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연구 저자이자 회의론자인 바트 어만은 ‘복음서를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 성경의 모순들’이라는 강의에서 반복해서 말한다. ‘그냥 텍스트를 읽으세요. 읽으면 다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성경 본문을 읽었다. 그리고 내가 찾은 것은 어만이 신자들에게 어려운 구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조금만 생각해도 그가 말한 수많은 모순이 단숨에 사라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가 말한 모순 중 일부는 논리가 너무나 연약해서, 나는 어만이 솔직하지 않은 게 아닌지 궁금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경의 모순이라는 이 문제에는 많은 게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어만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을 읽는다고 해서 그게 꼭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게 다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9분 50초)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은 더 큰 주제로 이어진다. ‘작은 일에 관한 설명이 틀렸는데, 진짜 중요한 일에 관한 설명이 틀리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모순에 대한 어만의 정의는 ‘서로 다르고 조화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구성된 둘 이상의 설명’이다. 따라서 ‘두 개의 모순된 설명이 둘 다 역사적으로 정확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강의 시작 부분에서 어만은 성경을 나란히 놓고 읽을 것을 열정적으로 촉구한다. 그가 의미하는 바는 누가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의 같은 구절을 서로 평행선에 놓고 비교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방식의 독서법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한 학자의 열정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1980년대에 오래된 NIV로 복음서를 읽을 때 나는 이미 유사한 모든 구절을 서로 비교하면서 읽었다.
자, 서론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본격적으로 모순이라는 문제로 들어가서 어만이 말하는 모순이 진짜 모순인지 살펴보자. 그의 강의에 나오는 순서대로 그 문제를 다루도록 하자.
1. 야이로의 딸을 고치심
비교가 가능한 두 구절은 마가복음 5:21-24과 마태복음 9:18-20이다. 어만은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한다.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야이로의 딸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마태의 기록을 보면 그녀는 죽었다.
자, 여기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다. 어만은 청중에게 텍스트를 읽으라고 촉구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몇 가지를 알아차린다.
마가복음에서 야이로는 예수님께 오리지널 코이네 헬라어로 ‘내 딸이 죽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대담하고 생생한 이미지이다. 따라서 독자가 그의 딸이 실제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다가 야이로의 집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그에게 딸이 지금 죽었다고 말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전까지 그녀가 살아 있었음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말하였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막 5:35)
이건 보기에 따라서 어만의 주장을 확증하는 거 같다.
그러나 마가와 마태를 주의 깊게 읽으면 피 흘리는 여인의 이야기가 일으키는 방해와 야이로의 딸 주변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서, 마가의 기록이 마태보다 더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이 사건에 관한 마가의 기록이 23절에 걸친 반면 마태의 경우는 9절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마태가 야이로의 딸과 피 흘리는 여인에 대한 두 이야기를 압축하여 두 문장으로 요약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적지 않은 세부 사항을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마태가 서술한 야이로의 이야기는 단지 상황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기에 굳이 종들이 알려준 자세한 설명까지 다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게 아닐까?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죽었다’로 번역된 마태가 사용한 동사는 부정과거형이다. 단순함을 위해 종종 과거형으로 번역되지만, 행동이나 사건을 요약해서 말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따라서 이것은 야이로가 그의 딸이 지금 막 죽었다고 말하거나(단순 과거 시제), 또는 마가의 경우에서처럼 그녀의 죽음이 임박한 현실이라고 말하는 경우에도 쓰일 수 있다. 죽음이 내 딸 가까이에 있다.
아마도 이런 설명이 당신을 설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의 두 설명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세부 사항에서 동의한다는 점을 고려하라.
1. 야이로가 온다.
2.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는다.
3. 야이로는 예수님께 딸에게 손을 얹으라고 요청한다.
4. 피 흘리는 여자가 방해한다.
5. 피 흘리는 여자에게 예수가 하는 말.
6. 예수가 도착했을 때 죽은 소녀.
7. 예수의 말씀,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8. 군중의 웃음과 불신.9. 예수님이 소녀의 손을 잡는다.
사건의 핵심은 예수가 도착하기 전에 소녀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드라마이자 중심점이다. 예수님은 죽은 소녀를 살리셨다. 텍스트를 공정하게 읽으면, 비록 스타일이 다르다고 해도 그것을 압도하는 일관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주의 사항 중 하나에 도달했다. 각 복음서는 예수님의 사건을 다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각은 그것들을 역사적 사건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어만은 지금 거기에 21세기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그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축어적) 보도에 절대적인 정확성이라는 현대적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게다가 한 인물의 말투에서 발견되는 약간의 차이를 핑계 삼아 전체 사건을 엉터리라며 창밖으로 던지고 있다. 그가 발견한 차이점이 실제로 야이로의 딸이 실제로 죽음의 순간에 있지 않았거나 예수님이 도착하셨을 때 실제로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일단 다음 문제로 넘어가자.
2. 누가와 마태의 족보
마태복음 1:1-17과 누가복음 3:23-38의 예수님 족보의 차이이다.
