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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양 칼럼] 랍 벨,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하는 인본주의자

▲ 랍 벨 목사. 사진: 유튜브 채널 Rob Bell 캡처

눈먼 기독교(5)

미국과 전 세계 기독교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랍 벨 목사의[1] ‘Love wins’라는 책이 2011년 『사랑이 이긴다』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그런데 이 책을 발간한 출판사가 기독교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곳이 아닌 김영사다.[2] 미국에서 기독교 베스트셀러인데 국내의 기독교 출판사가 먼저 판권을 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 내용이 반(反)기독교적이라서 거부한 결과 김영사까지 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책의 내용은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호도하고 있기에 여기서 좀 특별히 다루고자 한다.

먼저 이 책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서 주제를 잡았기 때문이다. 박애주의를 종교의 자리로 올려놓는 시대가 된 것을 잘 알고 있던 젊은 목회자 랍 벨은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드는 주장을 함으로써 단번에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해석을 잘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은 그렇게 무서운 분이 아니다.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이 영원한 고통을 주는 지옥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보낸다는 믿음은 어리석은 보수 기독교인이나 따르는 허구다.” 이것이 랍 벨이 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핵심이다. 그의 글에 나타나는 신학적 오류와 잘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3]

제한적 멸절론

우선, 랍 벨은 제한적(또는 조건적) 영혼 멸절론을[4] 주장하고 있다. 멸절론은 죽은 후 천국에 가지 못하는(즉 자격이 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없애버린다는 이론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옥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멸절론 가운데 제한적 멸절론이 또한 있는데, 이것은 지옥이 있고 거기에 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데, 그곳에서 영원토록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 일정 기간 (즉, 잘못한 정도만큼만) 고통을 받은 후에는 (즉, 형벌을 다 마친 후에는) 하나님이 그 존재를 없애버린다는 이론이다. 랍 벨의 경우, 후자에 해당하는 제한적 멸절론을 주장한다. 사실 그는 매우 영리하기 때문에 결코 멸절(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명백히 그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멸절론자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잔혹하고, 억압적이건, 사람들이 죄와 무관심과 거절로 인해 얼마나 본향에서 멀어졌건, 이런 식으로 영원히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지자들은 단언한다. 예레미야애가 3장에 보면 시인은 이렇게 선언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버려두지는 않으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호세아 14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의 반역하는 병을 고쳐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하겠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이제는 다 풀렸다.”[5]

랍 벨은 하나님이 영원히 진노하는 분이 아니라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선포한다고 말한다. 랍 벨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 하나님이 분노하셨지만 다시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해당되는 것이다. 틀림없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자기를 계시하셨는데,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인 예수를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의 최고의 공의의 표현인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이고 믿지 않으면 기독교가 아니다. 그런데 랍 벨은 이것을 믿는 것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다.

믿지 않으면, 올바른 방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러니까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말하는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그러다가 그날 자동차에 치여 죽으면, 하나님은 지옥에서 영원히 의식적인 고통을 받는 형벌을 내리실 수밖에 없다는 말도 수 많은 사람들이 들었다. 말하자면,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신다. 그들에게는 영원히 다른 존재가 되신다.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시는 사랑 많은 하늘 아버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꼼짝없이 갇혀 영원히 고통 받으며 살게 하는, 잔인하고 야비하고 사악한 존재가 된다. 이 땅에 그런 아버지가 있다면 우리는 당국에 신고할 것이다. 그렇게 변덕스러운 인간 아버지가 실제로 있다면 우리는 곧바로 아동 보호 담당국을 부를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기어를 바꾸실 수 있다면, 그렇게 순식간에 존재 방식을 완전히 바꾸실 수 있다면, 그런 존재가 선한 것은 둘째 치고, 과연 믿을 만하기나 한 것인지에 대해서 숱한 의문이 일 것이다. (중략) 왜냐하면 당신의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다면, 당신의 하나님이 사랑이 많다가도 순식간에 잔인해진다면, 당신의 하나님이 짧은 몇 년 동안의 인생에서 지은 죄에 대해 영원한 형벌을 내리신다면, 아무리 똑똑하게 마케팅을 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도, 그 단 하나의, 진실하고, 확연하고, 옹호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실재를 가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6]

