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루시고자 하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죽음과 부활은 현세의 삶에 실제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나? 혹은 영원의 문제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것이었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형태를 취하시고, 의로운 삶을 사시고,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기꺼이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 바치신 것을 생각해 보자. 그 모든 일이 죄를 없애지 아니하고 단순히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한 목적이었던가?
사도 요한은 편지의 수신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의 진실성을 시험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첫번째 서신서를 썼다. 이러한 시험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들의 삶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요한일서 3:5-8에서 우리를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의 백성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성화하는데 영향을 끼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5-8)
우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역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죄를 없애려고”(요일 3:5) 오셨다. 그는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서 오셨을 뿐 아니라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오셨고,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해서 오셨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결과로 믿는자는 죄로부터 거룩하게 분리되었다. 한때, 그들의 삶의 특징이라 할 수 있었던 불법이 제거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같이 나눈 사람이 계속 죄 속에 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믿는 자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고후 5:21), 죄 속에 사는 것은 믿는 자의 삶에서 죄의 권세를 깨부신 그가 하신 일과 반대되는 일이다(롬 6:1-15참조).
죄를 멸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진리는 단순히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어떤 사람은 믿는 자는 죽으면 죄로부터 구속받을 것이지만 죽기 전에는 그들이 여전히 죄 속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한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성화의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구원받은 후 삶을 바꾸어 놓는 그리스도의 작업은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빌 1:6).
구원 받는 순간 믿는 자는 진정 깨끗하게 되고, 그들의 죄로 부터 분리되는 것을 경험한다. 실제로, 그 분리는 그들이 예수님의 형상을 더욱 더 닮아가면서 계속 진행된다.
디도서 2:11-14은 성화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한번의 역사는 우리 삶 안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하시는 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였을까? 우리들이 이 세상의 삶에서 죄를 이길 수 있게 하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새로운 성품
요한은 5절을 “그 에게는 죄가 없느니라”라는 말로 마쳤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고후 5:21). 이 사실은 엄청난 실제적인 파급 효과가 있다. 요한은 서신서의 앞 부분에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새로 믿는자에게 미치면, 그들은 거듭 태어나고, 새로운 성품을 받는다. 그리고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배우는 삶을 시작한다.
그런 후에 사도는 6절에서 그리스도의 역사로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을 설명한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는 그를 보지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그의 법을 따르고 그의 승리를 기념하며 그의 왕국에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새롭게 된 사람은 죄를 멀리하고 그리스도와 가까워진다. 몇 해 전에 바울은 같은 진리를 로마 성도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4-7)
이 말씀은 신약성경의 중심되는 규례들을 요약한 것이다.(겔 36:25-31) 바울은 이어서 더욱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성화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에겐 성령님이 계신다(롬 8:12-17). 새로운 마음을 받고(행 16:14), 완전한 용서를 받고(골 1:14), 그리고 새로운 삶을 받는다(골 3:5-10).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새로운 능력으로 증명된다.
성화와 확신
“범죄하는 자”(요일 3:6)는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없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다시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요일 1:8).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이 살았던 삶을 다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보고 그를 아는 사람은”(3:6) 계속해서 혹은 습관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과 같이 “죄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은 더 나아가 그의 수신자들에게 성화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속고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라고 주의했다. 반대로 가르치는 거짓 가르침이 있지만, 오직 “의를 행하는” 자만이 “예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다”(요일 3:7)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요한은 분명하게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진정으로 믿는자들이 마귀와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 사탄은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한다(벧전 5:8). 그러나 믿는 자들은 더 이상 그의 영향 아래에 있거나 그의 지배 애래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우리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요한은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죄된 생활양식은 죄가 불법이기 때문에 구원 얻는 믿음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진정 믿는 자는 그 반항적이고 불법적인 마음을 회개의 마음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죄된 생활양식은 구원 얻는 믿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 뿐 아니라 일생 동안 진행될 성화의 과정을 시작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죄가 왜 구원 얻는 믿음과 어울리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되는 성령님의 사역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우리는 그 마지막 문제를 다음에 알아보고 이 시리즈를 마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위의 글은 존 맥아더의 신약 주석 :요한 일서 – 삼서에서 따온 것입니다.)
출처: http://www.gty.org/blog/B140626?term=b140626
존 맥아더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