역사적으로 학자들은 하나를 마리아의 족보로, 다른 하나를 요셉의 족보로 이해했다. 그러나 어만과 다른 사람들이 언급한 것처럼, 누가의 족보에도 그게 마리아의 족보라는 말은 없고 요셉의 혈통이라고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이해한 바로는 두 족보가 요셉이 받은 유산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하나는 생물학적 혈통을 드러내고 다른 하나는 법적 계보일 수 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족보에 관한 데럴 복(Darrel Bock)의 짧은 토론(복음서는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을 참조하라.
그러나 텍스트를 제대로 읽는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일어나는 훨씬 더 많은 일을 눈치챘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 전체에 관련된 문제이다. 마태의 기록에서 우리는 그가 세 명의 왕을 연속해서 놓친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이다(참조, 역대상 3장과 솔로몬의 아들들). 그는 또한 여호야김도 뺐다.
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 유수까지, 그리고 유수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멋진 14세대를 연속해서 가지기 위한 마태의 자의적인 조작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니까 마태는 역사가 아닌 수학으로 족보를 썼다는 주장이다.
아니, 아니, 그렇게 빨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다시 돌아가서 그가 뺀 네 명의 왕을 보면, 그들이 하나같이 다윗의 본을 따라서 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여호와를 저버리고 다윗 왕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즉, 그들은 진정한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다. (아하시야-왕하 8:25-27, 요아스-대하 24:17, 아마샤-대하 25:27, 여호야김-왕하 23:36-37). 그래서 마태는 그들을 제외했다! 이 사실을 확증하는 것은 여호와께 헌신하지 아니하였으나 다윗을 위하여 명시적으로 확증된 아비야 왕이다(왕상 15:15). 그래서 마태는 그를 포함했다. 마태는 1장 1절에서 이 족보가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사라고 말한다. 아마도 마태는 어만보다 구약의 본문, 즉 유대인의 경전을 훨씬 더 주의 깊게 읽었던 거 같다.
그러나 어만 식의 이해가 가진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족보와 관련하여 어만은 유대인들이 후손에 대한 기록을 보관하지 않았다고, ‘…족보 보관은 있을 수 없습니다’(20분)라며 매우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두 족보 모두 다 분쿰(bunkum, 헛소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유대인들이 정말로 족보를 신경 쓰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1세기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자신의 생애에 관해서 쓴 다음 내용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부터 나의 선조들을 순서대로 나열할 것이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이름은 사이먼…
요세푸스는 조상의 이름을 계속해서 나열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그리하여 나는 공공 기록에서 발견한 대로 내 가족의 족보를 지금까지 기록했다.
요세푸스는 자신의 족보를 자세히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공개된 기록이라고 말한다. 족보 보존이 전혀 당시에 없던 일이라면, 어떻게 족보가 공문서에까지 남을 수 있을까?
더욱이 콘트라 아피온(Contra Apion)[1]에는 족보를 보관하는 유대인 관습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족보가 서술된 구약성서의 페이지가 나온다. 유대인들의 족보 보존은 정말로 당시에도 대단한 일이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던 게 틀림없어 보인다. 따라서 누가복음이나 마태복음에서 족보를 찾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만이 전에 무어라고 했던가? ‘작은 일에 관한 설명이 틀렸는데, 진짜 중요한 일에 관한 설명이 틀리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을 어만의 학문 연구에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일단은 다음 문제를 보자.
3. 이집트 피난
어만이 제기하는 세 번째 모순은 이집트 피난이다. 누가복음2:2-40과 마태복음 2:1-23이다.
이 둘의 설명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누가에는 목동만 있고 동방 박사는 없다. 마태에는 천사, 동방 박사의 꿈, 더 많은 꿈, 그리고 이집트 피난까지 들어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기서 잠시 멈추고 누가가 처음에 무어라고 하는지 들어 보자.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이야기를 엮어내려고 손을 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대로 엮어냈습니다. 그런데 존귀하신 데오빌로님, 나도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았으므로, 각하께 그것을 순서대로 써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눅 1:1-3).
누가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조사하여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보컴(Bauckham)과 같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이 정보는 목격자의 인터뷰를 통해서 얻은 것이었다.
이 점은 중요하다. 이 사실은 왜 꿈, 이집트 피난, 그리고 귀환 등의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없는지에 대한 간단하고도 가장 분명한 설명이다. 그에게는 그 사실을 확인할 목격자가 없었다. 꿈꾸는 사람 외에 누가 꿈을 증언할 수 있을까? 이 사실은 동방 박사의 방문에도 두 가지 방식으로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늘날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다르게 그들은 목자들과 같은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목격자가 없었다. 페르시아에서 왔던 동방박사들은 다시 돌아갔기에 그들과는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누가는 마태와 모순을 초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직접적이고 독립적인 검증을 받을 수 없었기에 이러한 세부 사항을 빠뜨린 게 아닐까?
그러나 아직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누가복음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마리아의 정결 예식을 마치고 성전에 올라갔다가 나사렛으로 돌아간다. 마태에 따르면 예수 가족은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나중에 나사렛에 정착한다.