랍 벨은 사랑 많은 하나님이 지옥으로 사람들을 보내는 것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일이기에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잘못 묘사된 것이 틀림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의와 자비가 성경이 선포하는 그 하나님의 의와 자비보다 더 높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진짜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사랑이 많다가 사람이 죽는 순간 그렇게 잔인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글쎄,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변덕 많고 잔인한 자라고 묘사하는 랍 벨은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그런 말을 서슴없이 떠들고 있는 것일까?

랍 벨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한 문장에 잘 나타난다. “당신의 하나님이 짧은 몇 년 동안의 인생에서 지은 죄에 대해 영원한 형벌을 내리신다면 … 끔찍한 실재를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랍 벨은 지옥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지옥의 영원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유한한 죄를 지은 자가 어찌 무한한 형벌을 받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것이다.[7] 심지어 그런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끔찍한’ 존재라고 말한다. 랍 벨은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 이미지가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성경 속의 하나님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얼핏 보면, 하나님을 더 높이는 듯한 이러한 멸절론은 공교롭게도 기독교 이단들이 즐겨 주장하는 교리다. 여호와의증인과[8]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9] 미국에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지옥은 없고, 악한 존재는 사라질 뿐이라는 교리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을 만족시키는 참 대단한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랍 벨은 지옥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 영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랍 벨처럼 제한적 멸절론을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뜻밖에도 존 스토트 목사가 있다. 스토트 목사는 20세기 복음주의 진영의 거두(巨頭)로서 신학과 목회 양면에서 균형 잡힌 기독교 지도자로 이름을 높였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이르러 갑자기 조건적(제한적) 멸절론을 슬며시 제시함으로써 전 세계 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물론 그는 랍 벨처럼 반드시 그렇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조심스러운 제시를 한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존 스토트 같은 거인이 멸절론을 제안했기 때문에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큰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틀림없다. 스토트 목사는 오랜 기간 성경적 시각으로 교회를 섬겨온 귀한 일꾼임에 확실하지만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던 멸절론은 명백히 반성경적이고 인본주의적이다.[10] 랍 벨은 지금 존 스토트의 주장을 이어받은 것이다.

만인구원론

랍 벨은 『사랑이 이긴다』를 통해 만인구원론(萬人救援論)을[11] 주장하고 있다. 만인구원론은 하나님이 결국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끄신다는 주장이다. 당연히 성경에 없는 내용이고 오히려 성경과 반대되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는 비논리적이고 비약적인 이론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두 개의 목적지, 두 개의 실재가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이생에서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 같은 것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신교 종교개혁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마르틴 루터는 1522년에 한스 폰 레헨베르크에게 쓴 편지에서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이것 또한 좋은 질문이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라는 이 관점은 온갖 부류의 사람이 설 자리를 마련해준다. 열다섯 살에 죽은 무신론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자신이 본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고 억압하기만 했기 때문에 예수를 거절한 사람 등등에게도 설 자리가 생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죽은 후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죽음 직후의 단 한 번으로만 제한할 이유가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그 가능성을 확장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는 끝도 없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12]

