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제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순교임을 깨달았어요”

콩고민주공화국의 다음세대를 품은  정미란 선교사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지 못했다. 예수님께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어서….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정미란 선교사(LOA 학교).

자신과 같이 주님이 필요한 자들을 향해 타오르는 열정으로 이제 제2의 고향이 된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이하 민주콩고)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 언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셨어요?

“저는 교회를 한 번도 벗어나본 적 없이 없는 모태 신앙인이에요. 저와 조부모님, 부모님, 오빠 이렇게 6식구가 함께 살았어요. 장로님이셨던 할아버지와 집사님이신 어머니의 기도로 저는 늘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서 살았어요.

그런데도 가부장적인 가정환경 때문에 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눈치를 보며 살다보니 마음 안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주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은데, 저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님과 깊은 교제는 할 수 없었어요.

대학생이 되면서 선교단체에서 신앙 훈련을 받으며 주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주님에 대한 갈망이 커져 2박3일 일정으로 기도원에 갔어요. 그때 이사야 54장 11~17절 말씀을 통해 두려움에 쌓여있는 저를 보게 해주셨어요. 그리고 곤고하고 안위를 받지 못한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귀한 보석으로 채우시겠단 말씀이 저에게 들렸어요. 예배를 드릴 때 진짜 예수님을 만나게 됐음을 알았고, 맘껏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됐어요.”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을 기도의 자리에서 해결

– 그런 시간이 있었군요. 선교사의 꿈은 어떻게 갖게 되셨나요?

“주님이 청소년 시절에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부어주셨어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담사가 되기로 결정했죠.

대학에 진학해 같이 훈련을 받고 있던 지체들과 저의 마음을 나눴는데 그들도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를 포함해 형제 2명과 함께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부천에서 대안학원을 시작했어요.”

– 대안학교는 들어봤는데 대안학원은 생소하네요. 어떤 곳인가요?

“교회를 다니지만 학교와 학원에서 학업에 치여 어디서도 쉼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반 교과목을 가르치면서 예배하는 학원이에요. 학원을 시작하기 전, 1년 동안 새로 합류하게 된 자매들과 함께 공동체로 예배하고 기도하며 살았어요. 이분들은 지금 저와 함께 민주콩고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이에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그저 무보수로 일하면서도 우리의 비전은 이 학원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었어요.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선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 생각이 어떻게 바뀌셨는지요?

“상담을 배운 저는 아이들에서부터 부모님들까지 상담을 했어요. 여름이 되면 영성캠프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함께 해외로 비전트립을 가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길러내는 시간이었어요. 6년 동안 이 일을 하며 선교에 대한 비전은 나날이 확고해져갔어요. 언젠가 해외에도 이런 학교를 세우리라.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그런 비전이 어떻게 구체화 됐나요?
“2007년 말부터 준비하다 2008년 7월에 처음 아프리카에 갔어요. 출발하기 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비전을 나눴는데, 주님이 곳곳에서 후원자들을 일으켜주셨어요. 평신도의 신분으로는 파송해줄 교회가 없었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기약도 없던 후원자가 해결되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 하나가 가로막고 있었어요. 그 문제는 바로 저였어요.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어요.

지금이 주님의 때일까 두려웠어요. 아니라면 중단할 수 있을까? 정말 원했지만 막상 두려운 마음. 저도 제가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피해 다녀도 제 안에 부어진 주님의 열정은 실제였어요. 그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지금 함께하고 있는 동역자였어요. 그때의 권고를 주님의 부르심으로 확증했어요. 마침내 마음의 닻을 내리고 리더십과 상의한 후 2~3주 되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준비했어요.”

– 선교지로 떠나는 과정에서 가족들과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오랫동안 제가 나눴던 선교 이야기라 어머니와는 어렵지 않았어요. 그러나 오빠가 많이 반대했어요. 너무 시기가 이르다며 저를 만류했어요. 오빠도 당시에 선교사로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우리 두 사람이 헌신하고 나면 노년에는 누가 부모님을 모시지? 라는 걱정이 떨쳐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때, 주님이 저희 부모님도 당신의 자녀이며 친히 돌보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맘을 놓게 됐죠.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저의 든든한 기도 후원자세요.”

두려움을 이기고 아프리카로

– 주님이 놀랍게 이끌어오셨네요. 그런데 어떻게 아프리카를 품게 되셨나요?
“그동안 많은 전도여행을 했지만 아프리카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나라였어요. 선교지로 나갈 준비를 하며 지인을 통해 모잠비크에서 선교하는 하이디 베이커의 책을 소개받고 아프리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그리고 현재 함께 사역하고 있는 장미진 선교사가 대학시절 아프리카로 전도여행을 갔을 당시 만났던 선교사님과 교제하게 되면서 아프리카를 알게 됐어요.

대륙은 넓고, 정한 곳은 없으니 그곳에 대한 적응과 언어의 배움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받고 처음 탄자니아 땅을 밟게 됐어요. 탄자니아는 정통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데, 그 때 당시 저희가 언어학교에 갈 여력이 되지 않아서 책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현지인들과 서툰 대화를 하면서 언어를 더욱 빠르게 배워갔죠. 2년 정도 그곳에서 여러 시니어 선교사님들과 교제하고 선교현장을 경험하면서 학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꿈을 꿨어요.”

