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락시떠 목사
부흥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돌이킴 없는 즉, 회개 없는 부흥은 없다. 부흥의 현장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 만남은 주님과 무관한 삶에서 돌아선 한 가족에게로 우리 일행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셨다.
오직 ‘나’를 추구하던 불신의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 그리고 그와 함께 교회와 섬기는 하늘 가족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현재 홀리패밀리교회 담임 락시떠 목사와 윌마 사모, 그리고 딸 제니를 만났다.<편집자>
지난 6월 하순 저녁 무렵. 스리랑카 제2의 도시 캔디 도심 기차역 근처에서 락시떠 목사 가족을 만났다. 편안한 대화를 위해 교회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덕분에 이곳 서민들의 친숙한 교통수단인 ‘뜨리휠’을 탈 수 있었다. ‘바퀴 세 개’라는 뜻의 ‘뜨리휠’은 아시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오토바이에 의자를 붙여 최대 세 명 정도 탈 수 있으며, 택시처럼 이용된다. 이 조그만 차량은 이미 해가 떨어져 가로등 없는 어둡고 좁은 골목을 종횡무진 달렸다. 그리곤 한 막다른 골목 안에 우리를 내려놓고 쏜 살 같이 사라져갔다. 철문을 열고 교회 건물 안에 들어서니 아담한 예배당이다.
세 가족과 마주보며 나란히 앉았다. 이들을 만나기 전, 이미 락시떠 목사가 올해 초 ‘집단 테러’를 경험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이들로부터 어떤 고백을 듣게 될지 자못 기대가 컸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어떻게 주님을 만나게 되셨는지요?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만남은 ‘나와 주님은 어떤 관계인지’를 확인하는 데부터 출발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 되고 연합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이기 때문이다. 질문에 윌마 사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윌마 “주님을 몰랐을 때 저는 급한 성격이어서 사람들과 논쟁이나 다툼이 끊이지 않았어요. 가족들과 충돌할 때도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저의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는 진단결과를 받게 됐어요. 척추가 골절되고 무릎 혈관이 굳어버리는 상황이었죠. 한때 은행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미용실에서 일을 했어요. 참 힘겨운 삶이었죠.”
자살 충동, 폭음으로 조각난 가족
– 그렇게 마음이 가난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셨군요.
윌마 “저는 세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할 만큼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어요. 남편과 자주 다투면서 이혼을 생각했어요. 그러던 6년 전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남편과 싸웠죠. 그때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신 한 목사님께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붙잡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 목사님의 권유로 영문도 모르고 기도모임에 참석했어요. 그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그 모임에서 제가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죠.”
절망 없이는 은혜를 누릴 수 없다. 나의 열심으로 달음박질하던 한 인생이 나의 능력으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 삶의 절망을 느낄 때, 주님이 그를 찾아오신 것이다.
– 락시떠 목사님은 어떤 과정을 거쳐 주님을 만나셨나요?
락시떠 “저는 9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전통적인 불교 가정이었지요. 그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한채 성장해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한 기업체 전문 분야의 매니저로 일했어요.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세속적인 삶을 살았지요.
또 아내와 많이 다퉜어요. 저의 무절제한 음주 습관과 나태한 삶 때문이었지요. 한때 재정적으로도 넉넉했고 자동차도 있었고 부족함이 없었어요. 하지만 제 삶에서 내적 평안은 없었어요. 항상 마음이 공허했어요. 그렇게 삶을 허비한 이후, 2008년에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유일한 구원자로 영접할 수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그날 저는 제가 무엇이 필요한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내적 평안이었어요. 물론 세상 관점에서 볼 때, 저는 눈에 보이는 돈이나 자동차, 직업 등 모든 것을 잃었어요. 그러나 빌립보서 3장 7절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는 말씀처럼 세속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가로 누린 것이었어요.
하지만 주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서 그 모든 것의 주인 되신 주님이 저의 참 주인이 되어주셨지요. 결론적으로 저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된 것이죠. 그리고 주님은 제게 모든 것을 주셨어요. 정말로 저는 부족한 것이 없는 자예요.” 윌마 사모는 이같은 락시떠 목사의 고백에 자신의 고백을 덧붙였다.
