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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마음의 경화

사진 : Ben-White on Unsplash

시에라리온으로 ‘다시 가고 싶다’라는 소망은 ‘다시 가야겠다’라는 결심이 되었고, 그 결심은 ‘다시 가야 한다’는 사명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한국에 도착한 지 보름 만에 격리가 해제되고 집에 갈 때는 ‘시에라리온에 다시 간다’는 바뀔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일여 년 만에 만난 딸은 나를 보자마자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며 걱정했다.

딸뿐만 아니라 나를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며 몸은 괜찮냐고 물었다. 한 달 동안 앓았던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탓에 오래간만에 날 만난 이들은 당연히 그렇게 반응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나의 시에라리온의 생활을 힘듦으로만 보는 것 같아 못내 속상했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시에라리온의 소망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할렐루야~ 선교지로 다시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라며 응원하는 이들은 없었다. 대부분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갈 생각이냐’ ‘너무 급하다. 몸부터 다시 회복하고 천천히 생각하고 움직여라.’라는 충고를 했고, ‘하나님도 너와 같은 생각이셔?’라며 되묻는 이도 있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격려하고 지지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반대하고 만류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시겠다는데 누가 말려’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기대함으로 다시 시에라리온으로 떠날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열정 가득한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말라리아와 장티푸스의 후유증인지 몸 여기저기에서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에라리온에서 회복된 줄 알았는데, 긴장이 풀리고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쉽게 지치고 피로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증상이었다.

게다가 건강검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입원해야 할 정도였으며, 당 수치도 위험했다. 관리하지 않으면 동맥경화로 이어진다고 했다.

말라리아와 장티푸스를 앓을 때 항생제와 해열제를 들이붓다시피 했던 것과 영양의 불균형에 따른 부작용이 드러난 것으로 생각했다.

주변의 충고대로 지금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닌 몸인 것 같아 몸을 먼저 회복시키기로 하고 다시 시에라리온에 간다는 생각은 몸이 회복될 때까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일단은 잘 먹고, 운동하고 충분히 쉬는 게 필요했다.

그러고 나면 몸은 다시 회복될 것이라 믿었다.

처음에는 양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가슴팍이 묵직해서 제대로 넘기지를 못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종일 종종거리는 시에라리온 아이들과 두부, 콩나물, 김치를 먹고 싶어 했던 선교사님과 팀들이 눈에 밟혔다.

특히 시에라리온 최고의 고급 식자재였던 달걀은 끝내 만나지 못하고 온 사거리의 아냐샤와 달걀 행상을 하며 생활비를 보탰던 어거스타와 마이야추를 생각나게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생각나면 나는 울었고 그 눈물은 ‘얼른 몸을 회복해서 다시 시에라리온으로 가고 싶다’라는 간절한 기도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기도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간 수치와 몸무게가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체력도 회복되긴 했지만, 다시 시에라리온으로 간다는 열정의 온도와 영적 긴장감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목에 걸리고 눈에 밟히고 심장이 욱신거려 삼키지 못했던 음식들의 맛이 느껴지고 술술 넘어가면서 예전보다 더 왕성한 식욕으로 음식들을 탐하기 시작했다.

‘다시 시에라리온의 소망’보다 ‘다시 일상의 힘’이 더 강하게 나를 지배해버리고 말았다. 일도 해야 했고, 사람도 만나야 했고, 사역도 해야 했다.

챙겨야 할 관계, 신경 써야 할 업무, 감당해야 할 사역들이 100% 감사와 기쁨이 되지 않았다. 감사와 기쁨이 되어주지 못한 관계와 업무와 사역들은 스트레스가 되었고,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핑계로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에라리온에서는 당연했던 매일의 새벽예배, 말씀 통독, 기도의 습관들이 특별한 것이 되었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어느덧 시에라리온에서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며칠 동안 깊은 기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나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두려웠다.

더는 가슴 뛰지 않고, 아이들 생각에 눈물 흘리지 않은 상황에 겁이 났다.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복음과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의 불꽃이 보이지 않는 게, 무서웠다. 동맥경화의 위험을 받았을 때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의 마음이 경화에 걸린 것이다.

영겁의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다. 겨우 6개월이 지났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과도한 약물복용과 영양의 불균형과 운동 부족이 동맥경화를 불러왔듯이 과도한 업무와 관계의 불균형과 기도, 예배, 말씀의 부족이 마음의 경화를 불러온 것이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풍족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기도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들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없다 보니 하나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했다.

그렇기에 절실한 마음으로 살았다. 세상을 향한 모든 욕망은 제어해야 했고, 오직 하나님만을 간절히 원해야 했다.

그런데 한국의 삶은 모든 것이 풍족했다. 간절히 원하지 않아도, 채워졌다. 조금씩 붕괴된 거룩의 습관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힘인 영성을 앗아갔다.

시에라리온에서는 하나님만을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넘쳐나는 먹을거리처럼 생각해야 할 것들과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진 것이다.

사소한 가치나 문화적 습관이 나의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면 비전도 사라지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굳어지기 마련이다. 내 안의 불꽃을 다시 살려야 했다. 어떻게?

내가 다시 시에라리온을 꿈꿀 때?

아니었다. 그 불꽃은 먼저 하나님을 소망할 때에만 살아날 수 있는 거였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임을 자각하고, 선교현장은 시에라리온이 아닌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자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안에서 균형 있는 일상을 살아야 했다. 그래야 불꽃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하루하루 내가 서 있는 현장에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시에라리온은 도피처일 뿐이었다. 나의 몸과 마음이 더 경화되기 전에 습관을 만들어야 했다.

습관이 영성이다. 영성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힘이다. 습관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이 동맥경화를 예방하듯,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와 말씀 묵상이 마음의 경화를 막을 수 있다.

기부하고, 구제하고, 선한 일을 해야 하는 위대하고 특별한 적용이 아닌, 기도와 예배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될 때, 그것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영성을 키우는 거룩한 습관이 될 것이다.

그 거룩한 습관이 마음의 경화를 치료하고 내 마음의 불꽃을 다시 일으킬 것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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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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