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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사전을 통해 발견되는 은혜

드라마 | 미국 | P.B. 셰므란 | 124분 | 15세 관람가 | 2021

272호 / 뷰즈 인 시네마

19세기 유럽의 섬나라, 영국이 식민지 개척과 함께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면서 영어 사전이 필요했다. 옥스퍼드의 내로라하는 교수들도 주저하고 있을 때, 교사였던 언어 천재 제임스 머리가 옥스퍼드 사전 편찬을 맡게 됐다. 그러나 많은 작업량과 물리적 시간적 한계, 그리고 제도권 엘리트 출신이 아니라는 그에 대한 학자들의 불편한 시선은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때 받게 된 한 장의 편지로 사전 편찬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머리 박사는 편지 발신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조력자가 갇힌 정신병원으로 간다.

사전 제작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만큼 방대한 분량의 편지를 보내 머리 박사의 은인이 된 그는, 사람을 살인하고 정신병동에 갇힌 조현병을 앓는 의사였다. 영화 초반 급박하게 진전된 추격 신과 한 남자의 죽음, 그리고 이어진 재판, 곧 갇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는 이 남자를 보여주기 위한 전개였다.

이 사람은 예일대학 출신 외과의 윌리엄 마이너 박사. 마이너 박사는 전쟁에 군의관으로 복역하며 탈영하려던 자신의 병사에게 낙인을 찍는 역할을 하게 되고 그 이후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사람의 신체를 자르고 붙이는 물리적인 의학 행위를 통해 사람을 고치는 외과의라는 점이다. 그에게 신체에 낙인을 찍는 것 정도는 사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닐텐데 그는 낙인을 찍는 단 한 번의 행위를 통해 전혀 다른 사람, 즉 다른 인격으로 바뀌게 된다. 아무리 칼을 들고 배를 가르는 행위를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것은 그의 인격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원치 않는 자에게 징벌로 신체에 낙인을 찍는 행위는 그의 인격을 파괴시켰다. 그 뒤로 그는 자신이 낙인을 찍은 군인에게 끊임없이 쫓겨 다닌다. 물론 이것은 현실이 아닌 그의 망상이다. 또한 그 일을 행한 자신에게 벌을 주는 끔찍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결국 병적 강박에 가까운 이 망상으로 그는 아무 상관 없는 한 가정의 가장을 살해하게 된다. 하지만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정상 참작으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됐다.

끔찍한 살인의 주인공, 한 가정을 무너뜨린 죄까지 추가한 그는 자신의 죄짐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자신이 만든 마음의 감옥 안에 갇히고 만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낙인 찍은 군인과 자신이 실수로 죽인 남자와 한 방에 놓여 웅크리고 있는 장면은 죄의 노예가 되어 아무도 우리를 옭아매는 줄이 없어도 스스로 죄짐에 매이게 된 죄인을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또한 자신이 죽인 가장의 미망인과 인간적인 교류를 넘어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자 그는 죄책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하며 자해하고 스스로를 놓아버리게 된다.

영화는 말미에 은혜를 보여준다. 자신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린 그를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 방문해, 사랑의 감정 자체가 결코 스스로를 파괴할 죄가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영국을 떠나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가 치료받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주인공에 대한 실제 사실을 추적해 보았다. 그는 선교사의 자녀로 선교지에서 태어나 좋은 기독교 가정 안에서 양육되어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복음을 가진 선교사의 자녀가 이런 죄책감에 시달려 정신병에 시달리고 자신을 해치는 데까지 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죄에 대한 자각만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죄를 지으면서도 감각이 없는 세대, 양심에 화인 맞아 비틀어지고 왜곡된 세대 가운데, 죄를 이렇게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한 심령을 가진 자가 있었다는 것이 내 양심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됐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그가 얻었기를 잠시 기도하게 되었다.

죄에 대해서 이토록 진지한 심령을 가진 자라도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는 사전 편찬을 도울 때, 자신이 빛을 쫓아가는 동안 고통받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물론 영화에서는 사전 편찬을 돕는 일을 말했지만, 정확하게는 죄책감을 완전히 떠났던 그 순간,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사대로 쓰임 받았던 그때 그에게 빛이 있었다는 말로 이해가 됐다.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그 죗값을 갚아보려는 눈물겨운 헌신과 노력이 아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에겐 빛이 필요하다. 빛을 쫓을 때 우리는 죄를 갚으려는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아래 거하게 된다. [복음기도신문]

최현정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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