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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아직도 ‘진보’가 정의롭다고 생각하십니까?

올초에 서울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폐지 촉구 집회에서.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장 26절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 그런데 당시의 개념으로 그 명칭은 십자가에 처형 당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는 조롱에 가까웠다.

초대교회 시대를 지나 1000년이 훌쩍 넘은 뒤에도 그들 중 일부는 ‘프로테스탄트’로 불리며, 조롱을 받았다. 당시 이들은 교황 귄위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반대하는’ 사람들로 불려졌다. 이 처럼 어느 시대나 한 집단을 일컫는 명칭은 타인에 의해 명명될 때가 많다.

또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렀다. 오늘 우리 시대는 사람들을 두 범주로 나눠, 구분하고 있다. 시대의 아픔과 약자를 품는 멋진 집단이라고 인식돼 온 진보적인 사람과 자기 잇속만 추구하는 위선적인 집단이라는 프레임으로 구분된 보수 또는 보수꼴통으로 부르는 구분법이다.

그 덕분에 진보를 지지하는 자에게는 기존 권위 체계에 매이지 않는 나이스한 사람이라는 인식과 이러한 진보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보수꼴통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자칭타칭 보수로 불리는 상당수 시민들은 그저 대물림하는 가난을 벗어나고자, 또 내 인생의 목표 성취를 위해 숨가쁘게 살아오며 그런 정치적 구분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굳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법조차 의미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저 낯설기만 한 이 세상의 구분일뿐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위 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동성애, 동성결혼, 비혼, 낙태 등과 같은 삶의 가치를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가족을 해체하고 가장 약자인 태아를 살해하는 일이 어떻게 진보적 선택인가? 동성애자들에게 에이즈 감염자가 많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통계 결과이며 비혼, 낙태 등을 통해 인구 감소를 가져오는 행태로 이들의 선택은 우리의 미래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다. 개인의 욕망을 제한 없이 부추기는 이들의 이러한 선택은 우리 사회를 진보가 아니라 퇴보로 이끌어가고 있다.

반면, 보수(保守)주의자는 보수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문제는 보수적 가치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다는 현실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보수적 가치란, 보호하고 지켜야할 전통적 가치를 의미한다. 이때 그리스도인이라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 기준점이다. 그러한 선택이 창조주의 뜻을 지키는 보수적 가치의 출발선일 것이다.

보수주의의 핵심원리를 담은 ‘보수의 정신’을 집필한 러셀 커크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보수주의의 6가지 원리는 본질이 곧 성경적 가치관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가 주장한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는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 ‘획일성과 평등주의를 배격하고 다양성에 대한 애정’, ‘문명화에는 질서와 위계가 필요하다는 믿음’, ‘자유와 재산은 연관돼 있다는 신념’, ‘추상적 설계 대신 법률과 규범에 대한 믿음’, ‘급격한 개혁보다 신중한 개혁에 대한 선호’ 등이다. 이는 하나님이 세운 법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과 허락하심을 믿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원리들이다.

이런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현실에 적용됐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보수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외면하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치에 어긋난 행동이 드러났을 때, 그들은 버티다가 결국은 꼬리를 내리며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절대 진리를 인정치 않는 사람은 그들의 위선이 만천하에 드러나면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며 이중잣대를 제시한다.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은 ‘내가 선한 의도를 갖고 행동을 했기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나는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으며, 현재도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소위 ‘진보’ 진영은 사회주의 또는 실현불가능한 이상국가를 꿈꾸는 어설픈 이상론자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위선과 편협함과 권력욕과 이기심을 드러내는지 일일이 예로 들기에도 지면이 부족할 정도이다. 또 그들 중 상당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체에서 나오는 과실을 톡톡히 누리면서도 봉건왕조 체제를 고수하며 전 북녘 주민들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을 감싸는 괴이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적 가치관이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허접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 수십년간 자칭 타칭 진보라고 여겨온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걸어왔던 시간 동안 이뤄진 선택과 가치를 배설물처럼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새파랗게 젊은 세대들은 이 세상을 책과 토론으로만 배운 결과, 하늘이 무너져도 자신의 생각이 진보적이기에 옳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역사의 증인이 남긴 말이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자국 국민 수천만 명이 무참하게 수용소 등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현실을 목도한 공산주의자 스탈린의 딸 스메틀라나 알릴루예바가 남긴 말이다.

“책으로 공산주의를 배우면 공산주의자가 되고, 몸으로 공산주의를 배우면 반공주의자가 된다.”

사실 ‘진보’라는 용어는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한 마르크스 엥겔스가 받아들인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이들의 ‘진보’는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그런 의미에서 공산주의 혁명사상에 뿌리를 둔 ‘진보’는 이미 용도 폐기됐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굳이 이러한 진보 진영을 무엇이라고 불러야할까? 굳이 그들을 하나의 테두리에 안에 담기 위해서는 ‘반보수(反保守)’로 명명하는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더, 건강한 진보도 물론 기대한다. 정말 진취적이고 보수적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는 독창적인 시각은 우리 사회를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할 역할이 분명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과제는 보수의 회복이다. 올바른 성경적 가치에 기반한 보수의 회복을 통해 이 세상에 영적 대각성과 부흥이 임하는 그 날을 꿈꾼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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