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주간의 마니푸르 내전 지역 사역 중 가장 극적인 일정의 하루였습니다. 한 날에 이번 마니푸르 내전의 두 적대 종족의 난민캠프를 다 방문한 것입니다. 그것도, 정확히 같은 구호품을 갖고서 말입니다.
처음에 방문한 ‘왕징’ 난민캠프는 ‘메이떼이’족의 난민캠프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합니다. 이번 내전에서 쿠키족에 의해 가장 심각한 공격을 받은 ‘모레’라는 지역에서 온 이들인데, 안 그래도 다른 메이떼이족들로부터 “반드시 ‘모레’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그들이 가장 힘든 이들입니다.”라는 당부를 들은 적이 있는 만큼, 저희도 상당한 준비를 해서 갔습니다.
이곳에는 237가정, 약 1000여 명이 살고 있었는데, 난민캠프로 징발되기 전에는 오랫동안 버려진 체육센터였던 것 같습니다. 거대한 축구장 스탠드가 그들의 난민촌이 되어있었고, 무릎까지 자란 ‘잔디 구장(?)’은 방목된 소들의 풀 뜯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본관 건물이었던 곳에도 수백의 난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워낙 규모가 크고, 하드웨어도 건실한 곳인 만큼 공무원이나 봉사자들도 꽤 많이 파견되어 있었습니다. 경찰도 몇 명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난민캠프 안에서도 난민 아이들을 위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또 주변의 학교들에서도 난민 학생들을 받아주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비싼 사립 학교들에서도 난민 아이들을 받아준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메이떼이’족 안에서는 서로 돕는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듯 했습니다. 인구도 훨씬 많고 정치력과 경제력도 상당한데다, 난민 피해자가 전체 메이떼이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으니 돕는 손길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쿠키족 난민 캠프들에 비해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지난 5월에 방문했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난민촌마다 정부에서 식량은 충분히 보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과 재산이 다 불에 탄 이들이라, 가장 필요한 생필품들이 덜 구비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수요는 ‘담요’였습니다. 저희는 200개의 담요를 전달하고, 또 어린이들에게는 ‘킨더조이’ 초콜릿을, 그리고 여러 주민들에게 206개의 ‘메이떼이’어 만화 전도책자가 들어있는 ‘절제회 전도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난민촌에 갈 때마다 늘 준비해 가는 ‘킨더조이’ 초콜릿은 오랫동안 장난감과 단 것에 목말랐던 아이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사실 내전 전에도, 생일에나 하나 얻어먹어 볼까 하던 비싼 킨더조이 초콜릿, 한국이나 미국 어린이들에게도 값이 만만치 않은 그 아이템은 내전 이전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게 해 주는 불꽃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큰 아이들에게는, 동생들의 장난감 조립을 도와주거나, 자신들에게 필요 없는 장난감을 양보하며 모처럼 언니 오빠 노릇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구요.
그리고 메이떼이어 만화 전도책자 … ‘땅에 쓰신 글씨’에서 만든 만화 전도책자들 중 가장 쓸모가 적었던 이 언어 버전은 이번에 정말 아름답게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내전의 와중에, 가장 필요한 담요와 함께 주어진 선물이 되었으니까요. 담요가 육체의 따스함을 주었듯, 초콜릿이 정서의 따스함을 주었듯, 만화 전도책자가 영혼에 불을 붙여주기를 기도합니다.
이곳에서도 차오 선교사님은 ‘나가’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본인이 크리스천임을 밝힌 후 모두를 위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후, 난민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비록 기독교 부족인 ‘쿠키’와의 내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이지만, 또 다른 기독교인인 나가족과 한국인들의 사랑 덕에 최소한 ‘반기독교’ 심정은 줄어들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만화 전도책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메이떼이’족 난민들을 돌보는 사역을 마친 후, 오후에는 ‘쿠키’족의 본거지를 방문했습니다. 쿠키족과 메이떼이족의 경계 지역에는 아직도 많은 군인과 경찰들이 완전히 무장하고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검은 유니폼을 입고 총기로 무장한 청년들이 차를 세우기도 했는데, 드라이버는 긴장하며 쿠키족 언더그라운드들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지하 세력’ 혹은 ‘갱스터’ 등을 의미했겠지요.
