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לֶצם 첼렘, image)과 ‘모양’(דמות 드무트, likeness)에 대한 단어의 의미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원인은 구약성경 최초의 번역서인 칠십인 역(LXX) 때문이기도 하다.
LXX역은 창세기 2장 26절에 나오는 구절을 ‘우리의 형상과(and) 모양을 따라’로 번역했다. 형상과 모양 사이에 ‘and’를 넣어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해 형상과 모양이 마치 서로 다른 의미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여기에서 표현된 형상과 모양에는 차이점이 없다. 문법적으로 동격이기 때문에 사실 같은 말이다. 하나님의 모양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단어의 모양은 다르지만, 사실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두 단어를 구분해서 이해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르지 않는 성경 해석이므로 지양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두 단어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 두 가지 사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창세기의 본문에서는 이 두 단어가 교차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창 5:1)’ /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창 5:3)’
만약 두 단어 사이에 서로 다른 의미가 있다면 이렇게 교차되어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문맥을 조사해 볼 때 강조점을 향해 흘러가는 방향성은 있지만, 의미상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둘째, 성경을 해석하는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병행어법이다. 이것은 평행어법(Parallelism)이라고도 하는데, 성경을 기록한 문학적인 기법과 용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가 서로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에 함께 있다는 원리이다.
서로 다른 단어이지만 내용과 의미, 그리고 사상이 같이 간다. 두 단어는 구분이 불가능한 단어의 쌍(word-pair)으로 존재 한다. 가끔 예외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단어의 쌍이 올 때에는 뒤에 오는 단어에 강조점이 주어진다. 이는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리이다. 예를 들어 A와 B라고 하는 두 단어가 쌍으로 있다 하자. 그럴 때 해석은 이렇게 된다.
B는 A 그 이상이다(B is more than A). A와 B라고 하는 두 단어가 올 때 앞 단어 A보다 뒤 따라오는 B에 훨씬 큰 의미가 있다. 의미의 무게 중심이 B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런 성경 해석을 창세기 1장 26절에 적용한다면 두 단어 중 어디에 강조점이 놓여 있겠는가? A=형상, B=모양이다. 강조점은 B, 즉 모양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숨겨진 카드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교수(복음기도신학연구소)
필자는 이스라엘에서 구약을 전공하며 히브리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언어임을 깨닫고 현재 성경언어학교를 통해 믿음의 세대를 세우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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