왜 누가는 그들이 정결 예식을 마치고 곧장 나사렛으로 돌아갔다고 말하는 것 같이 썼을까? 나는 그가 그렇게 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구글 지도에 따르면,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 차로 22분, 약 9.3킬로미터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라. 고작해야 몇 시간만 걸으면 되는 거리이다.
어느 날 요셉은 갑자기 예루살렘에 나타나서 물건이 많은 그곳 상점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성전에서 정화 의식도 당일치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정화 의식을 마친 후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이집트로 피신했다. 이런 추론을 더욱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은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보다 늦게 마리아와 요셉을 보러 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헤롯은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마 2:14). 그래서 그들은 고작해야 얼마 동안만 베들레헴에 있을 수 있었고, 필요에 따라서 쇼핑, 정결 의식 등 예루살렘을 들락날락했어야만 했다.
어만은 다시 이 모순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처럼 누가가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조사하고 그가 인터뷰할 수 있었던 목격자들에게 중요했던 사실에 근거해서 복음서를 썼다고 보면,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4. 예수님의 죽음과 찢어진 성전 휘장
이것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이는 또 다른 명백한 모순이다. 마가복음 15:37-39과 누가복음 23:45-46이다. 어만은 이 모순을 매우 직접적으로 지적한다. 성전 휘장이 찢어지고 나서 예수님이 죽은 건지, 아니면 예수님이 죽고 나서 휘장이 찢어졌는지에 관해서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모순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전혀 없다! 먼저, 이 두 구절이 담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텍스트에는 시간 표시가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대략 ‘언제’ ‘이후’ 또는 더 직접적으로 ‘오후 열두 시에’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다음은 누가복음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시간 표시가 없다.
한편 마가복음은 다음과 같다.
발생한 일을 다른 순서로 설명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위의 구절에도 시간 표시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휘장이 찢어진 것은 단순히 등위접속사(kai)에 의해 연결되는데, 이는 ‘그리고, 그러나, 또는, 심지어, 그러나, 아직은’ 등과 같이 다양하게 번역된다.
따라서 누가복음은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마가복음이다.
당신이 거리의 평범한 소녀나 남자라면 이런 차이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ESV와 같은 현대 영어 성경 번역은 단순하고 충분할 때 kai에 대해서 바로 위에서 번역했듯이 ‘그러자’(then)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번역이 보통 사람에게는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어만과 같은 학자가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2]
따라서 등위 접속사를 고려할 때,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요점은 예수님의 죽음과 휘장이 찢어지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내러티브의 요점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었다. 다시 말해, 복음서 저자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죽음과 성전 휘장이 찢어지는 것 사이에는 순서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와 마가복음의 순서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동시에 일어나는 두 가지 일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때 그 중 하나를 먼저 이야기해야만 한다. 동시에 두 문장을 쓰거나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누가와 마가는 단지 문장을 다른 순서로 넣었을 뿐이다.
이것을 모순이라고 부르는 어만의 정직성을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게다가 텍스트 비평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아마도 신약의 헬라어를 알 것이다. 당연히 등위 접속사도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쉬운 사실을 놓쳤다고?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어만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작은 일에 관한 설명이 틀렸는데, 진짜 중요한 일에 관한 설명이 틀리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더 포괄적인 역사적 사건
알려진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성경의 일반적인 신뢰성에 관련해서, 어만은 누가복음 2장과 일치하는 기록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어슨(Brooke W. R. Pearson)은 누가복음 2:2의 핵심 문장을 기존의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가 아니라,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 호적 조사는 퀴리니우스가 시리아를 다스리기 이전에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 있었다.’ 피어슨은 이것이 맞는 번역이며 널리 알려진 역사적 맥락에 매우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음은 ‘누가복음 속 인구 조사를 다시 들여다보기’(Lucan Census Revisited)에 관한 기사이다.
나는 어만이 이 연구를 고려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청중에게 증거가 이끄는 곳으로 가라고 도전했던 그가 이 질문에 기꺼이 응답하기를 바란다. 게다가 그가 뭐라고 했던가? 고집을 부리는 무지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마음을 바꾸고 총명해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론
그렇다고 내가 어만이 제기한 모든 모순을 다 해결한 건 아니다. 그 점을 인정한다. 게다가 나는 그가 더 많은 모순을 들고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그가 제기한 ‘모순’ 중 일부는 결코 면밀한 조사를 견디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단지 텍스트를 주의 깊게 읽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은 명확해졌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아마도 어만은 자신이 주장하는 만큼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1세기에 대한 그의 지식도 자신이 자랑하는 만큼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약하자면, 어만이 복음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복음서를 거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심지어 당신이 이미 결정한 사실에 대해서 그는 단지 확증을 하는 데 불과하더라고 말이다. [복음기도신문]
글렌 혼버그 Glenn Hohnberg | 글렌 혼버그는 그리피스 대학과 주변 도시를 전도하기 위해서 브리즈번 남쪽에 Risen Church를 개척했다. 브리즈번에서 City Bible Forum을 시작하고 이끌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