– 어떻게 학교사역을 시작하게 됐죠?

“먼저 땅을 찾아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하여 하나님의 일꾼, 민족의 지도자를 길러낼 학교가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요. 탄자니아와 이웃한 케냐, 우간다, 부룬디, 르완다를 한 달 간 리서치를 했어요. 처음 부룬디에 도착했을 때, 수도 부줌부라는 정말 환경이 열악하더군요. 그곳에서 1년간 유치원 사역을 하고, 학교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 시켰죠.

리서치를 할 때는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했어요. 어른 걸음으로 1시간 정도 내에 학교가 있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죠. 아이들의 걸음으로는 2시간, 왕복으로는 4시간. 그것은 곧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의미죠.

그러던 중, 부룬디 옆 나라인 민주콩고에 대해서 우연히 듣게 됐어요. 내전이 많고, 한번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어려운 나라로 척박한 곳이라고 들었어요. 주님의 뜻이 어딘지 모르니 그곳에 가보자고 결정했어요. ‘우비라’라는 지역부터 시작했는데요, 120km의 먼 거리를 아무런 교통수단 없이 하루 종일 걸었어요. 유일한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좋으련만 거리 측정이 어렵고 마을을 속속들이 볼 수 없어 도보를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날이 어두워지면 근처 숙소에 가서 잠을 청하고 날이 새면 걷는 것을 반복했어요. 그러던 중, 정말 버려진 듯한 땅을 발견했어요.

큰 길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4개 마을이 모여 있는 곳. 나무 하나 없고 잡초만 있는 허허벌판에 딱 서는 순간 시편 말씀이 생각났어요.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그 땅 전체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 기뻤어요. 여기가 바로 우리 땅이다! 그곳이 바로 저희가 지금 사는 ‘부하싸’라는 곳이에요.”

– 그렇게 생소한 곳에서 어떻게 마을 사람들과 학교의 비전을 나누게 됐나요?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정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임을 알게 됐어요. 4개 마을에 1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아요. 오랜 내전의 아픔이 있고, 수도 킨샤사와는 2500km나 떨어져 있는 곳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어요. 대부분 미혼모와 과부, 어린이들이 살았어요. 대한민국의 23배만한 땅덩이인데,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인 것이죠. 외국인인 저희가 학교를 짓겠다고 말했더니 모두 믿지 못한다는 반응이었어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거죠. 그런데도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강하게 원하고 있었어요. 학교 땅을 허락받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무려 8개월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다렸어요. 처음 학교를 짓기 위해 자재를 잔뜩 실은 트럭이 들어오던 날, 온 마을 주민이 함께 울며 기뻐했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이제는 학교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기를

– 그러는 시간동안 마을 주민과 마음의 결을 맞출 수 있었군요.

“건축 재료구입과 일꾼들에게 일을 시킬 때도 저희가 직접 뛰어다녔어요. 후원받은 소중한 재정인데, 낭비되면 안되니까요. 건축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그 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하나님이 저희에게 먼저 그들에게 본을 보이라는 맘을 주셔서 자매임에도 불구하고 도우미로 함께 시멘트도 개고, 벽돌도 나르고, 꽤 먼거리를 오가며 물도 날랐어요. 때론 식당 아줌마로, 공사판 아줌마가 되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많이 친해졌어요.

6개월 만에 드디어 이방의 빛이라는 로아학교(LOA, The Light Of All nations)가 세워졌어요. 우리가 이곳에 돕는 자로 왔지만 선교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게 됐어요. 선교는 바로 연합이었어요.”

– 학교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이곳에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대부분이에요. 그 아이들 모두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가난하다고 무조건 도와주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희 선교사들과 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을 통해 학칙을 밝히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근로 장학생으로 공부를 하며 학교 일을 돕게 해요. 등록금은 한화로 500~1000원 정도로 정했어요. 물론 이 금액도 현지인들에게는 저렴한 편은 아니에요. 교사를 채용하는 기준은 매우 까다로워요.

먼저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이 지원할 수 있고 간단한 시험을 치른 후, 최종 인터뷰를 거치죠.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교사의 자격을 주지 않았어요. 현재 현지교사 4명과 최근 한국의 요셉의창고미니스트리에서 파송된 선교사님 부부, 그리고 초기 개척멤버 3명이 함께 사역하고 있어요.”

– 로아학교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요?

“저희가 만나는 분들이 내전 때문에 자기 자신과 나라에 대한 신뢰가 없어요. 게다가 우리 민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파요. 이 아이들을 정말 지도자로 세우고 싶은 저희의 맘을 계속 나눴어요. 6.25 당시 우울했던 한국의 상황을 이겨낸 국민의 성실함과 희생에 대해 나누면서 이 아이들이 복음으로 회복되는 그때를 함께 기대하고 기도해요. 이 학교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꿈꿔요. 현재 주일마다 학교에서 현지 전도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10월부터는 청·장년층 예배를 드릴 계획을 하고 있어요.”

– 끝으로 기도제목이 있으시다면요?

“이전에는 제가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불러주신 주님이 그저 기뻐서 그랬는지, 죽음도 불사하는 순교자가 되도록 기도요청을 했어요. 그러나 7년간 선교지에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게 순교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나의 열심, 지식, 경험 때문에 주님이 맘껏 당신의 일을 하지 못하심을 알게 됐어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산 새 생명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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