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선생님’은 이미 옛말…상호 불신 쌓이는 교육 현장
“선생님 아니라 학부모의 ‘감정 쓰레기통’ 같다”
‘하늘과 같다’는 스승의 은혜는 한국 사회에선 더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 됐다.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을 경계하고, 학부모와 학생은 교사를 의심하는 ‘불신의 관계’가 된 지 오래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학부모에게 고소당한 사례가 교사 커뮤니티에 매일 올라와요. 교사들끼리는 고소 이유를 ‘내 아이 기분 상해죄’라고 하죠.”
4년 차 초등학교 교사 김모(26)씨는 일선 학교에서 겪는 고충을 자조적으로 전했다.
지난해 9월 교육부가 내놓은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 시안’을 보면 2021년 교권보호위원회가 심의한 교육활동 침해 2천269건 중 7.5%(171건)는 학부모 등 보호자에 의한 침해였다.
교육부는 학부모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 건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 꼽혔다.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를 믿지 못해 ‘직접 개입’하고 교사는 이를 ‘권리 침해’로 인식하는 셈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1년 성인 남녀 4천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학생인권의 지나친 강조’(36.2%)에 이어 26.2%가 ‘학교 교육이나 교원에 대한 학생·보호자의 불신’을 교권침해 원인으로 들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35년 차 교사 이모(61)씨는 “학부모가 교사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일이 생기면 독단적으로 해석하고 학교와 교사를 공격해 학생을 제대로 지도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학부모가 자녀를 ‘극진히’ 키우는 데다 입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다보니 혹시 자기 자녀가 교사에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과 불안이 커지는 세태도 이런 상호 불신의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남양주시의 중학교 교사 윤모(43)씨는 “요즘 아이들이 다 귀하게 자라지 않나. 학교가 자신들 아이를 더 세심하게 돌봐주길 부탁할 때가 있다”며 “내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져서 교권침해도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보기에 교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갈등과 불신이 쌓이고, 이런 분위기에서 학생을 훈계하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거나 교직에서 물러나는 일도 종종 생긴다는 게 교사들의 전언이다.
교사들은 과도한 항의를 하는 학부모를 ‘명예퇴직 도우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윤씨는 “정말 학부모와 갈등 때문에 힘들어서 퇴직하시는 분들도 있다”며 “이전에는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감정 쓰레기통’ 같다”고 했다.
이어 “교사는 사명감과 소명 의식으로 일하는 직업인데 이렇게 지치게 하는 상황이 자꾸 벌어지면 직장인처럼 어느 정도까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털어놨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키우는 이모(50)씨는 “요즘엔 작은 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선생님도 굉장히 조심하고 거리를 두시는 것 같다”며 “우리 아이가 잘못하면 따끔하게 혼내달라고는 하지만 예전처럼 선생님이 사랑으로 혼내지는 못한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8∼2021년 초·중·고등학교 모두 교원 정년퇴직률보다 명예퇴직률이 모두 높았던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2021년 퇴직 나이를 보면 생활지도까지 한 학급을 전담하는 초등교원이 평균 55.9세로, 한 과목만 담당하는 중학교(57.7세)·고등학교(58.4세) 교원보다 낮았다. 학생지도의 부담과 책임, 학부모와의 갈등이 퇴직을 앞당기는 이유라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교대 입시경쟁률 미달과 중퇴자 증가도 이런 실정과 맞닿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어느 순간 학교가 ‘권리 다툼의 장’이 됐고 이 과정에서 많은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로 피해를 본다”며 “현재 교원들 사기는 역대 최저”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학부모·교원 간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라며 “법적·제도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동시에 구성원들이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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