다만, 바로 앞차에 현재 중립 중인 ‘나가’족의 전통 옷을 입고 있는 차오 선교사님이 계셔서, 우리 뒷차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쿠키족도, 메이떼이족도 현재 중립인 나가족이 편드는 이들이 결국 승리할 것을 알기에, 이제는 나가족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지난 10월 3일 쿠키족 부족장 회의에서 다시는 나가족에게 거리 통행료를 받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농경 민족인 메이떼이에 비해, 소수지만 더욱 군사적인 부족 문화를 가진 쿠키족들은 곳곳에 여러 거친 정치 슬로건들을 낙서로 남겨 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쿠키족에 의해 불에 탄 힌두교 신전의 잔해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물론 메이떼이족에 의해 불탄 교회의 수가 훨씬 많지만요)
쿠키족 난민캠프 중 가장 큰 축(약 800명)에 속하는 ‘헹붕’ 지역에는 밤늦게 도착했습니다. 이들 역시 반년 전과는 달리, 정부로부터 식량만은 부족하지 않게 공급받고 있던 터라 이번에는 더 필요하다는 담요 200장을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난 5월, 부족의 ‘룬’ 공주에게 한 약속은 지켜준 셈이 되었습니다. 이곳 역시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는데, 쿠키족 난민캠프의 이야기는 룬 공주와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별도의 게시물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쿠키족은 인도 북동부뿐 아니라 미얀마나 방글라데시에도 걸쳐있는 부족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위험하고 살기 좋은 인도로 많이 넘어온 상황입니다. 98.1%의 복음화율을 자랑하지만, 복음을 받기 이전, 정글 속 전투 종족으로 살아온 시절이 천 수백 년이라, 엄청난 양의 총기 보유량과 불굴의 전투력으로 정부군이나 메이떼이족에 격렬히 저항하기도 합니다.
쿠키족들은 추장(King)들을 중심으로 뭉쳐 무력으로 조상들의 땅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고, 정부와 메이떼이족은 ‘인도 건국 이전부터 존재했던 쿠키족들은 인정하지만, 그 후에 슬금슬금 들어온 불법 쿠키족들에게는 자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관련 내막은 이전 기사 참조)
이 내전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수만의 난민들이 영원히 고향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자기들의 재산은 적대 부족의 것이 된 지 오래입니다. 몇 대가 살아온 집들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가끔 이미 다른 사람의 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거나, 혹은 군의 주둔 기지가 되어 다시는 못 돌아가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메이떼이 우세지역에서 쿠키족이 당한 그대로, 쿠키족 우세지역의 메이떼이들이 당했으니 서로가 가해자요, 서로가 피해자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기독교인인 쿠키족이 더 안타가워 보입니다. 절대 다수의 힌두교인들에 의해 200여 교회와 마을이 불탔으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리 잘 봐줘도 쌍방과실인 이 사태 속에서, 그래도 98.1% 복음화율의 쿠키족이 조금 더 복음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쿠키족 교단에서 메이떼이족들에게 선교사도 보내곤 했었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반 기독교 정서가 너무 커졌을 듯 합니다.
그러나, 쿠키족도 아니고, 메이떼이족도 아닌, ‘나가족’과 ‘대한민국’에 속한 크리스천인 저희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차오 선교사님의 멋진 나가족 전통의상은 요셉의 색동옷처럼 빛났고, 저희 유니폼의 태극기는 한류에 열광하는 양 부족의 젊은 난민들의 입에서 ‘사랑해요.’와 ‘감사합니다.’가 끝도 없이 나오게 했습니다. 그런 저희가 주님의 평화의 사자가 되어, 진리와 사랑의 길을 열어가고자 합니다. 복음을 심고자 합니다. 계속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관련기사]
[원정하 칼럼] 크리스천의 폭력에 의해 난민이 된 사람들- 마니푸르 내전 지역 르포(3)
[원정하 칼럼] 희망의 여정 3000km, 마니푸르 내전 지역 르포(1)
[원정하 칼럼] 내전 지역의 고아원, 마니푸르 내전 지역 르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