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삶을 선택한 강을수 장로
인자한 미소 사이로 깊게 패인 주름에서 세월의 풍상이 느껴졌다. 젊은 시절 누구나 바라는 인생의 성공가도를 달리며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던 강을수 장로(65. 신림감리교회).
그러나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가 어느날 복음을 만났다. 이제는 가정과 교회에서 만류해야 할 만큼 주님을 향한 그의 특별한 열정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주님이 써주시기만 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해 온 삶을 드리고 싶다는 그의 고백을 들어본다. <편집자>
– 처음 신앙생활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2000년도 봄이었어요. 몸이 아파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어요. 직장에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죠. 진단 결과, 대장암이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수술은 했는데, 나 때문에 아내가 병에 걸린 것 같아 미안했어요.
저는 그동안 세상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며 결혼 후 외도도 했고, 좋은 직장, 월급을 많이 갖다 준다며 자만심에 폭언도 많이 했어요. 그런 죄책감으로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 새벽기도에 나가기로 했어요. 그동안 지은 죄를 만회해보려는 마음에 교회에서 봉사도 했죠.
예전부터 아내가 자주 하던 말이 있었는데, 미련한 사람은 절구에 넣고 찧어도 그 미련이 벗겨지지 않는다고요. 알고보니 성경말씀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딱 그랬어요. 사고로 장이 파열되고 한쪽 시력을 잃으면서도 세상이 좋다며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주님은 아내를 통해 계속 저를 부르셨는데, 결국 아내의 병을 통해 주님 앞에 나간 거죠.”
– 본격적으로 믿음생활이 시작된 것이군요.
“장로로 피택되고 믿음 좋은 장로가 되고 싶어 전도에 열심을 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저의 권위를 내세워 사람들을 억지로 교회에 끌고 오기도 했어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전할 복음이 제 심령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러던 차에 2011년 말에 총체적인 복음 앞에 서는 은혜를 입었어요.”
– 어떤 은혜가 있었나요?
“십자가 복음을 듣고, 나는 죽고 예수생명으로 산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몇 개월 멍한 가운데 지냈어요.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동안 믿음으로 사는 것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 그대로 믿음으로 나를 주님께 드리는 삶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말씀으로 살아가려니 내가 얼마나 죄인 중에 괴수인지 더 명확하게 보이더군요. 죄가 좋아 밥 먹듯 죄를 지었죠.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성공한 줄 알았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저였죠. 그런 제게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았다는 사실은 날마다 복음이었어요. 복음이면 충분했죠. 늦은 나이지만 더욱 복음으로 살고 싶어 선교단체에서 여러 훈련을 받게 되었어요.”
– 어떤 훈련을 받으셨나요?
“선교와 기도훈련을 받았어요. 훈련학교를 수료하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줄 알았어요. 그러나 착각이었어요. 얼마나 미련하고 더딘지 주님은 저에게 조금씩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것 같아요.
훈련을 받으면서 정말 하나님만 믿으면서 사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됐어요.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만을 기다리는 증인들을 보면서 저도 함께 소망하게 되었어요. 나이 들고 늙었다고 불가능한 게 아니라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가능하겠구나. 주님께서 저의 그런 소망을 기뻐하셨는지 아웃리치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참 많이 경험하게 됐어요.”
“먼저 미얀마로 아웃리치를 가게 됐어요. 처음 해외 아웃리치를 나가기로 결정했을 때 늙은 내가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됐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사탄의 속임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선교는 젊음이나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미얀마를 처음 보는 순간 답답함이 밀려왔어요. 쇠다곤 높은 산위에 세워진 황금탑과 철옹성 같은 우상들은 그곳에서 섬기는 선교사님들의 순종의 삶으로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 보였어요.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어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 23:17~18)” 두 말씀을 붙들며 기도했죠. 보이는 것은 아무 소망도 없지만 하나님이 미얀마 안에 미래와 장래가 있게 하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어요. 기도의 자리에 있으니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 어떻게 기도의 자리에서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나요?
“선교에 대해 늘 조급한 마음이 있었어요. 나이가 많아서 제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보탬이 되고싶은 마음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을 냈죠. 지금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았는데 말이죠. 전능한 하나님 앞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선교지에 나가서까지 꼼짝없이 기도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비로소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나님이 하신다는 소망으로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면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어요. 기도가 영적 싸움의 유일한 무기이고 하나님의 전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아웃리치 이후 교회로 돌아와 제가 할 일, 바로 기도를 시작했어요.”
–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궁금하네요.
“2012년 10월, 저희 교회에서 일주일 간 24시간 쉬지 않는 열방을 위한 기도시간을 가졌어요. 정기적으로 하려고 했지만 곧 멈춰졌어요. 이 기도가 다시 이어지기를 계속 기도해 오던 터에 올해 목사님께 제안을 드렸어요. 바로 승낙해 주셔서 월삭기도회로 한 달에 한 번 12시간씩 열방을 위한 기도가 시작됐어요. 적은 인원이지만 함께 기도하는 분들은 많은 은혜가 된다고 하셔요.
