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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칼럼] ‘어사 박문수’를 떠올리며

사진; pixabay.com

조선 시대에 어사의 대명사는 <어사 박문수>다. 암행어사는 왕의 명을 받들어 지방을 돌면서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를 낱낱이 조사하고 보고하는 직책이다. 현직 관리들 중에 탐관오리의 경우 <암행 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면서 관가에 들이닥쳐 시시비비를 가리고, 부정 축재자, 사리사욕을 취한 지방 관리를 그 현장에서 파직하고, 하옥하는 막강한 실력자였다. 그렇게 조선 시대에 왕의 하명을 받고 일하는 어사는 약 600여 명이었다. 그런데 <어사 박문수>만이 역사적 인물로 돋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사 박문수>는 30세에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로 나섰다고 한다. 그 해가 경종 3년이었다. 그 후 영조(1694~1776)가 세자 시절 박문수는 세자 시강원의 교사가 되어 영조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은 1728년 영조 4년이었다. 왕족인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켰다. 요즘으로 말하면 친위쿠데타였다. 그런데 그 쿠데타를 진압하는 공로로 <어사 박문수>는 종二품 경상도 관찰사로서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 한다. 또한 그 공로로 공신으로 인정되어 영성군(靈城君)이라는 칭호를 받았었다. 그 후로 박문수는 <관찰사>, <예조참판>, <어영대장>,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 다양한 관직을 가지고, 민초들의 실제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국왕 영조 대왕과 함께 한 시대를 이끌어 가게 되었다. 그는 요즘으로 말하면 지성과 실무를 겸하고 백성들의 바닥 정서를 훤히 꿰뚫은 예지를 갖고 있는 관리였다.

그런데 박문수가 관직에 나가기 전에 그는 암행어사가 되었는데 그의 나이 37세였다. 특히 일반적 암행어사가 아니라, 영남지역을 관할하는 별건 어사로서 경상도 지역에서 특별활동을 했었다. 박문수가 어사가 된 것은 국왕인 영조의 특별한 총애를 받은 것도 맞지만, 왕권에 도전하고 나라를 뒤엎어 버리려는 반대세력을 꺾어버린 지장이요, 용장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구중궁궐에 갇혀있는 왕은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기에 암행어사의 직보는 곧바로 국정에 반영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어사는 지방의 부패관리와 서민들의 실상을 바로 파악하는 정보라인이었다.

그런데 박문수는 영조 4년인 1731년에 다시 호서지역의 어사가 되어 그 지역 관리들을 감시하고 백성들의 바닥 살림살이를 살폈다. 보통 어사의 활동 기간은 3개월 또는 6개월이라 한다. 그는 두 번에 걸친 암행어사의 활동을 통해서 나라의 바닥 정서와 탐관오리들의 생생한 정보를 국왕에게 보고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민중들의 삶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입법화하고, 왕명으로 정치적 문제와 민생을 해결했다. 그러나 <어사 박문수>는 지방 관리들의 그릇된 부패만을 척결한 것이 아니고, 그 기간에 노동자와 가난한 백성들에게 실제적 도움과 해결을 해주었다고 한다. 예컨대 박문수는 지방에서 시집 장가 가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결혼할 수 있는 실제적인 길을 열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군역(軍役)으로 고통 중에 있는 민초들을 생각해서 이른바 양반에게도 <평등하게 병역>에 종사하도록 만든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재해로 고통받는 백성들 편에 서서 나랏법을 어겨서라도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자신이 탄핵을 받을 것도 겁내지 않았다. <어사 박문수>는 굶주린 백성을 위해서는 문무백관들의 녹봉(봉급)을 깎자고 주장한 참으로 간 큰 대인(大人)이었다. 또한 조선 팔도에 수해, 풍해, 냉해로 농사가 거덜 나면 직접 달려가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 참 멋진 관리였다. 이 정도 되니 박문수의 반대 정당인 <노론>은 국왕이 또다시 박문수를 암행어사로 파송하려고 하자 결사적으로 막았다. 그런데 박문수는 백성을 위한 것이나,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두려움 없이 국왕에게 대놓고 직설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임금의 탕평책은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전하께서는 신하를 부리는 도리를 얻지 못했다」고 직언을 했다. 그리고 「국왕이 학문이 부족하니 공부 좀 하라!」 고 닦달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 국왕 영조가 얼마나 그를 좋아했을는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국왕은 말하기를 “모두들 <영성군> 박문수를 미친놈이라고 했지만, <내가 홀로 그의 마음을 안다>”고 그를 감쌌다. 그 임금에 그 신하였다.

그는 민생문제에 대해서는 탁월한 혜안으로 원칙과 대안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그 시대의 <개혁가>였다. 박문수 같은 어진 관리로 말미암아 당시 백성들은 희망을 보았고, 관리의 표준형이라고 생각했다. 박문수는 조선 시대의 영조 임금 52년간 통치 시절에 백성들의 영웅이요,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위로자가 되었다.

필자는 여기서 최근 한국에 또 다른 현대판 <문수>를 생각해 본다. 나는 그를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그는 노동운동, 골수 좌파운동을 했던 자로서 전향해서 국회의원을 세 번 하고, 경기도 지사를 두 번이나 했다. 이번에 그는 대통령의 특명으로 <경사노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단다. 그의 좌파척결에 대한 거침없는 소신 발언은, 그의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에 입각한 확실한 메시지, 그리고 반대당의 집중포화와 비난 그리고 언론의 일방적 보도에도 주눅 들지 않고, 폭탄 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우리는 아직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특히 나는 그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자유대한민국을 위한 나라 사랑과 민초들을 사랑하는 오늘의 <문수>를 위해 계속 기도하련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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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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