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리 레빈의 <워커 에반스의 이후>
미국의 사진작가 워커 에반스는 대공황 시절, 미국 곳곳에 나타난 고통을 촬영했다. 보이는 두 사진 중 한 작품이 바로 그것인데, 앨라배마 주(州)에 살고 있던 한 소작농의 아내 엘리 메이 부루흐를 촬영한 작품이다. 이후 이 작품은 고통과 궁핍, 비참함의 대표적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자, 에반스의 작품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듯 했다.
그런데 40년이 흐른 뒤인 1980년대, 불현듯 이 작품이 대중에게 다시 나타났다. 당시 30대 초반의 풋내기 사진 작가였던 세리 레빈이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워커 에반스의 이후(After Walker Evans)》에서 에반스의 작품을 그대로 재촬영한 사진들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재촬영 방식은 원본인 에반스의 작품과 레빈의 작품 사이의 구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누구누구의 작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러한 구분조차 무의미해진 상태, 곧 ‘원본으로서의 권위가 무색’해진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이 숨어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에반스의 작품을 원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그가 엘리 메이 부루흐라는 이름의 여인을 직접 만났다는 것, 즉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제의 경험을 기록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겉으로는 너무 똑같아 구분할 수 없을 지라도 레빈의 작품은 사실 엘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차이는 곧 엘리를 만난 에반스와 그렇지 않은 레빈의 차이이기도 했다.
순간 한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주님을 직접 만났는가? 그리고 그 분의 십자가가 내 마음 속에 기록되어 있는가? 이 물음에 힘차게 ‘아멘’이라고 대답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났다. 아니, ‘아멘’이라 했기 때문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주님과 십자가를 ‘진짜’ 만난 사람은 그 감격적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겉으로는 구분이 불가해 보여도, 진짜의 권위도 사라질 정도로 아주 정교한 가짜가 나타났다 해도, 마음에 생생히 새겨진 십자가의 경험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원본이다. [GNPNEWS]
글. 이상윤(미술평론가)
필자는 현대미술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미술사 속에서도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서울대, 국민대, 한국 미술계를 사역지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