윌마 “이제 저의 가정에서 주님은 우리의 전부예요. 예수님이 저의 모든 것입니다. 저는 저의 아빠 되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숨 쉬는 모든 순간에라도 예수님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저는 그분을 찬양하고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제 삶의 전부요, 호흡이고 그분을 위해 살고 그분을 위해 죽습니다.”
목사님의 권유로 기도모임 참석
– 목사님과 사모님의 삶을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 아래서 성장한 제니 자매는 어떻게 주님을 만나셨나요?
제니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늘 우울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만나면서도 사람들을 싫어했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엄마 아빠의 불화 때문이었지만, 제게도 문제가 많았지요.
그래서 한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어요. 그러다 엄마 아빠가 주님을 만나고 관계가 회복되고 난 이후, 저도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구주로 영접하게 됐어요. 그때 제 나이 16살이었어요.”
– 온 가족이 주님을 만나고 가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네요.
제니 “우리 가족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정신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 가족예배와 기도회를 하고 함께 모든 것을 나누고 있어요. 한 마디로 샬롬이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삶 안에 임하게 된 것이죠.
샬롬, 즉 마음의 평강은 아무도 그냥 줄 수 없어요. 수퍼마켓에 가면 물건들을 마음껏 살 수 있지만 심령의 평강은 살 수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 가족에게 그 평안을 주셨어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우리 일행에게 락시떠 목사를 소개한 한 선교사님이 락시떠 목사를 수퍼마켓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우연히 서로 마주치면서 ‘예수 믿느냐?’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 올해 초에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요.
락시떠 “저희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분들이 주일 저녁 예배를 끝난 시간에 찾아왔습니다. 꽤 많은 숫자였어요. 그들은 제
딸을 밖으로 내 보내고 저희 부부 두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요. 우리는 그 순간 모든 것을 포기했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어요.
저는 당신들이 원한다면 내가 복음을 전하겠다고 소리쳤어요. 그들이 우리에게 폭행을 가했지만, 주님이 기적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해주셨어요. 그러나 저희는 계속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했어요. 마음에 담대함이 생기더군요.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축복이며, 죽는 것도 축복이라는 사실이 믿어지더군요. 우리가 죽으면 바로 천국에 갈테니까요.”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해
– 그 이후에 다른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락시떠 “그 다음 주일에도 불교계 사람들이 찾아와 예배를 중지시키려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외부 사람들을 한 사람도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이곳을 하나님의 생명싸개 안에 보호해주셨어요. 몇 가정이 그 사건으로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예배를 멈춘 날은 없어요.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을 담대하게 해 주님앞에 나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윌마 “그들에게 둘러싸여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는 사실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시간이 몇 달 흘러간 지금도 괞찮아요. 간혹 나쁜 감정이나 생각들이 생기기도 해요.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밖에 선택할 것이 없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했고, 그것이 우리할 일인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며 락시떠 목사 가족은 한층 주님과 연합한 삶을 실감하며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말씀을 새삼 떠올리게 하셨다. 그제야 왜 교회 이름을 홀리패밀리처치라고 지었는지 뒤늦게 깨달음이 왔다. 언제나 불화와 반목으로 치닫던 가정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가족으로 회복되었음을 날마다 실감하는듯 했다.
주님 안에서 홀리패밀리로 회복
락시떠 “우리가 박해와 핍박을 받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하늘과 땅의 주님을 위해서 받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은 핍박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에요. 우리는 그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어디든지, 전도하러 다니고 있어요.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믿음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제니 자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또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듣고 싶네요.
제니 “하나님은 정말 풍성한 삶을 주세요. 저의 삶에 주님이 은혜를 주셔서 어떤 교육이나 교사의 도움을 받지 않았지만, 기타와 올갠을 연주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어요. 제가 받은 그 은혜를 마음껏 나누고 싶어요. 저는 주님을 알기 전에는 법률가를 꿈꿨어요.
그러나 이제 청년 지도자로 주님을 섬기고 싶어요. 청년 지도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저에게 다음세대를 섬기는 목사로 부르셨다고 믿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락시떠 목사 가족과 함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스리랑카의 부흥과 그리고 마침내 온 열방에 모든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 주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드리는 날이 오기까지 우리 모두가 믿음의 길을 각자 선 곳에서 순종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은혜를 구했다. [GNPNEWS]
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