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호 / 믿음의 삶
7년 전 어느 날, 머리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거울을 보니 이마에 상처가 보였다. 벌레에 물린 것이라 생각했다. 쉽게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잘 모르겠다며 진통제와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그러나 통증과 환부가 더욱 심해져 피부과에 가보니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머리로 오는 대상포진의 위험성을 얘기해주며 이미 치료 할 시기를 놓치고 지나갔다고 했다. 대상포진이 30대의 젊고 건강한 남성에게, 그것도 머리로 오는 경우는 흔치 않고 후유증으로 신경통으로까지 남을 확률은 지극히 드물다며 의사의 소견 끝에 던진 한 마디는 “참 재수가 없는 경우네요.”였다. 이렇게 나의 통증과의 동행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우연’이 없으신 분이다. 모든 것이 그분의 섭리 안에 있음을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통증이 극심할 때는 주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것이 오히려 어려움이 될 때가 있다. 고통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시간이 짧게 지나갔더라면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결론을 지금보다는 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을 잃을 만큼 견디기 힘든 매일의 통증과 싸우는 것이 7년째 이어지면서 내 힘으로 하나님만을 붙잡는 믿음의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인정하게 된다. 그러기에 더욱 은혜가 돋보인다. 내가 믿음의 삶을 사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믿음의 삶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던 것처럼.
통증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점수를 매겨 그 정도를 측정한다. 1점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는 정도이고 10점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최악의 통증이라고 본다. 나는 평소에는 보통 3점 정도의 통증이 머리에 항상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경 발작이 일어나게 되면 5점에서 6점, 심해지면 10점의 통증을 견뎌내야 한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신경성 발작으로 머리를 쥐어 잡고 쓰러지는 것을 일상에서 봐야 하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그것을 견뎌야 하는 나 자신도 쉽지 않다.
사역을 할 수 없고, 단체의 배려를 받아 이런저런 치료를 시도하던 무렵 주님은 나를 더욱 믿음 한 가운데로 이끌어 가셨다. 혼자 계시던 아버지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았다. 119에 신고를 했다. 아버지는 급성당뇨로 인한 쇼크로 혼수상태에 빠져 계셨고 하루 이상 지난 상태였다. 다리 한쪽은 이미 괴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길로 아버지가 계신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집을 나가신 뒤로 어머니와 이혼을 하셨다. 어머니마저 집을 떠나신 후 나는 친척집들을 전전해야 했다. 어느덧 나는 성인이 되었고 은혜로 복음을 만나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그런 아버지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종종 연락을 하던 차 만나게 된 상황이다. 의식이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며칠 뒤 기적같이 아버지는 깨어났다. 그로부터 나는 7개월간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호했다. 나는 여전한 통증을 견디며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꼬박 돌봐드려야만 했다. 그 기간은 내 영혼이 갈리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불어나는 병원비에 졸지에 빚쟁이가 되어 병원의 독촉을 받아야 했고, 첫째는 3살, 태어난 지 6개월 된 둘째 아이와 함께 아내는 그 시간을 홀로 보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내가 세상에서 죄 짓고 다닐 때는 그렇게 별 문제 없이 잘 산 것 같은데 하나님이 부르셔서 선교사로 헌신하고 이제 좀 주의 종으로 살아보려고 하는데 밀어 주시지는 못할망정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가?
아버지는 7개월 후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져 퇴원을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갖다 드리고 청소 등 필요한 것들을 돌봐드리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순간, 아내가 목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나는 어린 두 아이를 돌봐야 했다. 이 모든 시간들에 공동체 지체들이 함께 해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무엇인가는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얼마 후 아내는 퇴원했고, 곧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회복이 되어가는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7개월 동안 아버지와 평생에 없었던 시간을 가지며 복음을 전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했다. 하늘 가족들의 아낌없는 섬김으로 은혜 중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아내는 무리가 되었던지 다시 입원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까마득한 시간이다. 매일 죽을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아이들을 돌봤고,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빚 청산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야 했다. 아내는 쉽게 회복되지 않아 통원치료를 위해 병원 근처로 숙소를 옮기게 됐다. 혼자 대충 짐을 싸고 이사한 다음날 아침, 사고가 발생했다. 둘째 아이의 새끼손가락이 문틈에 끼었다. 절단된 것이다. 119 앰뷸런스의 도움을 받아 간 대학병원에서 처리가 안돼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했다. 계속 우는 아이를 안은 채, 한 손에는 아이의 잘려나간 손가락 봉지를 들고 뛰어서 택시로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그 병원 수술실에서 아이가 너무 어려 마취를 할 수 없으니 환각제를 투여할 것이라고 했다. 수술대에 묶여 눈만 깜빡 거리는 아이를 보니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하나님…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 때에 하나님은 나에게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셨다. ‘나는 이 아이의 새끼손가락 반 마디를 주고 온 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해도 절대 못 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나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어서 오직 믿음으로만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은 잘 끝났다. 평생 손가락 한 마디 없이 살 수도 있었는데, 지금 아이의 손가락은 거의 정상으로 보일 만큼 잘 자랐다.
시간이 흘렀지만 난 여전히 아프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다본다. 믿음의 삶은 나의 결의에 찬 결심이나 노력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세상에 보여주시고 계신 것 같다. 나는 다른 이들처럼 많은 일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보일 멋진 열매는 없다. 그러나 지금 내게 허락하신 상황에서 복음이면 충분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받으시는 최고의 영광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런 자에게도 복음이면 충분하구나! 어떤 고난과 고통이 있어도 복음이면 넉넉하게 이길 수 있구나! 이것에 증인으로 삼으셨다고 생각한다.
이 싸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싸움은 주님이 하신다. 나는 그 하나님을 붙잡는 씨름을 한다. 그러면 주님이 친히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실 것을 믿는다. 그것이 인내라면 나는 인내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이 길은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과 믿음의 공동체, 그리고 열방의 몸 된 교회들이 함께 싸워가는 믿음의 삶이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오기까지! [복음기도신문]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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