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오영철 칼럼] 평생 잊지 못할 사람, 루카 장로 이야기

사진: 오영철 선교사 제공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평생 잊지 못할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한 분이 ‘루카’ 장로이다. 그분의 성품, 자세, 헌신과 순수함이 남달랐다. 또한 나에게 어른으로 격려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선교의 방향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증하여 주셨다.

그의 이력과 경력이 특이하다. 그는 1977년대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자로 간 것이 아니라 군인의 길을 걸었다.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라, 태국 국방부 정보사령부에서 그를 선택하여 정보장교로 만들었다. 당시 미얀마와 접한 국경은 반군들이 미얀마군과 교전을 오랫동안 하면서 복잡한 상황이었다. 국가 안보를 위하여 국경을 관리할 적임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가 선택된 것이다. 태국어와 카렌어 그리고 영어가 가능하고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 시절에 태국 카렌침례총회 총회장으로 섬기기도 하였다. 카렌족이었지만 대령까지 진급하였고 예편하였다. 이후에 그는 마침 공석이었던 실로암 신학교의 학장으로 섬겼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다고 하면서 월급을 받지 않았다. 그 때부터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어졌다. 학교에서 일을 마무리한 후 총회의 회계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장부를 확인하는 회계가 아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같이 하게 되었다.

2013년부터 3년 정도 나는 루카 장로와 같이 약 70곳의 카렌 교회를 다니면서 모금을 하였다. 신학교 기숙사 건축을 위한 모금 활동이었다. 1억 원이 넘는 기숙사비(270만 받)가 필요하였는데, 작정 액수는 그보다 많았다. 깊은 산골의 어린이에서 과부 할머니 그리고 여유가 있는 중산층까지 많은 분들이 헌금하였다. 그의 방문과 격려와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지도자로서 본을 보였다. 그의 1년 수입의 반 정도인 16만 받(약 600만 원)을 헌금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무명으로 처리하였다. 기숙사에는 건축에 대한 설명이나 기록이 전혀 없지만 성도들의 귀한 헌금이 깊이 녹아져 있다.

“사실 교회에 가서 돈을 요청하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오영철 선교사가 앞장서고 저는 뒤에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가 자주 하였던 말이다. 자신의 공이라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었다. 그가 없었으면 불가능하였던 일이다. 헌금의 필요성과 상황을 내가 설명을 하지만 그가 어른으로 옆에 같이 동행했기 때문이었다. 헌금 작정 이후 정리 헌금관리는 루카 장로가 하였다. 그리고 어른으로 본을 보이고 지역교회와 쌓아온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먼저 헌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전을 하였다.

“과거 미국 선교사들은 우리에게 헌금에 대하여 잘 가르치지 않았던 것은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가 같이 방문할 때 교회 지도자들에게 도전을 주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진: 오영철 선교사 제공

몇 년 전 그는 내가 평생에 잊지 못할 이야기를 하였다.

“오영철 선교사는 우리에게 물고기를 주기 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국 카렌침례총회 운영위원회에서 한 이야기이다. 현지 교단에 필요한 재정을 외국교회나 요청하지 않고, 같이 현지교회에서 모금한 일 때문에 한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교사의 역할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준비된 자원을 현지인들이 먼저 보고 헌신하게 하는 일이다. 직접적인 도움은 그들의 헌신보다 앞서면 안됨을 다시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모금을 위한 여행 중 식사비는 그가 늘 먼저 섬겼다. 교회를 방문하면 빈 손으로 가지 않고 목회자 가족들에게 베풀었다. 그는 참 어른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가 가슴 시린 이야기를 한다.

“이제 모금을 위한 방문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72세인 그의 몸이 최근에 많이 약해졌다. 이제 같이 교회 방문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파킨슨병과 골강도의 약화로 걸음이 이전 같지 않게 되었다. 말의 표현도 이전처럼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같이 교회 방문을 못하게 된 것이다.

10년이 거의 다된 이야기를 한다.

“같이 모금을 위하여 카렌 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은혜였습니다.”
“때로 교인들의 불평을 듣기도 하였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육체는 약해지지만 같이 방문하면서 경험한 보람과 감사가 여전히 그 속에 남아 있음을 본다.

수십 곳의 교회 방문을 같이 하던 그 때가 그리웠던 것이다.

앞으로 현지에서 그와 같은 어른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잊지 않고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진심 어린 그의 따듯한 마음이 전해져온다. 며칠 전부터 라인으로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잘 지내고 있는 지를 여러 번 확인하였다. 나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선교사로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 만남의 은혜가 특별한 것 같다. 선교사가 아니었으면 이런 분들을 어떻게 만났겠는가? 그는 나를 의지하여 방문하였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그를 더 많이 의지하였던 것 같다. 그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나를 생각한다. 나는 어른 노릇을 하는가? 베풀고 섬기는가? 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드러내는가? 그리고 때로 적절한 도전을 주는가? 이런 질문을 생각하니 나는 아직도 멀었다. 그래도 그런 모습을 먼저 보여준 어른이 있다는 것은 복이다. 좌표가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감사하다. 나의 어른인 루카 장로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복음기도신문]

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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