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송준기 칼럼] 우리는 팀이다

사진: Unsplash의Luke Ow

송준기 목사는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의 순종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그같은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칼럼은 그의 저서 발췌와 집필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0-22)

일어나

예수님의 명령 따라가기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불신자가 많이 모이는 곳으로 나갔다. “사람을 낚는 어부”(마 4:19)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의 실행 장소로 우리는 홍대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하철역 세 군데, 홍대입구역과 합정역과 상수역을 잇는 삼각지형 안쪽을 “홍대”라고 부른다. 그곳에 물고기, 즉 불신자들이 많았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에 좋은 곳이었다.

당시 웨이처치 모임의 구성원은 모두 20대 초중반이었다. 같은 또래의 불신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바로 홍대였다. 그렇다고 곧바로 특별한 전도 사역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떤 일이든 홍대에 가서 했다. 밥 먹고, 운동하고, 차 마시고, 공부하고, 일도 했다. 수많은 식당과 커피숍, 쇼핑몰 내의 휴식처, 거리 구석구석이 모임 장소가 되었다.

당시 홍대에는 길거리 공연 문화가 있었다. 아마추어 음악인들과 예술가들이 버스킹(노래를 부르거나 공연하는 것)을 했다. 오가면서 그들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하는 대신에 그들의 다양성을 함께 즐기는 것이 사례(謝禮)가 되는 문화였다.

늘 홍대에서 모이다 보니 우리도 버스킹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 아이디어가 생겼다. 나도 가요 몇 곡은 기타를 치며 부를 수 있었다. 그래서 거리 한편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김광석의 <일어나>를 먼저 불렀는데, 봄볕에 반한 청년들이 꽤 모여들었다.

버스킹에서는 일반적으로 연주자가 공연 중간에 관중에게 말을 건다. 나도 대화를 시도했다.

“이 노래 제목이 뭔 줄 알아요?”
“일어나~.”
“누가 불렀는지도 알아요?”
“김광석~!”
“그런데 광석이 형은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해놓고 자기는 왜 자살했죠?”

몇 초 동안 조용하던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외쳤다.

“인생이 허무해서요!”
“그럼 어떻게 해야 인생이 허무하지 않을까요?”

여기저기서 농담 반 진담 반의 답들이 들려왔다.

“술!”, “연애!”, “그냥 허무하게 잘 살면 돼요!”

나는 기타를 잡은 채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약 10분 정도 대화하면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30분가량 더 노래를 불렀다.

벚꽃엔딩

버스킹 전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과 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음을 발견한 나는 신났다. 곧바로 웨이처치 모임에 알렸다. 그리고 세 명이 함께 거리로 나갔다.

개척 멤버 중에 끼가 넘치는 한 형제가 말했다.

“이왕 버스킹을 할 거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을 준비해야죠.”

마침 <벚꽃엔딩>이라는 곡이 유행이어서 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불렀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그 형제는 거리 한복판에서 노래로 하나가 된 수십 명의 청년들에게 에워싸였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전했다. 당시 버스킹 문화의 특성상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전도 버스킹’ 소식은 SNS를 타고 흘러갔다. 2주쯤 지나자 전도자의 수가 네 배로 늘었다. 웨이처치 멤버들의 친구와 선후배, 가족까지 함께 전도하러 나갔다. 버스킹은 두 시간가량 이어졌고, 우리는 신나게 전도했다.

낙화하던 벚꽃은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다시 폈다. 몇 년째 봄만 되면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유행가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도구가 되었다.

클럽데이

버스킹 전도는 주로 자정쯤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했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어느 금요일 밤에는 지하철을 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전철에서 내린 인파는 역에서 나오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인파는 역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인파로 형성된 이안류(離岸流)에 나도 갇혀버렸다. 결국 나는 막차를 놓쳤다.

사람들을 따라가 봤다. 저녁 버스킹이 끝날 무렵에 클럽 문화가 시작되었다. 거리의 가게마다 바깥으로 틀어놓은 음악이 시끄러웠다. 인파를 따라 나도 클럽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누군가 내 손등에 도장을 찍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클럽데이를 몰라요?”라고 반문했다. 그것은 모든 클럽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표시라고 했다. 나는 ‘이 청년들이 언젠가 성령의 도장(고후 1:22)을 다 받았으면…’ 싶었다. 막차도 끊긴 시간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술 마시고 춤추는 모습을 보니 가슴에 불이 붙었다. 전도를 하고 싶었지만 클럽 안이 시끄러워서 대화가 안 되었다. 나는 바깥으로 나갔다.

