형태를 갖추게 되고 소련과 중국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호치민이 초대 주석으로 모든 대외적인 실권자로 나서게 되었다.

북은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남은 프랑스에서 교육받고 행정 경험이 있는 관료들에 의한 자유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남쪽의 관료들은 주로 카톨릭 신자들이었고 북의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의 유물론에 의해 모든 종교를 부정하였지만 남쪽의 정부에 대항하기 위하여 불교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1964년 사이공 항구 외곽인 통킨만(東京灣)에 정박해 있던 미군 함정이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불타게 되고 이것을 기회로 미국이 비행기로 북 하롱베이 근처의 주 항구인 하이퐁 항구에 폭탄을 투하함으로 10여 년에 걸친 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베트남 선교를 살펴본다.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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