다른 주장도 그러하지만, 만인구원론에 대한 주장에 대해 랍 벨은 성경적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한 두 구절을 얼핏 내세우지만 전혀 논거(論據)가 되지 못하는 구절일 뿐이다. 오히려 그는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루터의 편지를 가장 강력한 논거로 제시한다. 루터의 편지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억지이지만, 이렇게 중요한 신학적 주장을 하면서 목사가 성경적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생에서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죽은 후에도 기회를 또 줘야 한다는 생각, 그것도 거듭해서 끝까지 결국 예수를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줘야 한다는 생각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인가? 결국 성경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랍 벨은 성경을 아예 무시하고 자기 생각을 성경 보다 위에, 하나님 보다 위에 놓으면서 큰소리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13] 성경 말씀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인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 나사로와 지옥에 내려간 부자 이야기를[14]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 부자가 지옥에 일정 기간 있다가 결국 거듭되는 하나님의 기회 제공을 받아들여 천국으로 갈 것이라면, 예수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해 줄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 랍 벨은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시간만 충분히 준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설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굳은 마음을 녹일 것이고, 극도로 ‘타락한 죄인’도 결국에는 저항을 그만두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본다. (중략) 최초의 교회 이후로 기독교 전통의 중심에는, 역사는 비극이 아니며, 지옥은 영원하지 않고, 사랑이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과 화해할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15]

랍 벨은 지옥이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이 매우 확고부동하다. 그래서 악인은 지옥에서 일정 고통 받은 후 멸절되든지 아니면 뒤늦게라도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남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말하지만,[16] 결국은 자기 생각을 돌려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랍 벨은 신학적으로 논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자기 확신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는 꼼수를 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 부활 불인정

랍 벨의 사상은 여러 개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압권은 역시 예수의 부활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그는 예수의 육적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인식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그냥 자연의 순환 같은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실 부활을 전혀 믿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다음의 글을 보라.

역사적 사건의 발단은 예수가 죽으신 후에 그분을 만났다고 하는 추종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한 만남 때문에 그들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믿게 되었다.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죽음 이후의 부활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을이 되면 곳곳에서 낙엽이 지고 식물은 죽는다. 색은 갈색으로 변하고, 시들고, 생명을 잃는다. 겨울 내내 그렇게 잠든 상태로, 생명 없이, 죽어 있다. 그러다가 봄이 오면 다시 살아난다. 자라고, 움트고, 새잎과 봉오리를 낸다. 봄이 있으려면 가을과 겨울이 있어야 한다. 죽음, 그다음에 부활이다. 생태계, 먹이사슬, 계절이 다 그렇다. 환경 전체가 그렇다. 죽음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이다.[17]

랍 벨은 예수 당시의 사람들에게 부활은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그 당시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여겼다고 말하는데, 그는 근거가 없는 말을 하고 있다. 부활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놀랐고 변화된 것이다. 랍 벨은 부활을 기독교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자연의 사계절이 순환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활인가? 먹이사슬로 먹고 먹히는 것이 부활인가? 그는 불교와 도교적 관점에서 부활을 말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절대로 믿지 않는 자다. 부활 신앙이 없으니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부활을 자연계의 순환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랍 벨은 부인할 수 없는 자유주의자다.

911 사건 때[18] 사람들을 구조하느라 자기 생명을 잃은 소방대원들을 생각해보라. 그토록 이타적인 영웅주의에 대해 듣고서도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를 고취시킨다. 고취시킨다는 것은 생명을 준다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성경의 저자들이 예수의 부활이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할 때는, 새로운 개념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사실로 존재했던 것에 대해서,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19]

랍 벨은 예수의 부활을 9·11 사건 때 희생한 사람들에 의한 정신 고취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이 사람이 목사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은 곧 생명을 주는 것이고 이것이 부활의 본뜻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예수의 부활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런 식의 부활은 예수 전에 이미 소크라테스와 부처와 공자가 충분히 했고, 그 후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義士)와 김연아 선수도 해낸 것이니 말이다. 랍 벨은 지금 기독교가 아닌 불교를 말하고 있다.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자기는 예수의 육적 부활을 믿지 못한다고 솔직히 말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다른 구원의 길?