새벽 2시쯤 되자 포장마차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그 줄이 200미터가량 되는 가게도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줄에 나도 함께 서봤다. 옆에 있던 청년에게 “이곳이 뭐 하는 곳이냐?”라고 물었다. 들어가서 주문을 하면 아르바이트생이 다른 테이블 손님과 이성간에 짝을 지어준다고 했다.

새벽 3시쯤 되자 거리에는 취해 누워있는 청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로 이십대였다. 막 대학에 들어와서 자기 주량을 모르고 마신 모양이었다. 여학생들도 많았다. 뭔가 속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올랐다. 그곳에 예수님이 필요했다.

양화대교

나는 그 다음 클럽데이에 아내와 홍대 주변을 밤새 돌아다녔다. 그리고 새벽이 왔다. 첫차는 5시 30분에 있었고, 양화대교 방향 정류장에는 밤새 놀다 집에 가려는 청년들이 즐비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유독 내 눈에 띄었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양팔에 문신이 가득했다. 얼굴은 고등학생인데, 행색은 깡패 같았다. 우리 부부가 그의 양옆에 앉았다. 내가 물었다.

“잘 놀았냐?”

그가 시큰둥하게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뭐, 별로요.”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나는 그를 동수(가명)라고 불렀고, 그는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의 문신에 대해 한참 대화했다. 그러고 나서 내게도 문신이 하나 있다고 말해주었다. 동수가보여달랬고, 나는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 왜요?”
“왜냐하면 내 마음에 새겨진 문신이라서 그래.”

나는 예수님의 이름이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말해주며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동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복음을 다 듣고 나서 그가 뜬금없이 말했다.

“형, 내일이 내 생일이에요.”

그는 몇 년 전에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살 집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 뒤 홍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혼자 살고 있고, 곧 입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날은 토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형이 생일파티를 해줄까?”

그가 눈을 반짝이며 못 믿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어, 정말요?”

우리는 주일 저녁 5시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서로의 SNS 계정을 주고받고, 생일파티를 해준다는 약속의 증거로 함께 찍은 사진을 태그해서 올렸다.

“#예수문신#홍대#내일_저녁_5시”

그대의 생일

당시 웨이처치 주일예배에 열 명쯤 모였다. 내가 모임에서 동수 이야기를 나누자 다들 축하해주고 싶다고 했다. 예배를 마치고 한 시간가량 생일파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동수에게 깜짝 파티를 해주기 위해 저마다 아이디어를 냈고, 역할을 나누었다.

우리는 약속장소에 미리 나가서 쇼핑을 하러 온 사람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졌다. 그리고 멤버 중 한 사람이 동수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동수 씨예요? 죄송하지만 준기 형이 못 나온다고 전해 달랬어요.”

동수는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잠시 후에 내가 생일케이크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고, 다른 웨이처치 멤버들도 합류했다. 우리는 그를 에워싸고 축하해주며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동수는 문신이 가득한 팔로 눈물을 훔치며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개나 소나

우리는 홍대 전도를 계속했다. 다음 금요일 밤에 저마다 막차를 타고 홍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무작정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다 힘들면 눈에 띄는 상가 노래방에 들어가서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블랙가스펠을 좋아하는 한 청년이 함께 노래하며 전도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의 지휘에 맞춰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버스킹은 밤에도 사람을 모았다. 그들에게 우리는 또 복음을 전했다.

가끔 상가 업주가 나와서 우리를 쫓아냈다. 그러면 또 다른 곳에서 노래하고, 흩어져 한 사람씩 붙들고 무작정 복음을 전했다. 밤샘전도 소식은 SNS를 타고 퍼졌다. 전도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수가 계속 많아졌다. 그러다가 기독교 방송에 전도 장면이 나갔다. 그러자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 전도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악기를, 누군가는 솜사탕 기계를 끌고 나왔다. 카드를 들고 나와서 전도하거나, 본인이 작곡한 힙합 음악을 통해 전도하는 이도 있었다. 그 밖에 사영리, 팔찌, 주사위, 그림책, 달고나 전도 등 방법은 다양했다.

