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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성공적인 기도의 단계(2) – 미신적 추측을 버려라

사진: Jon Tyson on Unsplash

지나치게 세속적인 번영 설교가(prosperity preachers)들과 영적으로 피상적인 은사주의 신앙 치유가(charismatic faith healers)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들은 극도의 탐욕에 의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 중심적인 신학이다. 그것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번영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터무니없는 것들을 요구함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동판매기와 마찬가지로 여긴다.

텔레비전에서 그것을 볼 때면, 영적으로 생소하고 사악해 보인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똑같은 경향이 우리 자신의 기도 생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그처럼 빠르게 눈치 채고 있는가? 심지어 우리의 기도가 점점 하나님의 영광과 뜻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로 마치 쇼핑 목록과 같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범을 잊어버리고, 그대신 자기 중심적이고 주관적이며 자신의 필요에 맞춘, 이 시대의 종교를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 발견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한다. 기도는 이득을 위한 미신적인 수단으로 전락했다.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주실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 방송에는 우리가 충분한 ‘믿음’을 발휘하고 어떤 ‘의심’도 품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기꾼들로 가득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일종의 ‘맹신’이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긍정적인 고백’ 같은 것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들이 설명에 따르면 의심은 – 그것이 이성적이고 성경적이라고 할지라도 – 자신이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거리낌을 갖는 것이다. 이것들은 당연히 믿음과 의심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가 아니다. 그리고 어떤 기도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면 “믿음의 기도”(약 5:15)라고 할 수 없다.

기도를 실용적인 희망 사항 목록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것은 은사주의자들만이 아니다. 다수의 유명 복음주의자들과 오랜 근본주의자들도 기도의 목적에 관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향력 있는 근본주의 목사 중 한 명인 John R. Rice는 1942년에 베스트셀러 ‘기도 – 구하고 받기’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도는 찬양, 경배, 묵상, 겸손 혹은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구하는 것이다. 찬양은 기도가 아니고 기도는 찬양이 아니다. 기도는 구하는 것이다. 경배는 기도가 아니고 기도는 경배가 아니다. 기도는 항상 구하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오직 구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주신 기도의 모범은 단순히 ‘구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에는 분명 구하는 것이 포함된다. 일용할 양식(가장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과 용서(가장 긴급한 영적 필요)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기도의 모범에는 Rice 박사가 그의 기도에 대한 설명에서 제거하고자 했던 5가지 요소 중에 적어도 4개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찬송, 경배, 겸손, 그리고 고백이다.

찬송과 회개를 주기도문에서 없애버린다면 중요한 것을 다 빼버린 셈이다. 바른 기도가 ‘오직 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중심적인 교훈 하나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도는 무엇보다도 예배의 행위라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러한 가르침은 기도하는 자와 그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뒤바꾼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노예라고 가르친다. 번영 신학은 인간이 주권자이고 하나님이 그의 종이라고 가르친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가 요구하고 명령하는 지위에 있고, 하나님은 그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놓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종의 지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내가 지적했듯이, 그런 생각은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이교도의 적화(積貨) 신앙(조상의 영혼이 배·비행기로 돌아와 그 추종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줄 것이라는 신앙: 역자주)과 더 가깝다.

기도는 단순히 구하고 받는 것 그 이상의 것이다.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 우리의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은 실로 놀라운 특권이다(히 4:16; 빌 4:6).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계속해서 약속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비롭고 후하게 응답하신다는 것이다(마 7:7-11; 17:20; 21:22; 막 11:24; 약 1:6; 요일 3:22).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우리에게 주신다(엡 3:20).

그러나 진정한 믿음으로 하는 기도의 본질은 요한일서 5장 14절에 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즉, 응답 받는 기도의 약속은 무조건적인 백지수표가 아니다. 이 약속은 오직 신실하고 순종하며 분별력 있고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여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된다. 그 약속은 예수님의 이름을 그것이 마치 마법 주문인 양 사용하는 분별 없고 미신적인 종교 추종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기도는 단순히 희망사항을 적은 목록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적인 기도는 기본적으로 예배이다. 그것은 우리의 찬양과 우리의 무가치함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소망의 표현이며, 우리의 모든 필요에 대하여 하나님께 완전히 의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의 모든 부분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것에는 우리가 구하는 것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빌 4:6) 우리의 구할 것을 바르게 하나님께 아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한 우리의 철저한 의존을 고백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주님으로 공급자로 그리고 우주의 지배자로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은 천상의 산타가 아니다. 올바른 기도는 순수한 예배이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아뢸 때도 마찬가지이다.

주기도문이 하나님 중심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있다. 따라서 순전한 예배는 어떤 맥락에서 구해야 하는지를 결정해 준다. 첫 구절들이 기도의 초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이다. 즉, 구하는 자의 가장 주된 관심은 그의 개인적인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확장에 있다. 다른 모든 것들도 그 맥락에 맞춰진다. 그러므로 기도의 모든 부분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기도 생활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모든 합당한 기도의 목적은 기도자의 요구사항이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영광을 확장시키는 데 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다. 기도의 올바른 목적은 나의 지경을 확장시키고 나의 왕국을 세우며 나의 지갑을 넓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기도의 초점은 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데 있다. 모든 기도는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하나님이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기도의 요점이다.

제멋대로이고 자기 중심적인 기도,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는 무시한 채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 내가 구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드리는 기도는 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우리의 입에 올리는 것이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본성과 뜻과 말씀을 거스르는 엄청난 죄악이다.

‘정하고, 구하라(Name it, claim it)’는 기도, 즉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건강하고 풍족하고 번영하고 성공하는 것을 바라신다는 생각과 이기적인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기도는 모두 예수님의 기도의 모범이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요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약속들에서 분명히 제외된다(약 4:3). 그런 기도에 숨어 있는 잘못된 믿음은 작은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심각한 오해로부터 온 것이다.

기도는 예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에 대하여 그렇게 끔찍하게도 왜곡된 가르침에 근거하여 드리는 기도는 가짜 신을 숭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탐욕과 물질주의와 그 밖에 이기심을 따라서 적은 희망 사항 목록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마치 하나님이 램프의 요정 지니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전혀 기도가 아니다. 그것은 신성모독 행위이다.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형태의 이교도 예배만큼 끔찍한 것이다.

우리는 예배자로서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 앞으로 겸손하게 나아가야만 한다. 성공적인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고, 우리의 욕망과 애정을 그에게 복종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찬양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며칠 동안 우리는 주기도문을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잘 훈련되고 성경적인 기도 생활을 위한 기본적이고 실용적인 단계들을 배울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 |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 담임

원문: https://www.gty.org/library/blog/B120504

[관련기사]

[GTK 칼럼] 성공적인 기도의 단계(1) – 찬양으로 시작하라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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