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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선교사님의 가방이 사라졌다

사진: Alvaro-Serrano on Unsplash

새벽기도 때 선교사님의 가방이 사라졌다. 가방 안에는 약간의 현금이 든 지갑과 사택 열쇠와 모기약과 핸드폰이 들어있었다. 누군가 새벽기도 중에 훔쳐 간 것이다.

새벽 5시에 시작하는 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성도들은 적어도 3시 30분에서 4시 사이에 일어나야 한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다 떨어진 슬리퍼를 끌고 30분에서 한 시간을 걸어 새벽 기도에 참석한 이들 중에 누군가가 선교사님의 가방에 손을 댄 것이다.

처음 보는 얼굴은 한 명도 없었다. 매일 새벽 기도에 참석하는 열심인 성도들이었다. 처음에는 선교사님이 다른 곳에 가방을 두고 깜빡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모두의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추측과 의심이 난무한 상황에서 새벽기도에 참석한 20여 명의 성도가 가방을 찾기 위해 온 교회를 이 잡듯 뒤집는 한바탕 난리를 치렀고, 이도 모자라 경찰에 신고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경찰이 개입되면 교회와 성도의 이미지가 엉망이 될 것 같아 부디, 범인이 자수하거나 어디선가 가방이 뿅 하고 나타났으면 싶었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범인이 잡혔다! S였다.

도둑이 버리고 간 가방을 자신이 찾은 것처럼 해서 혐의 선상에서 벗어나려 했던 S는 미처 핸드폰과 현금을 야무지게 숨기지 못해서 덜미가 잡힌 것이다. 대범하게 선교사님의 가방을 훔치기는 했지만, 범죄를 숨기기엔 똑똑하지 못했던 S는 제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셈이 되었다.

S는 종아리에 화상을 입어 한 달 동안 나에게 치료받았던 아이였다. 영어를 곧잘 하는 S는 일주일에 삼일 정도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8남매 중의 막내라는 S는 무슬림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으며, 꿈은 목사라고 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꼭 가고 싶다는 S에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길을 열어주신다’라며 격려하고 축복했다.

길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선생님. 마요네즈 바른 빵 사주세요.”라며 당당하게 요구했던 S의 용기가 기특했고, 나를 믿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예배도 빠지지 않고, 청소나 봉사활동도 열심이었던 S가 목회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열심히 돕고 싶었던 나는 범인으로 잡힌 S의 모습에 치밀어 오는 화를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아이의 도둑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들킨 것만 세 번째라고 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밥을 훔쳐먹다 잡혔는데 다행히 피해자들은 S를 용서한 덕분에 구속되지 않았다고 한다.

뻔한 살림, S가 훔쳐 먹은 밥만큼 가족 중 누군가는 굶었을 텐데, S는 용서받았다. 그들의 용서는 S가 두 번 다시 도둑질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였을 것이다. 그런데 S가 또다시 도둑질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목회자의 물건을 훔쳤다. 그것도 새벽기도 중에.

나를 더 충격에 빠트린 것은 S의 거짓말이었다. 사실 S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 고아였다. 그동안 나는 완전히 속고 있었던 거였다. 실망감은 배신감과 분노가 되었고, 결국 절망이 되었다. 내가 기도하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싶었던 아이는 누구였나? 설마, 나에게 보여준 그 환한 미소를 담은 마음은 모두 거짓이었나? 하지만 절망보다 더 깊은 감정은 아픔이었다.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무력한 자의 아픔이었다. 사랑보다 실망. 배신. 분노의 감정이 더 큰,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의 아픔이었다.

나는 S를 정말 사랑했을까? 나는 나에게 묻는다. 아니,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 같았다.

‘정말 S를 사랑했니? 왜 그렇게 특별히 돕고 싶어 했니?’

S가 똑똑했기 때문이었다.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목회자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S의 어떠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의 기대를 저버린 S의 어떠함 때문에 실망하고 화가 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S가 아닌,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내 욕망의 민낯을 발견한 나는 많이 아팠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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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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