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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서구의 친무슬림화,기독교 박해 본격화

100주년을 맞은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기독교 박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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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서구의 친무슬림화와 기독교 박해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종교문제전문 사이트 RLPB 대표 엘리자베스 켄달은 최근 ‘아르메니아 대학살 1세기를 추모하며’라는 제하의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크림전쟁에 자국을 지원한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에 대한 대가로 자국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적용된 ‘딤미’(각종 권리가 없는 2등시민)라는 신분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는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크림전쟁(1853-1856)은 러시아 대 오스만제국과 유럽연합국간의 전쟁으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딤미제 폐지로 인해 이교도로부터 보호금 명분으로 징수하는 ‘지즈야’(인두세)가 중단되자 이를 지하드(전쟁), 학살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1860년에는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약 2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했다. 또 1876년에는 ‘불가리아 공포(불가리아인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무자비한 진압)’ 에서 2만5000여 명의 동방교회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했다. 1895-96년에는 터키 아르메니아에서 아르메니아인 20만여 명이 살해됐다.

친무슬림 정책을 유지하고자 했던 영국은 동방교회 기독교인들을 비방하는 선전 캠페인을 펼치는 동시에 그들을 살해하는 것에 대해 묵인했다. 학살은 계속됐다.

1914년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구 국가들은 이슬람을 현대화하고 온건하게 하는 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의 자기 결정권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친무슬림 유럽 세력들은 살아 남아있는 기독교인들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5년 무렵, 아르메니아와 앗시리아 기독교인 소수 민족들은 대학살 상황에 직면했다. 무슬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임무 즉 그리스도교를 뿌리 뽑으려는 캠페인을 위해 당시 어수선한 혼돈 상황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이다.

터키에서 발생한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시대적 배경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말 시리아, 레바논, 불가리아 기독교인 살해돼

오늘날은 힘의 균형이 잡힌 세기로 서구의 일방적인 주도권 시대는 끝이 났다. 그것은 이슬람권역인 중동도 마찬가지이다.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무슬림 중심 정책이 붕괴됨에 따라 힘의 공백이 발생한 지역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또 터키, 아랍 또는 페르시아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 중 어떤 종파가 지배할 것인지를 놓고 다양한 형태의 경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중동지역의 모습이다.

이같은 경향은 오늘날 유럽과 중동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에 남아 있던 앗시리아 기독교인에 대한 대학살은 이미 진행되어 왔으며, 기독교인의 숫자는 140만 명에서 불과 20만 명으로 줄었다.

서구에서 대량 학살을 하는 이슬람에 병력과 무기를 지원하는 바람에 시리아에 남아있는 아르메니아와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의 미래는 중대한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신오스만이즘(과거 오스만제국을 동경하며 강대국으로 발전하려는 터키의 정치 이념)과 이슬람을 지지하는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인들과 선교사들이 터키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비방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기독교인들은 언제든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터키정부, 아르메니아인·선교사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

현재 서구국가들은 1915년 당시와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무슬림 정책을 법규화 했다. 이란과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에 반대하고 터키와 아랍과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에 반대하는 이란과 제휴했으며 이라크의 시아파와 시리아의 수니파를 지원했다.

계속되는 기독교인들의 희생 가운데서도 서구는 그동안 대학살을 방지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서구는 일어나야 한다. 이슬람을 지원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반대하는 분명한 소리를 내야한다고 기독 컬럼니스트 엘리자베스 켄달은 말한다.

켄달은 “참회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 외에 다른 응답을 기대할 수 있는가? 서구는 그리스도의 소중한 자녀들을 원수에게 넘겨주었다. 서구는 주님의 진노의 잔으로 이미 취해있고 그 결과는 곧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의 죄를 돌아보고 참회해야 할 때이다. 죄성으로 얼룩진 반복된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비통한 심령의 회개를 촉구한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의 때다. 지금이야말로 흑암의 권세를 이기신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고 전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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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신자가 침례를 받는 모습. 아르메니아 인구의 90% 이상은 문화적으로 기독교인이다. <출처: Joseph Hovsepian Ministries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0, 45)”

기도 | 주님의 사람들을 대항하여 대학살에 공조한 모든 나라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영을 부어 주소서. 실제로 살해에 가담하거나 중재하지 못한 죄에 대해 회개합니다.

오늘날 중동지역 가운데 자국에서 추방되었거나 절박한 위험에 처한 모든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히 분쟁과 분열로 고통하는 시리아와 이라크에 있는 아르메니아와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고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 피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무엇보다 주 안에서 한 몸 된 교회가 고난당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고통당하는 영혼을 돕는 교회로 굳게 세워주소서. [GNPNEWS] 

복음기도신문 국제팀
국제팀은 다양한 외국어 번역에 은사를 가진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기도로 열방을 섬길 주님의 사람을 기다립니다. 문의 ☎ 070-7417-0408~10,


아르메니아 대학살이란

1915년, 아르메니아인들 150만 명 학살당해

100년 전인 1915년 4월 24일 밤, 터키청년당 정부는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 있는 200여 명의 지식인과 지역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그리고 이들을 터키 아나톨리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감옥으로 끌고 갔다.

오늘날 ‘피의 일요일’이라고 알려져 있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시작됐다. 이날 이후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체포와 국외추방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때 2345명의 아르메니아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해외로 강제 이송됐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렇게 1915년부터 1923년까지 전체 인구 200만 명 중에서 약 15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또 터키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을 죽여도 좋다는 면책특권까지 보장 받은 채 잔인하게 살해하며 인종말살정책을 펼쳐나갔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오스만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소수민족 정화라는 이유로터키 중심부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됐다. 이때 처형된 사람들은 소아시아 전 지역에 걸쳐 적어도 50만 명의 그리스인들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75만 명의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이었다. 이같은 학살에는 터키인을 중심으로 쿠르드족과 아랍족도 일부 가세했다.

1915년 4월 24일이 대학살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박해가 시작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였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오스만제국은 유럽에서 병든 자와 같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온 기독교 민족들은 독립운동의 기회로 여겼다.

필연적으로 기독교인의 반란은 잔인하게 저지되고, 기독교인들은 처형이나 학살을 당하고 포로로 강제 이송을 당했다. 이때 동방교회 기독교인의 오랜 보호자로 알려진 러시아는 박해 받는 기독교인들을 변호하기 위한 조정에 나섰다.

그것은 1774년에 캐서린 대왕에 의해 중재된 쿠츄크-카이나르지 조약(1768-1774년의 러시아·오스만 전쟁이 투르크의 패배로 끝나고, 다뉴브강 하류의 쿠츄크 카이나르지에서 두 나라 간에 체결된 조약)에 따른 러시아의 권리였다.

1853년, 러시아 군대는 오스만제국 등에 대해 수차례 경고한 후에 극심한 박해로부터 그리스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뉴브 지역을 통과했다.

그러나 유럽은 이 사건을 제국주의자들의 영토 확장을 위한 구실로 간주했다. 전세가 기울자 터키는 영국에 도움을 호소했다. 이 크림전쟁이 유럽의 지지를 받은 오스만제국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러시아를 지지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무참한 죽음에 직면해야 했다.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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