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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순전한 기독교

루이스는 현대 신학 사조에 맞추어서 기독교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가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책이 잠시 인기를 얻었다가 사라졌지만, 루이스의 이 변증서는 처음 발간이 되었을 때보다 21세기가 된 지금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영어로 출판된 것만 해도 2001년 이후 400만 부 넘게 팔렸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신앙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책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지인들이 그에게 300권이 넘는 책을 보내주었는데, “그중 100권이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였다.”

사실 순전한 기독교는 원래 책으로 출판하려던 게 아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모두가 고통 속에 있던 시절, 루이스가 BBC 라디오에서 네 차례에 걸쳐서 강연한 원고다. 루이스는 방송을 한 후에 이 글들을 각각의 작은 소책자로 출판했다. 그러나 1952년이 되어서야 그는 이 글들을 하나로 묶어서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이 책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도대체 루이스가 신앙에 대하여서 어떻게 말하였기에 이 책은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 우리 중 누구도 C. S. 루이스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 루이스를 통하여서 우리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1. 루이스는 영원한 진리를 추구했다

루이스의 시대나 오늘 우리들의 시대나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습관의 하나는 삶과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그에 대한 오래된 이해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루이스는 역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우리 시대의 “최신 사상”도 다음 세대에게는 진부한 얘기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루이스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잠시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유행보다는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는 영원한 진리를 찾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순전한 기독교”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믿음”(viii)으로 정의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최신의 현대적인 사상들을 제시하기보다는 “그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그가 좋아하든지 그렇지 않든지”(ix) 관계없는 기독교의 본질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는 역사에 기초하여 기독교를 설명함으로써 될 수 있는 대로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와 연관하여 기독교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피했다. 예를 들어서 그는 “기독교와 채식주의자” 또는 “기독교와 새로운 세계 질서” 같은 방식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보면, 삼촌 마귀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마귀 웜우드에게 그가 담당하는 환자(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위험이 있는 젊은 남자)를 다음과 같이 유혹하라고 가르친다. 그 젊은 남자가 기독교를 잘 활용하면 정치적으로 중요한 담론을 제시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서 앞으로 정치적으로 유리한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유혹하라는 것이다”(135). 이와 같은 정치적인 편향성을 가지면 그 환자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현대 신학 사조에 맞추어서 기독교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시도는 “기독교와 물”을 분리하는 것처럼 생명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기독교의 본질을 희석하는 시도라고 보았다. 당시의 유행하던 자유주의 신학 사조는 기독교를 비신화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루이스는 수백 년 동안 복음의 중심 메시지였던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더욱 강력하게 옹호했다.

2. 루이스는 불변하는 인간의 속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루이스는 영원한 진리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대와 지역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문학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루이스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찾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BBC에서 모든 영국인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도 루이스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모든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었다.

그는 선과 악에 대한 보편적 기준을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보편적 기준에 대한 경험에 호소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예를 들어서 당시에 그들이 싸우고 있었던 나치)들이 선과 악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에 맞추어 살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사실 그들도 정직하게 그들 자신을 되돌아보면 자신들도 항상 그 기준에 맞게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루이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 인식하도록 유도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을 치유하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3. 루이스는 다양한 상징들을 사용하여서 근거를 제시했다

순전한 기독교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이 책이 사용하는 언어의 선명함이다. 특별히 루이스는 상상, 은유, 비유를 효과 있게 사용했다. 어떤 사람들은 루이스를 합리주의적인 변증가로만 여긴다. 그래서 그에게 무관심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21세기에는 루이스가 가진 그러한 합리성이 유효하지 않다고 무시하기도 한다. 물론 순전한 기독교 안에는 몇몇 탁월한 논리적인 주장도 들어있다. 그러나 많은 평론가가 강조했듯이 루이스는 더 많은 경우에 다양한 상징들을 활용하여 순전한 기독교의 본질을 제시했다. 문학 작가로서 그는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현실을 이해할 줄 알았다. 나니아 연대기와 다른 문학 작품들을 저술한 루이스는 동일한 방식으로 순전한 기독교를 저술했다.

순전한 기독교의 독자들은 루이스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묘사하려고 사용한 다양한 상징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나오는 여정과 같다. 또는 반역을 하던 손을 내려놓고 항복하는 것과 같다. 또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자신의 일부분을 죽이는 것과 같다. 또는 걸음마를 배우거나 글쓰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 또는 하나님께 선물을 사드리는 것과 같다. 또는 물에 빠진 사람이 자신을 구하러 온 구조대원의 손을 붙잡는 것과 같으며, 장난감 병정이 살아나는 것과 같고, 말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것과 같다. 또는 나침반의 자침이 북쪽을 향하여서 움직이는 것과 같고, 어두운 온실 하우스에 갑자기 햇빛이 비치는 것과 같다. 이외에도 루이스는 더 많은 비유를 사용하면서 기독교의 본질을 설명했다.

4. 순전한 기독교는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루이스는 동시대를 살았던 디트리히 본회퍼가 언급한 “값싼 은혜”를 말하지 않았다. “순전한 기독교”는 최소한의 기독교가 아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다. 도리어 이 책의 독자들은 기독교 복음이 그들에게 과도한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받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224). 또한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전부이다.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 … 교회는 사람들을 이끌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그들을 작은 예수들로 만들기 위하여서만 존재한다”(199). 우리는 “너희는 온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로 변화되고 있는 중이다(198).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변화되고 가고 있다(220). 이것은 오직 새로운 인류의 첫 열매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포기”이다(226).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요구는 대중적 부흥주의 전통에서는 간과되었던 요구이다. 부흥주의 전통에서는 “거듭남”을 마치 개인이 스스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루이스에게 있어서 강조점은 그가 자신의 자서전의 제목으로 붙인 “예기치 못한 기쁨”에 있었다. 복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얻는 예기치 못하는 기쁨만이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자기 자신의 포기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 전통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자신의 사랑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마치 태양을 돌고 있는 행성과 같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랑이 제자리에 자리 잡은 모습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들을 사랑하게 된다.

5. 루이스는 독자들에게 복음 자체의 아름다움을 제시했다

1939년에 루이스는 The Personal Heresy라는 제목의 글을 문학 비평으로 출판했다. 이 글에서 그는 시를 시인의 정서적인 상태와 연결하여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시인은 자신을 보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시인은 저것을 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을 따라서 바라본다면, 나는 더이상 사람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14).

루이스는 변증가로서 순전한 기독교를 저술할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관심을 끌게 하거나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반영하여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그의 책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루이스가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자신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들이 발견한 것들을 그저 다시 설명하는 수준에 머물러있지 않았다. 그는 친절한 여행 안내자처럼 우리를 안내했다. 그는 마치 등산에 동행하며 설명해 주는 해설자와 같았다. 그래서 혼자 갈 때는 놓치기 쉬운 온갖 종류의 꽃과 풀을 보게 해주고, 멋진 암석들을 바라보게 하였다. 이런 안내자가 우리에게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멋진 산봉우리와 호수의 전경을 보여주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에게 무척이나 고마웠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은 바로 당신이 보게 된 그 아름다움일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순전한 기독교”는 최소한의 기독교가 아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다

조지 마즈덴(George Marsden) | 조지 마즈덴은 University of Notre Dame의 명예교수로서 ‘C.S. Lewis’s Mere Christianity: A Biography’의 저자이다. 이 책에는 순전한 기독교의 배경과 영향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담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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