랍 벨은 한마디로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는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인간 본위로 기독교를 변질시키면서 대중의 인기를 구가(誤歌)하는 자 일뿐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20] 대한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 본문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로 오직 예수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매우 배타적이다. 그러나 이 배타성은 포괄성의 이면이다. 우선 배타성이 있다. 예수만이 길이다. 정해진 방식대로 예수를 믿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지 못하거나, 구속받지 못하거나, 천국에 가지 못한다. 그 표현은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배타성이 있다. 여기에 속했거나 아니면 지옥에 가거나 둘 중 하나다. 두 가지 밖에 없다. 그리고 포괄성이 있다. 이 포괄성은 모든 종교에 문을 열어놓는다. 착한 사람은 누구나 들어갈 것이고, 산은 하나이지만 길은 여러 갈래라고 하는 포괄성이다. 이러한 포괄성은 마음만 바르다면 혹은 행동만 기준에 맞는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다음에는 포괄성 이면의 배타성이 있다. 이러한 배타성은 예수가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모든 것을 포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사랑은 당연히 다양한 문화에 속한 온갖 부류의 예상치 못한 사람들도 포함시킬 것이라고 하는 가정 또한 단단히 붙잡는다. 무슬림, 힌두교도, 불교도, 그리고 극보수의 기독교도 등 모두에게 문이 열리는 순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불편해하면서 그러면 예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 십자가도 쓸모없고, 아무거나 믿어도 되고 그런거 아니냐의 식의 반응올 보인다. 그렇지 않다. 절대로, 분명하게, 확고하게 그렇지 않다. 예수는 자신이, 오직 자신만이,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고 선언하셨다. 그 다음에 예수는 문을 활짝 열어놓으신다. 온갖 가능성들을 생각하신다. 예수는 자신만큼 좁으시고 우주만큼 넓으시다.[21]

랍 벨은 지금 조잡한 말장난을 하고 있다. 같은 본문이 배타성과 포괄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구절이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예수 외에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싫어한다. 그러니까 랍 벨은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배타적이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포괄성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도대체 이 구절이 어떻게 산은 하나이지만 길은 여러 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 이것이 어떻게 예수만이 천국 가는 길이지만, 동시에 모든 착한 사람들과 다른 종교인들도 천국 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인가? 랍 벨의 주장은 참으로 조악(粗惡)하다. 정통 기독교로부터 비난받기는 싫고, 그렇다고 일반 대중의 인기를 포기하기도 싫으니까 결국 이런 식으로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다.[22]

랍 벨의 이러한 종교다원적 사상은 종교혼합의 기수(旗手)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주장과도 매우 유사하다. 1998년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린 WCC 제8차 총회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제시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지만, 하나님은 세상 다른 종교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정해주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반성경적 주장이다. 랍 벨은 지금 이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랍 벨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사랑이 이긴다』는 기독교 신앙 서적이 아니라 기독교를 훼손하는 악서(惡書)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는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드러내며 자기주장을 하니까 차라리 정직하기라도 하다. 그런데 랍 벨은 자기가 성경을 잘 알고 믿는 것처럼 말하면서 실상은 완전히 그 반대로 일하고 있으니 이것은 완전히 내부의 적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 책의 추천사를 써준 이름들이 쟁쟁하다. 국내외에서 기독교 지도자로서 자리매김을 명확히 하고있는 분들이 이런 책을 추천해준 것에 대해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진정 랍 벨의 신학과 사상에 동의하고 있다는 말인가?[23]

구원, 박애주의자 고넬료에게 필요했던 것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화이트헤드는 만일 현대 세계가 신(神)을 찾으려면 바울의 도움이 아니라 요한의 도움으로, 공포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 찾아야만 한다고 말했다.[24] 그에게 있어 교리적인 바울의 가르침은 거북했지만 사랑의 사도였던 요한의 가르침은 마음 편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25]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는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정통한 사도였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은[26] 차치하더라도, 로마서 5장 8절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비록 깨어졌지만 인간에게는 아직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다. 그래서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악을 행하기도 하지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선행을 하고자 하는 본성도 가지고 있다. 그 선한 양심을 따라 봉사하고 구제하고 남을 돕는 박애주의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귀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도 선행이 영생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함에 대해서 성경은 명확히 가르쳐주고 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0장과 11장에는, 고넬료처럼 비록 인정받을 만큼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도 아직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어 있다.[27] 박애주의자 고넬료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의 구원이었다. 그의 박애주의가 그에게 저절로 구원을 준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는 선행과 윤리와 박애주의를 존중하는 종교지만 그 자체가 곧 기독교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기독교는 그 이상이다.


