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의 중심 주제는 유월절, 시내산 율법 수여 그리고 ‘성막’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출애굽기의 절정은 ‘성막’(Sanctuary) 사건이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을 의미한다. 또 성막은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학(하나님의 임재, God’s presence)의 한 주제로 면면히 흐르고 있다(출 25:8, 29:45).
성막은 반드시 모세에게 계시하신 식양대로 지어야 한다(출 25:9). 히브리어 단어 “타브니트”(식양)는 성전을 지을 때 한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됨을 전제한다.
사람의 생각대로 조그마한 오차라도 허락할 경우 전혀 다른 형태의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식양대로 지어질 성소가 성경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聖所)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출 25:8)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성소”에 거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소를 지은 “너희 안에” 거하겠다고 표현하고 있다.
히브리어로는 특별한 전치사 “베토크”, in the midst of 를 사용했다. “-안에”(into)라는 전치사 “베트”와 “가운데”(midst)라는 의미를 지닌 명사 “토크”를 사용하고 있다.
성소를 지을 것을 명하신 하나님은 건물이 아니라 성소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깊은 곳에(internally) 거하시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 이후 성막이 봉헌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빽빽한 구름처럼 뒤덮였던 초기 모습과는 달리, 거룩함은 서서히 밀려나고 다른 것으로 조금씩 대치되어 갔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됨”(oneship)이 아닌 말라버린 가지처럼 생명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선지자들은 이를 보고 통곡했다(사 1:11~13, 렘 7:11, 말 1:10, 요 2:16).
홉니와 비느하스 사건(삼상 4:3, 11), 실로의 성소 파괴사건(렘 7:12)은 예루살렘 성전을 장소적 개념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 하나님은 성전을 우상화하는 이스라엘에게 경고를 발하셨다(렘 7:4).
이를 무시한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신념은 예루살렘의 처참한 폐허와 멸망의 비극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사 7:14)을 친히 약속하시고 그의 아들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주님이 우리 속에 사시는 진리’가 실제가 되게 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eskenosen 헬라어 음역)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거하다”(dwell)라는 헬라어 단어 에스케노센은 정확하게 히브리어 “회막”(성막의 다른 표현)을 의미하는 “미쉬칸”(dwelling place)에서 그대로 받았다.
또 성막의 본질을 나타내는 출애굽기 25:8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출 25:8) // 그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 14), 이스라엘 백성 안에, 우리 안에 거하실 목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내려오신 곳, 거주하시는 장소가 바로 “미쉬칸”(성막)이다.
성전 된 자신의 몸을 깨뜨리시고 거룩한 보혈을 뿌리심으로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사 52:15, 고전 3:16) “증거막”(출 38:21, 성막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이 땅 위에 높이 들려지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거룩함이 “안에” (베토크) 그대로 충만으로 거하는(엡 1:23) 유형 교회여! 이 땅 위에, 온 열방 위에 십자가의 생명으로 일어나라! 마라나타! [GNPNEWS]
김명호 교수(복음기도신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