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동행] “이삭 하나씩 주으면 안될까?”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본지가 [동행]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그가 나를 데리고(28)

1980년 5월 1일. 나는 서울 동부이촌동 소재 한 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처음 보는 고층 아파트들이 가도 가도 끝없이 있었다. 나는 이 건물들에 우리나라의 부유층이 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교회에 와보니 교회 사역자들이 목사님을 존경하지는 않고 무서워하기만 했다.

한번은 구걸하러 온 분에게 사영리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부르신단다. 이분한테 전도하고 간다고 말씀드려달라 하고 전도 후 목사님께 갔다. 근무자들은 나를 딱하게 보면서 “전도사님 이제 목사님께 혼나실 거예요.” 한다. 감히 목사님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교회에 도움받으러 오는 분들이 참 많았다. 나는 이분들에게 꼭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기도해 주고 구제비를 드리곤 했다. 이것은 죠이선교회 근무할 때 지도자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한 번도 그냥 드리는 일이 없었다.

목사님께 부르셨냐고 하며 사연을 말씀드리니 꾸중도 안 하시고 용건만 말씀하셨다.

나는 사역자들이 목사님을 존경하지 않는 모습이 참 이상했다. 그래서 어느 날 목사님께 교회 그만둘 각오하고 따져 물었다.

“목사님,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믿으시나요?”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럼.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지.”

30살의 어린 것이 대 부흥사로 활동하시는 목사님 앞에서 이런 질문을 하다니 기가 막히고 화나셨을 텐데 전혀 기분 나쁜 얼굴이 아니시다.

“그럼, 목사님은 주님 뜻대로 교회를 운영해 주세요. 저는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흔쾌히 그러시겠다고 답을 주셨다. 그 이후 목사님은 놀랍게 변화된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내가 보기에 모든 행동이 나이스해 지셨다. 부교역자들에게 호텔 커피를 사주시기도 하고, 부드러우실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인격적이시고 친절하셨다.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좋아지고 목사님을 대하는 사역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사실 내가 부임하고 첫 주일예배 때, 나는 애를 먹었다. 모든 것이 낯설 뿐 아니라 내가 섬길 교회라는 친근감이 오지 않았다.

강단 좌우에는 파이프 오르간 형태를 한 모형 파이프가 있었고 전자 오르간도 내게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다.

내 온몸이 옥죄어오는 것 같이 가슴이 조여왔고 벽을 뚫고 나가야 할 것 같이 가슴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간신히 예배를 마치고 중2층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싸늘함이 느껴져 왔다. 외로움에 눈물이 흘렀다.

아무래도 나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잘못 알고 이곳에 온 것 같아 혼자 중얼거렸다.

“주님, 제가 잘못 온 것 같아요. 사표 내야 할 것 같아요.”

내려와서 좁다랗고 길게 난 교회 담 옆에 있는 화단을 걸어가는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왜 너까지 복음이 제대로 전해지고 교제권이 잘 형성된 곳으로 보내야 하니?”

나는 평소에 복음이 없고 황량한 곳에 보내주시라고 기도도 하고 아골 골짝 빈 들에도 가겠다고 했지만, 막상 내 머리에는 제대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교회를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교회는 부요함으로 완고한 모습도 있었으며, 주님의 사랑이 잘 흘러가지 않는듯 보였다. 그런 교회의 어려움을 볼 때마다 “그래, 그래서 날 이곳에 보내신 거야.”하면서 받아들이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인들에 대해 문제가 생기거나 중요한 이슈라고 여겨질 때는 목사님 댁으로 가서 사모님과 목사님 두 분이 함께 계신 자리에서 말씀드렸다. 그러면 목사님과 나의 일대일 시간을 줄이고 사모님과 목사님 두 분의 조율된 의견으로 교인들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완고하고 무장된 듯한 모습, 품위 있게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견고한 성 같은 높은 벽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멘토를 찾아가서 상담하면 “아낙 자손 앞의 메뚜기”같이 암담한 나를 위해 “기도합시다.” 이 한마디만 하시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어느 날 룻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룻처럼 이삭 하나씩 주우면 안될까?”

내가 답했다.

“그야 할 수 있죠. 이삭 하나씩은 주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씀을 나의 목회 분량으로 받았다.

“이삭 하나!” 이렇게 생각하면 부담감이 사라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한 영혼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 부담감이 사라진다.

후임 사찰 집사님과 동료 간에 어려운 일들도 많이 발생하곤 했다. 특히 은혜가 충만한 집회를 앞에 두면 꼭 내가 눈물이 쏙 빠질 일들이 생긴다.

송명희 시인이 우리 교회에 와서 간증하는 날은 큰 은혜가 임했다. 그러나 그날 집회 전에 사찰 집사님이 장애를 가진 송명희 시인에게 맞게 강대상이 옮겨져 있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집회가 시작되면서 은혜가 엄청 임했건만, 나는 교회 주변 뒤편에서 펑펑 울며 마무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깊이 깨달았다.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실 것을 알고 마귀가 크게 설쳐대는 것을. 그 이후로는 말썽이 많을수록 오! 오늘 주님이 큰 은혜 주시겠구나 하며 묵묵히 참아낸다. 하나님은 한 번도 실수하시지 않으신다.

창세기 37장 이후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에 들어갈 때마다 목회의 힘을 많이 받곤 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 39:5)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창 39:21)

이 말씀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나의 충성 때문에 이 교회에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 구절에 오면 손가락으로 이 말씀을 짚어 훑으며 또 간절히 간구했다.

“저 때문에 우리 교회가 복을 받고 교인들이, 어린이들이, 대학생들이, 청년들이 주님의 복을 받게 해주세요.”

누군가는 우습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진지했다. 내게 주실 복을 이 교회에 다 부어주시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햇수로 30년을 시무했으므로 엄청나게 수없이 이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 교회에 많은 복을 주셨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황선숙 | 강변교회 명예전도사. 서울신학대학교 졸. 강변성결교회 30년 시무전도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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