더불어 제가 매주 화요일마다 한국교회, 북한, 다음세대와 열방을 위해 중보하는 모임을 섬기게 됐어요. 처음에는 몇 명이 올까 기대반 걱정반으로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면 내가 잘한 것 같았어요. 결국은 그것조차 내려놓게 하셨어요.
기도모임에 나오는 사람이 없을 때면 속상하고 낙심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말씀과 기도로 내가 깨어지지 않으면 소망이 없음을 알게 하셨어요.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모함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오기까지 저를 밀알로 삼아주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요.”
– 순종의 걸음이 참 감동적입니다. 그런 시간을 주님이 어떻게 이끄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셨어요. 2012년부터 교회에서 해외선교부장으로 섬기게 됐어요. 아무것도 모르지만 기도하면 된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했어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세계지도를 사서 붙이고, 선교소식과 기도제목을 받아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정보집을 만들고 스마트폰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개설해 홍보하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선교지에 계신 선교사님들께 날마다 전화해서 기도제목을 물어봤는데 처음에는 어려워하셨어요. 인사치레로 하다 말겠지 하는 마음이셨나봐요. 그런데 요즘은 좋아하시고 깊은 속 마음까지 나눠주세요.
잘하지는 못해도 기도하겠다는 자세를 잡는 것만으로도 주님이 예쁘게 보시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흘러가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기도의 내용도 하나님께 맡기고 의탁하는 기도로 바꾸어 가시더군요.”
– 해외에 계신 선교사님들께 큰 힘과 위로가 되었겠네요.
“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선교사님들에게 선물을 베푸신 일도 있었어요. 기도하던 중 선교사님들의 부모님들의 마음을 위로해드리고 싶은 마음을 주셨어요.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 홀로되신 분들, 몸이 편치 않으신 분들에게 곁에 없어서 돌아볼 수 없는 자식인 선교사님들을 대신하여 명절에 조그마한 선물과 위로의 편지를 보내드리기로 결정했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어느 부모님은 고맙다며 저희 교회까지 찾아오시기도 하고, 한 선교사님은 10여 년간 선교했지만 이런 위로는 처음이라고 큰 힘이 된다고 하기도 했어요.”
– 해외 선교부를 섬기면서 누렸던 또 다른 은혜를 소개해주세요.
“선교훈련을 받을 기회는 없고, 성도들에게 선교에 대한 마음을 심어주고 싶어 작년에는 교회 내에서 자체 훈련과정을 개설했어요. 주일 오후에 두시간을 할애하여 7주차로 진행했어요. 선교사님들을 초청하여 메시지를 듣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학교를 진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교회 행사와 겹치기라도 하면 더욱 소수의 인원이 모였죠. 그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신실하게 이루셨어요.
아웃리치까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두 명의 청년이 계속 선교훈련을 받으며 순종의 발걸음을 이어갔어요. 올해는 장년을 대상으로 해외 아웃리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선교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그 길을 걷는 성도들의 헌신이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어요.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복음의 증인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어요.”
–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인지, 들려주시겠어요?
“믿음의 걸음을 걸으면서 복음의 산 증인들을 많이 만나게 하셨어요. 암 판정을 받고도 집에서 죽으면 단순한 병사지만 기도하다 죽으면 순교라며 용감하게 아웃리치에 출정한 권사님, 하루가 멀다하고 테러가 일어나는 나라에 씩씩하게 방탄복을 입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신 또 다른 권사님, 아픈 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선교지로 떠난 목사님 가정, 젊은 나이에 선교사로 삶을 헌신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볼 때면 마음을 다잡게 되요.
예수 생명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불붙는 듯한 사랑 때문에라도 그냥 편하게 늙어 죽을 수 없구나. 우리의 몸이 모두 닳도록 하나님께 쓰임 받고 주님 앞에 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젊은이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저에게 주신 특권이었어요. 젊은 지체들과 함께 있으면 제 옛날 생각이 나서 더욱 기도하게 돼요. 이 나라의 미래가 이들에게 달려 있잖아요. 믿음과 기도로 살겠다고 주님께 순종한 청년들을 보면 얼마나 귀한지요. 더 많은 청년들이 일어나길 더욱 기도하게 되요.”
– 앞으로 계획과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가끔 교인들이 “강 장로! 힘들지 않아?”라는 질문을 해요.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것 같아요. 저의 열정이 식어버리는지 아니면 믿음으로 끝까지 달려가는지를요.
우리 가족들도 이런 저의 삶을 반대는 하진 않지만 지지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제가 주님 품에 가고 나면 모두가 알게 되겠죠. 믿음으로 주를 따르는 삶이었다는 것을 말이에요.
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기적이었어요.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저 같이 나이든 사람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끝까지 놓지 않으셨어요. 이 은혜 안에 살다 주님 만나고 싶어요.
어느 날 아내가 제 머리카락을 보더니 “당신 머리카락이 굵어졌네요.”라고 하더군요. 주님 때문에 회춘하나 봅니다.(웃음) 하나님 앞에서 젊은이로 주님 만날 때까지 행진하도록 기도해주세요.” [GNPNEWS]
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