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두 차례에 걸쳐 빈민식사 사역이 진행됐습니다.
어제는 공숙자 목사님의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 외출 중 걸인 여덟명을 마주쳤습니다. 잠시 방문한 두 분(전성현 집사님, 소승혁 형제님)과 함께 시간을 조금 손해 보면서 밥을 사주고 만화 전도책자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전통적인 방법대로, 봄베이의 자선식당에서 556명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만화 전도책자가 들어있는 절제회 전도팩을 주었습니다.
제가 하는 빈민식사 사역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한 주에 한 번 이상, ‘자선 식당’에서 주는 것 외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코팔카르나 섹터 12B 슬럼’이나 ‘망쿠르드 소방서 밑 슬럼’ 중 한 곳을 방문해 거리에서 식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또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나환자촌을, 그리고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고아원을, 반년에 한번 정도는 수용소나 감옥에서 식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농아학교나 가난한 신학교 기숙사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글을 ‘두 종류의 빈민식사 사역’이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빈민식사 사역은 계획에 따라, 장소를 선점한 후, 최소한 백 명, 보통은 오육백 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냥 일정 없이 가다가 걸인을 만나서 밥을 사주는 경우, 시간과 노동력은 만만치 않게 들지만 실적(?)은 열명 미만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역 현장에서의 긴장도도 더 높고, 빈민식사 지정헌금을 다시 계산하고, 금액을 출금해서 채워 넣고 보고서를 쓰는 게 번잡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정헌금 대신 제 개인 재정으로 처리할 때도 많습니다. 어차피 열 명 이하에게 밥을 사는 것은 한화로 만원도 들지 않아 부담이 적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자선’의 경우, 불쌍함과 우월감(최소한 재정적인 우월감이라도)을 바탕으로 이뤄지게 되지만, ‘사역’의 경우는 소명감과 겸손함, 그리고 그 겸손함에 수반되는 부담감(보고, 기록, 투명성 등)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가난한 이를 돕는 ‘독지가’가 아니라, 다른 분들의 헌신으로 주어진 구제헌금을 대신 집행하는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이런 소규모 빈민식사 공급 역시 ‘자선’이 아니라 ‘사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저 저만의 작은 ‘설정 변경’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빙산의 일각처럼 더 많은 숨겨진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큰 결심입니다.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지금부터 어디로 빈민식사 사역을 하러 가자.’ 혹은 ‘지금부터 며칠간 전도 여행을 하러 가자.’와 같은 식의 사역은 준비된 상태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걸인들과 밥을 먹고, 거리의 아이들이나 운전기사들에게 전도 책자를 나누는 삶은 피곤합니다.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는, 퇴근이 없는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삶의 태도를 한 걸음 양보하는 것,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이 선교’라는 귀한 말은, 사역을 덜 하는 게 아니라 더 하기 위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종류의 사역’을 다 잘해 나가야 합니다. 기획 없는 사역만 해서도 안 되고, 기획된 사역만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대규모의 사역도 잘해야겠지만, 소규모의 사역도 성실히 수행하고 기록하고 보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의 빈민식사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보고서를 남깁니다. 주님께서 이번 사역들을 통해서도 가난한 자들의 영육을 채우시고, 또 후원자들을 축복하시고, 저 역시 마르지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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