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하와이 산불로 인해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천채의 가옥이 전소한 사건 앞에서 기독교인은 어떻게 기도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짐데니슨 박사가 데니슨포럼 기고문을 통해 전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 하와이의 라하이나 마을 전체, 라하이나 주변 지역까지 전체가 사라졌다.” 현지 주민 조던 사리베이는 이번 주 마우이 섬에 있는 자기 고향을 집어삼킨 하와이 산불을 이렇게 묘사했다. 몇몇 주민은 화마를 피하고자 바다로 뛰어들었고, 한 주민은 그 모습은 “지구 대종말 상황”이었다고 표현했다.
지난 6월 마우이를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던 아내와 나에게는 이번 비극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가본 곳 중 가장 경치가 아름답고 유서 깊은 라하이나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라하이나는 한때 하와이 왕국의 수도이자 19세기 중반에 고래잡이 어선들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허먼 멜빌(모비딕의 저자)은 이곳에 정박했던 선원 중 한 명이었다. 이 마을은 국립 사적지에 등재되어 있으며, 55에이커(22만 2577m2)가 역사 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마우이에서 가장 오래된 살아있는 반얀트리가 공원 전체에 펼쳐져 있는 것도 이 마을의 놀라운 명소 중 하나였다.
조쉬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이번 하와이 산불로 “1700채 이상의 건물”이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마우이 카운티가 공개한 태평양재해센터(PDC)와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산불 피해 조사 결과 11일 기준 라하이나 지역에서 2207채의 건물이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재 진압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8월 11일 기준 사망자 수는 55명으로 집계됐다. 몇 주 또는 몇 달이 지나야 피해의 전모를 알 수 있겠지만, 라하이나가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
사리베이는 “전쟁터처럼 보이는” 그곳을 떠나면서 이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절망했으며 “그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와이 산불 참사를 보며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은 것들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에 대한 뉴스 매체의 보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나도 기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을 회개한다.
나는 산불 동영상을 보고, 현장의 소식을 듣고, 비극적인 상황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나는 이번 참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안전과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의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에 대한 응답은 기적, 즉 하나님이 인간사에 개입하는 특별한 사건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나는 조던 사리베이가 기도한 것처럼 산불 자체를 멈추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았다.
나는 예수님께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갈릴리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어 달라고 간구하지 않았다. 허리케인급 강풍을 불러일으키셔서 불길을 가라앉히거나, 폭우를 내려 불길을 잠재우거나, 산불을 멈출 수 있는 조치를 해 주시길 요청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떻게 했는가?
자기실현적 예언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라기 3:6)라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는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은 지금도 하실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의학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신체가 치유되고, 논리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기적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나는 하나님께 기적적으로 개입하셔서 마우이 산불을 멈추게 해달라고 즉시 기도하지 않았을까? 당신이 그런 기적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왜 기도하지 않은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기적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만큼 자주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적을 구하는 기도를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시 전화를 걸어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기로 한 결정은 상대방이 더 이상 전화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존중하신다(요한계시록 3:20).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야고보서 4:2은 말씀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적게 구할수록 더 적게 받을 것이며, 결국 더 이상 구하지 않게 된다.
기대치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
우리는 하나님을 탓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다. 사실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에 따라 좌우된다. 기적을 위한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기적을 위해 기도할 것이고, 기적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반드시 행하셔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대하는 기도는 우주의 왕이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반드시 행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것 또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의 “가시”를 제거하시거나 구속해 주신다(고후 12:7-10).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거절이 우리에게 ‘예’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있을 때까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린도전서 13:12).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없을 때도,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신뢰할 수 있다.
다른 대안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던”(마 13:58) 나사렛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영혼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지 못한 것”
나는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기적을 위해 더 열성적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탈 기독교 문화 가운데 더 눈에 띄게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찰스 스펄전은 몇 달 동안 설교를 했지만 단 한 명의 회심자도 보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한 젊은 목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펄전은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이 입을 열 때마다 축복해 주시고 영혼을 구원해 주실 거라고 기대하는가?”라고 물었다.
“아니요, 선생님.”이라고 청년이 대답했다.
스펄전은 “그러므로 당신이 영혼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믿었다면 주님께서 축복을 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여러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기를 기대하는가?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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