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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기억나는 성도, 기억되는 목사

ⓒ 이영선

공군 목사 이야기(8)

1. 황 집사님의 뇌수술

아침에 전화가 왔다. 나는 빠르게 받았다. 황 집사님이 이제 곧 대학병원에서 뇌수술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집사님은 조종사로서 편대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뇌에 이상이 발견되었다. 여러 경로를 거쳐 대학병원에서 뇌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황 집사님이 뇌수술을 받는다고 한 전날, 나는 아내와 함께 돌아가신 장인어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장인 어른은 내가 결혼하기 전에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처가(妻家)는 장인어른이 수술을 받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날 아내와 함께 장인어른의 수술받기까지의 과정을 듣다가 황 집사님의 수술도 오히려 의사들의 수술 경험 쌓기 정도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자로서 느끼는 직감이었다. 저녁에 나는 황 집사님과 통화를 하려고 몇 차례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 날이면 뇌수술을 받는데 번득이며 뇌리에 스친 이 직감을 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조바심이 났다. ‘만일 연결이 되지 않고 집사님이 수술을 받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관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관사 전화벨이 울렸다. 황 집사님이었다. 이제 곧 뇌수술이 시작되는데, 그 전에 기도해달라는 전화였다. 뇌수술을 결정하기 전, 황 집사님은 뇌에 발견된 이상을 제거하기 위해 이곳저곳 알아보고 마치 혹을 떼어내듯이 간단한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그것이 비록 뇌의 문제이지만 간단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하던 중 뇌수술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90년대 한국의 뇌수술 의료진의 경험과 기술이 어느 수준이었을지도 잘 알 수 없다.

나는 기도하면서 받은 생각을 집사님께 이야기하고 대학 병원에 다시 물어보라고 했다. 뇌수술을 통해 완전 치료의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후유증은 없는지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목사의 직감으로 이 수술은 하지 말고 다른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면했다. 최종 결정은 집사님 자신이 하는 것이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란 표현을, 나 자신의 개인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종으로 서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마음을 전하고자 할 때 사용한다. 전화는 끊어졌고 이제 황 집사님의 결정이 남았다. 나는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오후에 전화가 왔다. 황 집사님은 수술을 받지 않기로 했다. 알아보니 완전 치료를 담보할 수도 없고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에 결과적으로, 환자가 뇌수술을 하는 의사들의 일종의 실험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황 집사님은 서울로 올라가 원자력병원을 찾아갔고 거기서 다른 방식의 치료를 받았다. 후유증은 없었다. 대신 전투기 비행은 내려놓아야했다. 빠른 비행기의 속도가 뇌에 압력을 주어 이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사님은 비행 교관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목사로서 한 사람의 삶을 살렸다.’는 잔잔한 감동이 남아 있다.

2. ‘귀여운 목사’의 권위

교회의 여전도회 회장인 기무부대장 부인은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무척 미인이었다. 처음 예천 비행단에 가서 여전도회장을 만났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 윙크를 하는듯 했다. 무슨 일인가 했다. 뒤에 알게됐다. 처음 비행단 교회에 갔을 때, 권사님, 집사님들이 나보고 ‘귀여운 목사’가 왔다고 했다. 그런 인식이 여성도들에게 있었던듯 했다.

나는 당시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게 하지 말고’ 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났다. 나를 귀엽게 보는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에게서 어떻게 권위자로 여김을 받고 목회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 사건들은 군산 교인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목회는 잘 되었다.

그런데 예천 비행단은 군산 비행단과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전대급에서 장군이 계시는 비행단으로 규모가 바뀌었고 게다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무부대라는 조직이 있었다. 군대의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곳이라는데 그런 기무부대장의 부인이 여전도회장이니 어떻게 대응하고 관계를 맺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목회를 잘 하려면 여전도회장하고 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나를 그냥 귀엽게만 보는 것이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어린 내가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존중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지나자, 기무부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교회 집사인 기무부대장이 목사가 새로 부임했다고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예천의 소고기집으로 갔다. 거기서 그 비싸다는 송이버섯과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소고기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먹었다.

다행히 관계는 좋았다. 기무부대장은 권력자라고 으스대지도 않았고 나를 목사로서 잘 예우해주었다. 여전도회장도 내가 하는 목회에 잘 협조해주었다. 어느 수요일이었다. 저녁에 수요예배를 드리는데 여자 새 신자가 한 명이 와서 예배를 드렸다. 나는 예배를 다 마치고 뒤에서 교인들과 인사를 하는데 그 새 신자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나는 아내에게 “새로 온 신자 같은데 이름하고 관사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 좀 알아봐요” 라고 했다. 아내가 나를 보더니 “여전도회장이잖아요!” 했다. 아… 내가 지금 글을 쓰면서도 그 때를 생각하면, 여자의 화장과 복장은 완전한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움이 있다. 난 정말 전혀 몰라봤다.