우리는 먼저 모여서 노래한 후에, 흩어져서 개인 전도를 하는 방식으로 밤새 홍대를 누볐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다 보니 사람들이 우리 모임을 “개나 소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수는 주

‘개나 소나 전도팀’은 밤거리의 이목을 끌었다. 새벽 3시에 춤추며 찬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불신자들이 자주 와서 질문했다.

“아니, 술도 안 먹었는데 왜 이렇게 기뻐해요?”

술 취한 자와 성령에 취한 자들이 뒤섞여 춤을 추었다. 죄인들과 은혜 받은 죄인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상인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주로 클럽 거리에서 전도했다. 그런데 클럽 앞에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손님들이 자꾸 우리 쪽으로 이동했다. 손님을 빼앗긴다고 여긴 클럽 관계자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떠나라고했다. 우리는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얼마 후, 업주들이 우리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하기 직전에 클럽에서 거리를 향해 틀어놓았던 시끄러운 음악이 동시에 꺼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나타나면 거리의 음악이 다 멈추면서 경찰이 바로 출동했다. 한 번은 경찰관이 춤판을 저지하며 개나 소나 멤버 중 한 명에게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여기 대표자가 누구요?”

춤을 추며 찬양을 부르던 그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우리의 대표자요? 당연히 예수님이지요!”

질문한 경찰은 어이없다는 듯 또 다른 멤버에게 물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여기 연장자가 누구요?”

또 다른 이도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연장자는 당연히 예수님이지요!!”

질문한 경찰은 말로 주의를 준 후에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경찰관은 두 번 연속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라고 대답했던 전도자를 글썽이는 눈빛으로 한참 쳐다보다가 떠났다. 아마도 크리스천인 듯했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

그의 정의에 따르면 교회란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다. 또 “각처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모든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따르면 모이나 흩어지나 교회라는 것이다. 내 교회도 네 교회도 함께 예수님의 교회이다.

웨이처치는 이것을 밤거리에서 배웠다. 개나 소나 전도팀을 보며 우리의 담임목사님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의 통일성은 예수님뿐이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서로 다르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우리에게 보내주셨다(엡 4:11). 그 다양성 안에서 예수님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신다(엡 4:12). 우리는 예수께 복종하는 일치 안에서 서로에게 복종한다(엡 5:21).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후 3:17). 죄로부터의 속박뿐만 아니라 건물과 조직의 한계로부터도 우리는 자유롭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서로를 섬기며 자유롭게 교회를 할 수 있다.

교회의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 고린도에 있어서 고린도교회였으니 홍대에 있을 때는 홍대교회가 되고, 개나 소나 다 모여 전도하면 개나소나교회로 불리면 된다.

교회가 시대초월적일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뿐이다. 그분만이 영원하시고, 그 외에는 다 유한하다. 예수님이 곧 교회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것임을 믿으며 그분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사역의 특정 형태나 방법에 초월적인 교회가 가능하다.

만약

만약 우리가 설립 목사 한 명의 은사를 따라가지 않고, 누구든 함께 예수님을 따라간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담임목사님으로 대한다면, 수백만의 성도들이 한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현장 교회에서 사역하도록 허용된다면, 심지어 각 나라와 민족과 지역에 흩어져서 존재하며 서로 다른 교회의 이름을 가져도 같은 교회 소속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어떨까?

또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도록 격려하고 도울 뿐, 서로 통제하지 않고 네트워크 형태로 연합한다면, 교단 중심 연합이 아닌, 예수 중심 연합을 한다면, 건물이나 신학교 이름으로부터 자유롭게 제자화하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면, 특정 사역방법론에 매료되지 않고 예수께만 빠져서 산다면 어떨까?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서 예수님으로 하나가 된다면, 다양한 교회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 누구의 파라고 주장하지 않고, 다만 예수파가 되어 자유롭게 이합집산(離合集散)이 가능하다면, 모든 성도들이 주일성수가 아닌 월화수목금토주일성수를 한다면, 십일조로 세금과 헌금을 나누지 않고, 십의 십조를 다 주를 위해 쓴다면, 만약 이런 것들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면?

우리가 교회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면?

성공의 비밀은 리더십이고, 리더십의 조건은 좋은 팀을 만드는 것이다_토니 던지(Tony Dungy)

내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을 꾸는 사람이 성공한다_마윈(Ma yun)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끝까지 가라(도서출판 규장)>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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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기 | 총신신대원 졸. 웨이처치 담임 목사.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을 통해 순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그동안의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담았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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