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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의대 증원 난제, 그리고 ‘재난을 주는 위로자’

사진: 유튜브 채널 연합뉴스TV 캡처

욥기를 묵상 중이다. 16장에는 절묘한 표현이 등장한다. 고난 가운데 있는 욥이 그의 친구들의 조언을 듣던 중 말한다. “그대들은 내게 ‘재난을 주는 위로자’와 같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재난과 위로자. 이 두 가지 개념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랜 세월 전의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던 시절의 기억이다. 오랜 절친이 인생의 중대한 기로 앞에 섰다. 남의 가정사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친구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했다. 그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 생활을 조금 알고, 결혼식 사회를 봤던 필자는 친구의 일시적 외도를 책망하고 가정으로 돌아서게 해야한다는 열심에 사로잡혔다. 그 마음으로 친구를 호되게 나무랐다. 조강지처를 그렇게 버릴 수가 있냐고. 그런데 친구도 할 말이 있었다. 아내가 먼저 동네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난 것 같다는 얘기였다. 확인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정황 상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선택은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다고 가정을 깰 수 없다며, 친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날 만남 이후 그 친구는 내게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렀다.

욥기의 엘리바스, 빌닷, 소발 세 사람의 욥에 대한 비난과 책망을 볼 때마다, 나는 그때 철없는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과 친구가 어긋난 길을 간다는 지적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당시 나의 지적은 오늘 욥이 느꼈던 바로 그 말로 들렸을 것이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가 바로 나였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 가운데 이런 실수를 안하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완전한 자다. 높이 칭찬 듣고 존경받아도 된다. 그런데 그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희박할 것이다. 그게 우리 인생의 연약함이다.

최근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은 열차 선로처럼 팽팽한 대립 상태에 있다.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전문 식견이 없는 문외한으로서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위해 나름대로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했다. 처음에는 의료인들의 밥그릇 투정으로만 봤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며,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의료계 내부의 실상’이라는 부제를 붙인 ‘한 외과 중도 포기 의사의 리얼 스토리’라는 글은 충격이었다. 의사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라는 이 기고문의 주인공은 외과 1년차 때 사직하고 나온 외과 중도 포기의사라고 했다. 한때 ‘바이탈 뽕’(생명을 살리면서 느끼는 희열)으로 열심을 냈던 인턴, 레지던트를 거쳤다. 그러다 외과 선배이지만 외과가 아닌 개원을 했던 선배의 의원을 인수해 오늘에 왔다고 했다. 외과 전문의로서 외과를 개원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기 전공을 살려서 먹고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택하는 의사들의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의사들을 외과 전문의로서 버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법부가 의사들에게 형사처벌을 남발하면서부터라고 했다. 경제적인 이유(개원에 드는 엄청난 재정 등)로 전공을 살리지 못한 것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자부심이었던 전공이 사회에서 범죄자가 되는 길이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의사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지금 정부가 말하는 필수의료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리고 의료수가의 문제도 제기했다.

한 종합일간신문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주장을 제시하며 “정부가 의사 압박만 말고, 필수 수가를 5배 인상하고 민형사 책임을 완화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바로 이 같은 의사들의 외침과 동일한 주장이었다.

아쉬운 것은 왜 이런 속 깊은 이야기들을 그동안 제대로 나누지 못했을까였다. 우리 사회는 그만큼 다양한 현안 문제에 대해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기반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 우리 나라만의 문제인가? 피조물 아담과 하와의 등장 이후 지금까지 인류사회가 존재했던 모든 곳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파국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윈윈(win-win)을 원한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세상에서 윈윈을 목적으로 할 때 좀처럼 그것을 만날 수 없다. 윈윈은 자연스럽게 마침내 나타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드러나지 않는 오묘한 비밀을 갖고 있다. 내가 죽어 너가 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성만찬의 선택만이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욥기 16장 21절을 통해 욥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한 줄로 요약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욥은 자신에게 허락된 고난의 이유를 속시원하게 말해주고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풀어줄 중재자를 원했다. 이웃과 나 사이를 누군가가 중재해주듯이 하나님과 단절된 나 사이의 관계를 풀어줄 중재자를 요청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정답을 알고 있다. 그분이 바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린 인간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으면 된다.

꽉 막힌 것 같은 의대 증원 문제의 해법은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의료계가 정말로 필요한 것. 의사들이 느껴왔던 절박한 생존의 문제들을 정직하게 드러내야 해법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 또한 마찬가지다. 의사가 아닌 행정관료들이 의사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이 갖고 있는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심판자로서 뷰로크라트나 테크노크라트의 입장을 취하며, 우리가 파악하고 제시한 처방을 따르라고만 한다면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그때 정부는 ‘재난을 주는 위로자’ 밖에 될 수 없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듣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복음기도신문]

김강호 | 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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