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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신학교 교수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 사라 에코프 질스트라. 사진: thegospelcoalition.org 캡처

마스크를 쓴 네 명의 청년이 식당에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직원들은 강도임을 직감했다. 주방에 있는 요리사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도망갔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요리사는 그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요리사 토니 스미스는 원래 그날 근무가 아니었다. 그날 밤 할머니와 함께 자이언츠와 레인저스의 2010년 월드 시리즈를 볼 계획이었는데, 교대 근무를 해달라는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강도들은 토니를 끌고 가서 금전 등록기의 잠금을 해제하라고 했다. 그러나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금전 등록기가 열리지 않았고, 강도 중 하나인 엑스터시에 취한 17살짜리 소년이 토니를 총으로 쐈다.

토니의 아버지이자 비슨신학교(Beeson Divinity School) 설교학 교수인 로버트 스미스가 막내아들이 총에 맞았다는 전화를 받은 건 루이지애나 배턴 루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45분 후에 아들이 사망했다는 두 번째 전화를 받았다. 토니는 말 그대로 아무 의미 없는 죽임을 당했다. 그날 밤 강도들은 단돈 일 달러도 훔쳐 가지 못했다. 

스미스는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주권자라고 고백하는 법을 배우는 거지요. 해가 빛날 때야 쉬운 고백이지만, 해가 지면 말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고백은 이제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됩니다.” 

스미스는 적지 않은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냈다. 그의 첫 아내는 세 아들이 어렸을 때 루푸스로 사망했다. 15년 동안 암 투병하던 큰아들은 지난해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 또한 2021년에 뇌졸중을 앓았고 이런저런 건강 문제를 갖고 있다. 

그는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는지 모른다. 

“우리는 미스터리를 풀거나,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해독하거나, 알 수 없는 것을 알아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갈보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다치게 하셨습니다. 빌라도와 군인들은 모든 게 자기들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는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토니를 죽인 살인자를 용서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계속해서 전 세계를 다니며 사역하고, 가르치고, 또 설교한다. 그는 이번에 Crossway에서 새로 나온 ESV 오디오 성경 전체를 낭독했다. 몇 달만 지나면 27년을 보낸 비슨에서 은퇴한다. 

TGC는 스미스에게 슬픔과 아들의 살인자를 용서하는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6주에 걸친 성경 전체 낭독에 관해서 물었다.

사망한 직계 가족 세 명 중에서 토니는 살해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주는 슬픔은 종류가 다른가요? 

모든 이별은 고통스럽고 다 뚜렷합니다. 병으로 죽은 아이들 엄마의 죽음은 꼭 비극적이진 않았어요. 우리에게는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거든요. 아내는 2년 반 동안 아팠습니다. 토니의 형 로버트 3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요. 사실 우리는 로버트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 의사가 2-3년 안에 죽을 거라고 했는데, 무려 15년을 살았거든요. 

토니는 서른세 살이었습니다. 우리도 통보 받은 게 없고 그냥 전화만 받았어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일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따라서 토니도 우리 것이 아니다. 토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는 우리도 기다리고 계신다. 언젠가 우리는 토니를 다시 만나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다”라고요.

이런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봅니까? 

나는 토니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했고, 그 추도사를 바탕으로 The Oasis of God: From Mourning to Morning(하나님의 오아시스: 슬픔에서 아침으로)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결코 쓰고 싶었던 책은 아니었지만, 그 책은 내게 다양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님을 대신해서 말씀을 전하면서 전 세계를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끌렸고, 나도 다른 이들에게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비슷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나는 깊은 슬픔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실로 놀라운 기회였습니다.

당신은 토니를 죽인 청년에게도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요?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지요.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내 아들이 그렇게 죽는다는 게요.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약 8개월 후, 나는 선교 사업차 케냐 나이로비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귀에 들린 건 아니지만,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주님이 물으시더군요. 

너는 용서를 믿느냐? 
예, 믿습니다. 
너는 용서를 가르치고 또 설교하느냐? 
예, 그렇습니다. 
나는 네가 토니의 살인자를 용서하길 원한다.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용서란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해야 한다는 걸요.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뭔가가 현실이 되려면 가장 먼저 마음속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모든 상황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법정, 수갑을 차고 15년 형을 선고받고 가던 청년, 그리고 내 아들의 죽음. 그 모든 걸 말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가 죄 가운데 태어났고, 죄악으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압니다. 나는 계속해서 죄를 저질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기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깨달았습니다. 토니를 잃었지만, 그건 내가 원했던 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이기 바로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칼을 멈추셨습니다. 그러나 성금요일,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에게만은 칼을 내리꽂았습니다. 하나님은 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오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체험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만남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내가 하기 싫은 일과 할 수 없는 일까지 다 하도록 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일, 즉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기쁨으로 바뀝니다. 