3. 기무부대장이 받은 은혜

노태우 대통령 때로 기억한다. 공군의 전투기를 구입하는데 문제가 드러났다. 하나는 엔진이 두 개이고 레이더 성능도 더 좋은 것이었다. 반면에 또 다른 하나는 엔진이 하나였고 레이더 성능도 떨어졌다. 그런데 성능이 떨어지는 전투기를 차세대 전투기로 정한다는 것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리베이트 문제가 개입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매우 화가 났다. 나라의 국방을 지키는 데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반역자와 같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같으면 능지처참에 해당하는 죄라고 생각했다. 한국 첨단 기업의 비밀을 가져다가 중국에 팔아먹는 놈들이 있다고 하는데 아주 천하에 악질과 같은 존재들이다.

어느 주일, 그 일련의 이야기를 설교시간에 나눴다. 기무부대장이 예배당에 앉아있는 자리에서 당시 정부 지침에 반대되는 입장을 밝혔다. 태연하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기무부대장 집사의 안색을 보기도 했다. 예배를 다 마치고, 예배당 출입구에 서서 돌아가는 성도와 인사를 할 때, 이 씨 성을 가진 기무부대장이 나왔다. 이 집사님은 나와 악수를 하면서 “은혜 받았습니다.” 했다. 어떤 은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기무부대에서 부를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제대 이후까지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어졌다. 중국으로 선교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기무부대장 이 집사님이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선교, 그거 위험하고 어려우니 가시지 말라.’ 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선배가 방배동에 70명 모이는 교회의 장로이고 그 교회의 실제적 책임자이니 거기 가서 목회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솔직히 이 제안이 마음에 끌렸다. 나는 당시 무슨 선교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평생에 선교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목사였지 선교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교회와 선교한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만일 내가 그때에 선교를 가지 않고 방배동의 교회로 갔다면 꽤 큰 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진짜 목회란 무엇일까? 교인수 증가시키는 것이 목회인가? 주님 말씀대로 자신이 천국도 못가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든다. 나 자신부터 비롯하여 목사들은 정말 깨어서 돌아보아야 한다. 끼리끼리 정중하고 예의바른 것에 물들어 전체 상황을 못 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4. 기억나는 성도들

나는 지성적인 사람들과도 대화가 원만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력이 낮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내가 중국에서 가정교회를 이끌어 나갈 때 대다수 성도는 대학생, 대학원생, 의사, 약사, 교수 이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식당 종업원 부부도 있었다. 네 명의 제자 지도자 가운데, 그 중에 한 명만 명문대 출신이고 두 명은 전문대, 마지막 한 명은 중학교 졸업이다. 중학교 졸업생이 의사, 명문대 출신 기독교인들에게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친다. 나는 그 성도를 8년간 양육했다. 그의 중국어 성경은 신기할 정도로 작은 편임에도 불구, 내가 가르치는 내용과 그가 깨달은 것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그는 밥 먹는 것과 꼭 필요한 일 이외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공부했다. 가정교회가 사람 키워달라고 그 친구를 내게 보냈었고, 나는 8년 동안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봤다. 세상 수준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의 마음이 있고 그것을 꾸준히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겸손과 검소함으로 자신을 채우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 처음 그 제자는 공부를 하면서 7개월을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준비했다. 명문대 출신의 제자는 지금 중국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다. 또 한 명의 제자는 선양에서 활동하고 있다.

내가 교회와의 약속 때문에 방배동 교회행을 거절하자, 기무부대장 이 집사님 내외가 서울로 와서 나를 백화점에 데리고 갔다. 중국 선양 지역은 추운 곳이지 않느냐면서 추위를 막는 옷과 여러 가지 것들을 우리 부부에게 선물했다. 그 때 사준 옷을 나는 18년 간 중국에서 입었다. 그런데 그 옷이 얼마나 좋은지 10년이 지난 후에서야 중국 선양 백화점에서 보고 알게됐다. 교회 성도들이 그 옷을 백화점에서 본 후에야 내 옷이 좋은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20년을 입어도 거의 그대로인 그 옷을, 나는 다른 모든 가재도구들과 함께 중국을 떠나올 때, 성도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책들과 필수품 등만을 챙겨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기무부대장 내외가 나를 좋게 본 이유 중의 하나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번은 기무부대장 부인인 여전도회장이 “목사님은 어디 다니실 때에 정직하게 다니시네요.” 그랬다. 당시 비행단을 출입할 때, 정문 초소에서 어떤 일 때문에 출입하는지를 기입하고 나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대충 적거나 거짓말로 기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군대를 다녀온 한국인 남자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부대 내의 전화는 모두 감청(監聽)된다. 그리고 부대 출입의 이유도 다 밝힌다. 이것을 조금만 앞뒤로 대조해보면 그의 말과 기록이 거짓말을 하는 지 사실을 말하는 지를 대충 알 수 있다. 기무부대장 부인이 내게 그 말을 한 것은 나의 말과 행동 역시 다 기무부대에 의해 파악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무부대가 무섭기는 무서운 곳이다. 주님도 우리의 말과 행동을 다 기억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욱 깨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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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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