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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계 주민들 필사의 대탈출…5천명 가까이 국경 넘어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무력충돌에 피신한 주민들(스테파나케르트 AP, 연합뉴스 사진)

옛 소련 화약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아제르바이잔 장악 후 ‘살얼음판’
난민들 “집도 살림도 모두 놔두고 몸만 빠져나와” 한탄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 영토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사실상 장악함에 따라 이곳에 사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대탈출’을 시작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정부는 25일(현지시간) 오전 8시 기준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주민 4천850명이 아르메니아로 넘어왔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로 들어온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 수는 이날 오전 1시 기준 발표 당시 3천명이었다. 7시간 만에 1천850명의 이주자가 추가된 것으로, 향후 그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탈출한 이들이 집과 세간살이를 그대로 놔두고 최소한의 소지품만 챙겨서 간신히 빠져나왔으며,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도 거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한 난민은 “지난 이틀 동안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다”며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우리를 위해 지은 집이 이제 아제르바이잔 사람들 손에 남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메니아에 도착한 난민들은 현재 국경 인근 마을의 호텔에 머물고 있으나, 장기적인 미래는 불확실하다.

앞서 지난 21일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TV 연설에서 “만약 필요하다면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 아르메니아인 4만 가구가량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지만, 이들의 향후 거주지 등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파시냔 총리는 이날도 연설을 통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효과적인 보호 시스템이 없을 경우 “인종 청소를 당할 위협”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 지도자인 삼벨 샤흐라마니안 측의 다비드 바바얀 고문도 이날 로이터 통신에 “우리 국민은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살기를 원하지 않고 인종 청소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아제르바이잔 군에 맞서 무장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을 잡아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널리 퍼졌지만, 많은 난민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출국이 허용됐다.

이에 따라 여러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이제 탈출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NYT에 말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인정되지만,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대거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 사는 12만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계 주민은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세우고 아르메니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요구해왔다.

양국이 이곳을 둘러싸고 두 차례 전쟁을 벌여 ‘캅카스의 화약고’로 꼽힌다.

작년 12월부터는 아제르바이잔이 이 지역과 아르메니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라친 통로’를 차단해 식량·연료 공급이 끊기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 상태가 벌어졌다.

이어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지난 19일 지뢰 폭발로 자국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일대를 공격했다.

그 결과 하루 만인 20일 자치세력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 아제르바이잔은 이 지역 지배권을 굳혔다.

아르메니아는 그간 ‘숙적’ 아제르바이잔과 분쟁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불안한 평화를 이어왔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 지역 분쟁 개입에 소극적으로 되고 아르메니아가 친서방 쪽으로 움직이자 아제르바이잔이 공세에 나서고 있다.

한 전문가는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에서 ‘그린 라이트’를 받지 않았다면 이번처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난 열 달 가까이 라친 통로 차단으로 위기를 겪은 주민들은 거의 믿지 않는 가운데 아르메니아로 탈출하겠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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