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사회 참여 증가·친이스라엘 우세 美내 팔레스타인 지지 목소리
가자 ‘인도주의 참상’ 국내외 여론압박에 미 정부도 태도변화 감지
지난달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전까지 평화롭던 지역주민 단체 채팅방에 불이 났다.
이스라엘 민간인 사망자를 애도하는 글이 단초가 됐다. 애도에 동참하는 답글 속에 한 주민이 흐름을 깨고 이스라엘 정권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도 언급했다.
이윽고 채팅방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주민들 간 다툼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서로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뉴욕에 와서 ‘욤키푸르'(유대교 속죄일)란 말을 처음 배웠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쉬는 날이어서였다.
통계를 찾아보니 뉴욕시 인구 5명 중 1명꼴로 유대인이라고 했다. 뉴욕시 유대인 거주 인구가 총 160만명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전체 인구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20세기 초를 전후해 유럽 내 많은 유대인이 반유대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많이 이주했다.
뉴욕 출신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도 자기 할아버지가 포그롬(제정 러시아 시절 러시아 내 유대인에 대한 박해)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에서, 특히 동부에서 주류사회를 장악한 유대인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은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그런데 자녀 학교 휴교일을 찾아보던 중 ‘이드 알피트르'(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명절), ‘이드 알아드하'(희생제)란는 생소한 언어가 눈에 띄었다. 모두 이슬람 명절이었다.
뉴욕시의 이슬람 인구를 찾아봤다. 2018년 기준 약 75만명이라는 통계가 있었다.
뉴욕시 전체 인구의 약 9%로, 10명 중 약 1명이 무슬림(이슬람교도)이었다. 기독교, 유대교에 이어 뉴욕시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종교였다.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고는 하지만, 사회 저변에는 이미 수많은 무슬림이 곳곳에서 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곰곰이 기억을 되돌려보면 뉴욕 거리에서 히잡을 쓴 여성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니캅(얼굴을 가리되 눈은 가리지 않는 이슬람 전통 복장) 차림의 여성도 드물지 않다.
자신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모든 게 힘들었다며 친절하게 계좌 개설을 도와준 은행 직원도 무슬림 이민자였다.
미국 사회에 정착한 무슬림들은 어린이를 포함한 가자지구 민간인을 사지로 내모는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공격에 마냥 침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치권과 경제계, 문화계 등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인 미국 사회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배경에는 이처럼 무슬림 인구가 증가하고 아울러 이들의 교육 수준과 사회 참여도 역시 높아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런 여론 변화는 미국의 대(對)이스라엘 정책에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는 듯하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너무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죽고 고통받았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이스라엘의 총공세를 향해 경고성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는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18일 안보리 회의에서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접근 허용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스라엘의 자위권 언급이 없다”는 이유였는데 거부권 행사는 미국이 유일했다.
동맹인 이스라엘을 감싸기 위해 가자지구 주민을 위한 인도주의 접근 허용을 거부권으로 막은 미국에 국제사회 여론도 악화했다.
이후 미국은 지난 15일 안보리 회의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교전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기권을 택해 결의안 채택을 허용했다.
안보리 결과를 지켜보던 유엔본부 기자실에선 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전쟁 시작 후 한 달 넘게 지나서야 이뤄진 결의안 통과에 아쉬워하면서도 향후 사태 진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안보리 결정 후 한 서방 매체 기자는 “이번 안보리 결의가 이번 전쟁을 멈추는 데 있어 작지만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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