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본지가 [동행]이란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그가 나를 데리고(13)
어머니 친구 중 은사자들이 많이 있었다. 예언, 방언, 신유, 투시, 방언통역, 능력 행함 등의 표면적인 은사를 많이 선호하고 또 추구했다.
우리 어머니도 이 모든 은사들을 받으시고 전도와 양육 생활에 매진하셨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을 누가 꿰뚫어본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간구했다. “주님, 어떤 투시 은사를 가진 어머니 친구도, 내 생애를 들여다보지 못하게 해 주세요.” 과연 하나님은 이 기도를 신실하게 들어주셨다. 어머니 친구들이 기도 많이 하기로 소문난 분들이지만 아무도 주님만 다 아시는 나를 통과하지는 않았다.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시다.
나는 방언은 하지만 통역 은사는 못 받았다. 어머니가 통역해 주시면 “아! 성령께서는 나를 위해 이렇게 간구하시는구나.” 하며 심령에 깊은 울림으로 화답할 수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통역 은사는 안 주셨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4:19 말씀은 내게 깊이 와 닿았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하나님의 말씀이 알고 싶고 깨닫고 싶고 잘 전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간절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리게 되었다.
후일 강변교회에서 초기 사역 때 은사자에 대해 유쾌하지 않은 일화가 있다. 믿음이 좀 시원치 않은 부유한 가정의 심방 요청을 받고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은사자로 유명한 다른 교회 권사님이 오셔서 이미 예배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 분이 오신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어 나는 저으기 당황했다.
은사자로 소문난 이 권사님을 나도 우리 신학생들과 함께 우루루 찾아가 기도를 받은 일도 있었다. 그때 특별한 예언은 없었다. 그 권사님도 좀 머쓱해 하면서 나보고 예배 일부를 담당하란다.
‘이게 뭐지? 아무리 큰 은사자라도 이럴수가 있나? 다른 교회 교인을 심방하며 담임지도 교역자에게 양해도 없이 심방하다니?’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이 동네 온 김에 이 집에 들렀다는 것이다. 맘대로다. 예배 인도를 혼자 하시라고 하고 나는 그냥 참여했다. 그분은 나름 기도를 하는데, 참담해하는 초짜 전도사인 내게 하나님이 친히 말씀을 또렷이 주셨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
너무 확실하게 말씀하셔서 평생 내 귓가에 맴도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으며 나의 속상함은 씻은 듯이 나았다. 고전 13:5이 이렇게 위대한 줄 몰랐다.
그 후에도 교회의 질서와 관계없이 무상출입 하시는 것 같은 소식을 들었다. 유명 기도원에 가보아도 봉사자들을 비롯해서 은사자들의 태도가 은혜받으러 오신 분들에게 불친절하고 무례함을 볼 때가 많았다.
은사를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실행하며 삶으로 전하는 것이 중요함을 절절히 가슴에 새겼다. 하나님은 한 번도 내게 무례하신 법이 없었다. 항상 포근하고 신사적이셨다.
사도바울이 남의 닦아둔 터에 건축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사건을 경험하고난 이후, 어떤 주님의 사역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슬프게 해도 내 두 다리는 휘청거리지 않는다. 주님은 내게 한 번도 서운하게 하신 일이 없으시다. 내가 교회 작은 사역자에 지나지 않아도 주님은 나를 필요로 하시니까 찬송하며 걷는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황선숙 | 강변교회 명예전도사. 서울신학대학교 졸. 강변성결교회 30년 시무전도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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