그 젊은 친구에게 용서한다고 말했습니까? 

예, 그랬지요. 편지를 써서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그를 사랑하며, 또 하나님의 은혜로 그를 통해 용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편지를 보내고도 6-7개월 동안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편지를 보내고 마침내 답장을 받았습니다. 답장을 안 한 이유가 행여라도 내가 자신이 한 일을 다른 죄수들에게 폭로할까 두려웠다고 하더군요. 또 행여라도 토니를 아는 사람이 같은 감옥에 있는 경우에 보복을 받을까 무서웠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왜 내가 계속해서 자기에게 편지를 보내는지, 왜 자기를 사랑하고, 용서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자기가 다니던 교회 목사와 교회 사진도 보내주었어요. 나는 그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압니다. 그 지역에서 설교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사건이 있던 날 밤에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마약에 취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친척 중에는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죄의 대가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죄와 잘못에는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가 어려울까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용서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용서는 아예 불가능합니다.

반복해서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물론입니다. 끝난 건 맞습니다. 이제 그 청년에 대한 악의가 없으니까 다 된 겁니다. 나는 그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출소하면, 기꺼이 그와 교제를 나눌 것입니다. 같이 점심을 먹고 교회도 데려갈 겁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뒷걸음치진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어느 청년의 장례식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모든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심장이 미친 듯 뛰더군요. 마치 다리가 부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한 부분을 고쳐주셨지만 뼈는 여전히 욱신거립니다. 여전히 통증을 느낍니다. 토니의 죽음은 내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토니를 죽인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이 아닌 살인자에게도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암, 교통사고, 치매는 모두 죄로 인한 것이며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슬픔에 잠겨 하나님께 화를 내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화를 내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하나님은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강하시고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원망까지도 다 받아주실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20:7)와 예수님(막 15:34), 그리고 욥(3-37장)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를 풀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말할 시간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주의 신실하심이 크시도다”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좌절하게 그냥 둡니다. 그냥 다 겪도록 놔둡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일종의 변화, 허물을 벗는 거지요. 고통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없듯, 우리도 때로는 상처 없이는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너무 큰 슬픔에 빠질 때면 다시는 영원히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기쁨을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시편 30:5에는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어도 아침이면 기쁨이 온다고 써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아침 몇 시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밤은 매우 길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물면서 우리의 마음과 좌절을 그분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다시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많은 슬픔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리는 기쁨은 슬픔을 능가하고 초월했습니다. 내 슬픔은 내 기쁨 속에 삼켜졌습니다. 내가 지금 신학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이론을 설파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기쁨 중 하나가 비슨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은퇴하는데요. 이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가르치고, 설교하고, 강의하고, 글을 쓸 것입니다. 정말로 신이 납니다. 마치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고 봉인된 명령을 하나씩 열어보며 여행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히브리서 11:8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느니라.”

모험입니다. 정말로 흥분됩니다. 

올봄, Crossway가 당신이 녹음한 ESV의 오디오 버전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그 얘기 좀 해주시죠. 

그건 거의 58년에 걸친 사역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동시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새벽 3시 전에 일어나 바로 사무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오전 3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일주일에 6일, 6주 동안 성경을 읽었습니다. 매일 밤 다음 날 읽을 성경 말씀을 준비하는 데에만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말씀을 검토하면서 어떤 부분에 어떤 감정을 주어야 할지 또 이어지는 이야기와의 연결은 어떻게 만들지 등을 고민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한 뒤 나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그가 결코 아무런 감정 없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지요. 그런 고백을 할 때 도마는 아마도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을까요? 

좌절과 고통, 환희 속에서 정서적이고 언어적인 표현을 통해서 내가 성경의 인물들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 먼저 느끼는 과정, 그때가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루에 평균 열여덟, 아홉 시간 성경을 읽었습니다. 심지어 성경의 특정 구절을 읽는 꿈도 꾸었습니다.

성경 낭독은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D. L. 무디는 당신이 성경을 몇 번 읽었느냐가 아니라 성경이 당신을 몇 번 읽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마치 모든 성경 말씀을 처음 읽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성경을 낭독했습니다. 그러자 성경이 내 속에서 나를 읽어냈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How a Seminary Professor Forgave His Son’s Killer

사라 에코프 질스트라 Sarah Eekhoff Zylstra·Robert Smith Jr. | TGC의 편집자 겸 선임 작가이다. Dordt University에서 영어와 소통(BA),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Christianity Today의 작가였으며, 프리렌서로 지역 신문에도 기고를 하며, Trinity Christian College에서 가르쳤다. 로버트 스미스는 Beeson Divinity School의 교수이다. 남침례교 신학교에서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는 Doctrine That Dances: Bringing Doctrinal Preaching, Teaching to LifeThe Oasis of God: From Mourning to Morning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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