[1] 미국 미시간 마스 힐 바이블 교회의 담임목사

[2] 정확히 말하자면, 포이에마라고 하는 김영사의 기독교 서적 전문 자회사다. 우리나라 최대의 출판사인 김영사는 기독교와 아무 상관이 없는 회사다. 이것은 통일교 문선명의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나 기독교를 대적하는 책인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출간한 것만 봐도 명백하다. 기독교 출판 시장까지 넘보는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이 씁쓸하지만, 한편으로 김영사(포이에마)가 제대로 된 기독교 서적을 출판해서 기존의 기독교 출판사들이 하지 못한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3] 『사랑이 이긴다』를 논박하는 마크 갤리의 『하나님이 이긴다』라는 책을 포이에마가 또한 출간했다.

[4] 靈魂 滅絶論, annihilationism

[5] 랍 벨, 『사랑이 이긴다』,포이에마, 133쪽

[6] 앞의 책 240-243쪽

[7] 나는 여기서 신학적 논쟁올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만 말하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영원히 고통 받고, 후회할 만한 어마어마한 죄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그렇다.

[8] Witness of Jehovah,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단 

[9] Seventh-Day Adventist Church,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안식일인 토요일을 지킬 것을 주장하는 이단, 혼히 제칠일안식교라고 부른다. 

[10] 내가 신학교 시절 들은 이야기로는, 스토트 목사가 사랑했던 그의 누이는 예수를 모른 채로 죽었는데 그 후부터 스토트 목사가 멸절론을 내세웠다고 한다.

[11] universalism, 사후구원론, 보편구원론이라고도 한다.

[12] 랍 벨, 『사랑이 이긴다』, 포이에마, 158-159쪽

[13] 히브리서 9장 27절

[14] 누가복음 16장 19-31절, 예수의 비유

[15] 랍 벨, 『사랑이 이긴다』, 포이에마, 159-161쪽

[16]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이 지옥올 궁극적으로는 비워두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17] 앞의 책 187쪽

[18] 9·11 테러(September 11 Attacks), 2001년 9월 11일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 테러로 미국 뉴욕의 110충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 D.C.의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을 받은 대참사로 3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 랍 벨, 『사랑이이긴다』, 포이에마, 188쪽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1] 랍 벨, 『사랑이 이긴다』, 포이에마, 216-217쪽

[22] 요한복음 14장 6절을 이렇게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은 랍 벨만의 경우는 아니다. 불교의 숭산 스님이나 기독교의 한완상 장로 같은 이들 역시 비숫한 주장을 한다.

[23] 이 책의 추천사를 써준 유명인들로는 유진 피터슨 교수(리젠트 칼리지), 김민웅 교수(성공회대 기독교 윤리학), 권연경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 양희송 대표(청어람 아카데미) 등이 있다.

[24] A.N. 화이트헤드, 『종교론』, 종로서적, 57쪽

[2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6] 소위 ‘사랑장’으로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로 유명하다.

[27] 고넬료는 이달리야 부대(Italian Regiment)의 백부장(centurion, 백 명의 부하간 둔 장교 계급)으로서 식민지인 이스라엘의 가이사랴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했고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베드로롬 데려오라고 말한다. 베드로가 그와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전해줄 것이라는 것이다(사도행전 11장 14절). 그래서 고넬료는 그대로 순종했고 그와 온 집안이 성령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Park Sun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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