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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칼럼] 아빠는 어떠세요

사진: 오영철 제공

7월 1일에 한 형제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Please pray me! Teacher).

‘러뷔애무’라는 티써래 학교의 교사이다. 그 지역은 미얀마의 카렌 지역으로 태국 국경과 가까운 곳이다. 그 곳은 전투 지역이다.

지난 6월 26일부터 카렌군과 미얀마군간 사이에 ‘우끄래타’라는 마을에서 전투가 격렬하게 시작되었다. 10일 정도의 전투에서 미얀마군 측에서 100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얀마군은 육군이 밀리면서 전투기를 이용한 공격을 밤낮으로 하였다. 카렌군 측에서도 10여 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주로 전투기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였다.

그가 머물고 있는 ‘티써래’는 전투가 벌어지는 ‘우끄래타’와 불과 15분 거리다. 6월 26일부터 매일 총격과 포격소리 그리고 전투기의 공격 소리를 듣고 있었다. 총과 박격포의 소리도 두렵지만 전투기의 소리는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전투기로의 공격은 준비할 겨를이 없이 당하게 된다. 지난 얼마 동안에 그 지역에서만 모두 125번의 비행기 포탄공격을 했으니 비행기 소리만 나도 큰 불안이 엄습하는 것이다.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연락을 한 날이 전투가 시작된 6월 26일이었다. 그날은 그곳에서 전투시 피신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이 피신한 곳을 방문하는 중이었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준 것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7월 1일에 연락이 온 것이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다음날 메신저를 통하여 그곳의 상황에 대하여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가 발생한 후 주민들은 거의 전부 마을에서 피신하였다. 약 200가구의 천여명 중에 남은 사람은 50명 정도이다. 노약자들과 여성들은 피신하였고 건장한 남자들만 남았다. 물론 학교는 바로 문을 닫았다. 아이들 일부는 태국 국경으로 피하였고 나머지는 가족과 함께 흩어졌다.

티써래 학교에 4명의 남자 교사만 남고 나머지는 피신하였다. 이들은 교회와 학교 그리고 기숙사 시설, 남은 음식과 닭들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어서 피신해야 할 것 같은데, 돌보아야 할 물품들 또한 그들에게 소중하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연락이 왔다. 옆에 있는 마을에서 미얀마 공군기가 학교 옆을 공격하여 두명의 어린이를 포함하여 5명이 시민들이 사망하였다. 그들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머리의 삼분의 일 정도가 없어진 참혹한 사진이다. 밤에 통화를 계속 하는데 갑자기 전화를 끊는다.

“지금 전투기가 오고 있습니다. 끊어야 합니다.”

밤에는 불빛을 비추거나 연기를 피어서는 안된다. 군인이나 전투기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가 전투기 조종사에게 주목을 받지 않겠지만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이 작은 것 하나라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7월 5일에 다시 메시지가 왔다. 상황이 어떻고 되고 있는지 궁금하여 통화를 시도했는데,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답을 메시지로 보냈다.

Yes, I’m fine Dad/ 네, 저는 괜찮습니다. 아빠
And you dad/아빠는 어떠세요.

그의 메시지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한다. 나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이다. 그의 형편은 나에 대하여 안부를 확인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안전한 태국의 한 도시에 머물고 있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고 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전투지역에 있다. 그가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은 안부에 대한 질문보다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소통의 대상이다. 그에게 그의 상황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의 안부를 묻는 사람은 이 상황에서 그의 동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소통의 끈을 유지하고 싶은 그의 간절함을 느낀다.

또 한 가지는 나에 대한 호칭이다. 7일부터는 갑자기 나를 아빠(Dad)라고 한다. 이전에는 선생님(Teacher)라고 했다. 이후로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항상 아빠라고 한다. 일주일이 지난 뒤 궁금하여 왜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지 질문을 하였다.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호칭입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월이다. 그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태국으로 피신한 카렌 공동체를 만나서 격려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대화는 그곳의 여성 지도자인 무무애 목회자와 하였다. 짧은 시간에 그의 배경과 현재 하는 일에 대하여 나눈 기억이 있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나를 존경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에게 존경을 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를 가르친 적도 없다. 그의 집을 방문한 적도 없다. 그의 가족도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그를 도와준 적도 없다. 굳이 했다면 지난 2월에 그가 참여한 공동체에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6월 26일 전투가 발생하고 난 뒤 그의 상황을 묻고 걱정해 주고 기도하는 정도이다.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쩌면 그의 ‘임시 아빠’라는 역할을 지금 주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자격이 되기 때문은 아니다. 짧은 만남 이후 그의 마음 자리에 내가 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어눌하지만 그의 언어로 설교하는 외국인이 남다른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투가 시작되어 남겨진 그에게 누군가의 위로와 나눔이 필요하였다. 총소리와 박격포 소리 그리고 전투기 소리로 인한 두려움은 극도의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그 때 그 상황을 조금이라고 이완시킬 사람이 필요하였다. 그의 상황을 풀어내고 들어주고 나눌 사람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은 그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일 수 있겠다 싶다.

전투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작은 것들도 너무 귀한 것 같다. 평상시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의 유지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 가운데에는 심리적, 정서적, 영적 영역도 있을 것이다. 전투지역에 있는‘러뷔애무’ 청년의 나에 대한 ‘아빠’라는 호칭을 통해서 이것을 느낀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하나님의 주신 부르신 자리를 섬기고자 한다. 25세 청년의 자세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 헌신 유지에 나의 ‘임시 아빠’ 자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는 한 순간도 견디기 어려운 그 자리를 지켜내는 그의 헌신과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외의 사람과 장소 그리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계속됨을 본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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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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