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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군부대에서 교회와 목사는 어떤 존재인가

사진: Trey Musk on unsplash

공군 목사의 이야기(4)

1. 아파트 관사

춘천 방공포 부대에서 군산 비행단으로 전입되었다. 사실은 비행단이 아니라 그 아래 전대 규모이다. 그러나 미군 비행단이 함께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비행단으로 여긴다. 첫째 좋았던 것은 관사가 아파트라는 것이다. 의상봉은 일반 평집이었다. 그래도 나름 잘 지었다. 그런데 춘천의 방공포 부대 관사도 평집이었는데 벽이 모래를 찍어서 만든 것이다. 겨울에 집 밖은 얼어 죽고 집안은 얼어 죽지는 않는다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화장실은 옆집과 함께 썼는데 ‘푸세식’이었다. 겨울에 똥 탑이 그냥 올라오는… 그러니까 말이 관사이지 그냥 시골집이었다. 겨울에는 방안에서도 입김이 나오고, 자려고 누우면 위풍 때문에 골이 너무 차가워서 잠을 잘 수 없는.

2. 미 공군 환경

이런 환경에서 살다가 군산 비행단에 왔는데 미군 장교 관사는 정말 푸른 초원 위, 나무 아래 집을 지어놓았다. 지프(Jeep)라는 SUV 차량이 관사마다 서 있었다. 산간벽지로만 돌던 촌놈 군목이 처음 비행단에 왔는데, 그것도 미군이 함께 있는 곳을 오니까 모든 것이 휘황찬란했다. 한 마디로 ‘아 이렇게도 군(軍) 생활을 하는구나.’ 였다.

복지부터 이야기하자. 우선 먹는 것부터 차원이 다르다. 스테이크 식당이 있는데 뉴욕 스테이크, T-bone스테이크가 기본이다. 피자는 엄청 큰데 1만 5백 원 정도면 살 수 있다. 한국 돈도 다 받는다. 닭고기 튀긴 것, 햄버거 등등 다 있다.

운동시설은 실내에서 농구, 배구, 스쿼시, 탁구, 등등 다 할 수 있고 눈 보호를 위해 고글(goggle)도 그냥 빌려준다. 돈을 내고 하는 것은 볼링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볼링장에는 돼지갈비 구운 것, 닭고기 등 여러 음식을 먹으면서 즐길 수 있다. 닭 가슴살 부분이 흰색이니 white라고 불렀고 나머지 부분은 black이라고 불렀다. 음식 주문할 때에 어떤 부위를 원하는지는 이 두 단어로 결정했다. 또 ‘숙소로 가져 갈거냐?’를 ‘to go?’라고 간단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잘못 알아 들어서 어리벙벙했다. 야외에는 야구장이 이었다.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에는 야구 경기가 벌어졌고 밤중에는 환하게 불을 켜고 운동을 했다.

이런 비유는 조금 미안하지만, 군인에게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미군 시설을 한국 군인도 다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도 그때를 생각하니 참 기분이 좋고 행복한 느낌이 떠오른다. 스테이크, 피자, 닭고기, 돼지갈비, 햄버거 등이 주변에 빙빙 떠오른다. 게다가 이것이 추수감사절이 되면 음식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공짜로 한 번 나눠주었다. 미국 명절에 공짜로 얻어먹는 것도 맛있다.

한 가지를 깜박 잊고 말하지 않고 지나칠뻔했다. 모든 비행단에는 골프장이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다. 아주 저렴하게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당시에 골프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고 생각해, 아예 근처를 가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3. 탑 건(Top Gun)의 추억

공군에 관한 영화 중에서 배우 톰 크루즈가 연기한 ‘탑 건(Top Gun)’이 있다. 탑 건은 최고의 조종사에게 주는 명예의 이름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공군이 아니라 해군 소속이다. 사실 강대국은 언제나 해군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에 영향을 끼치려면 해군이 움직인다. 그러니까 미국도 해군이 중요하다. 그 해군 소속으로 조종사가 있는 것이다. 실제 공군은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개념이다. 해군 소속의 조종사들이 나쁘게 말하면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도 있고 불의한 세력에 대해 응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조정한 전투기는 F-14 일명 ‘톰 캣’이라고 불리는 기종이다. 톰 크루즈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활주로 주변을 달릴 때에 전투기가 굉음과 함께 파란 불꽃을 뿜으며 하늘로 오르는 장면이 있다. 멋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군산 비행단에서는 그 장면이 종종 연출된다. 일반적으로는 전투기는 내가 볼 때에 약 15-30 정도의 각도로 이륙한다. 그런데 어느 날 비가 약간씩 오면서 어두워져갈 때에 한국군 비행단에 가기 위해서 활주로에서 이만큼 떨어져 운전하고 있을 때였다. 미군 F-16 전투기가 이륙을 하는데 보통 이륙이 아니고 거의 수직으로 이륙을 했다.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비가 올 때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도 위험하다. 게다가 거의 수직으로 이륙한다는 것은 그 상황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여하튼 그 장면이 정말 장관있었다. 날은 어두워져가고 비는 오는데 전투기의 무시무시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굉음과 함께 파란 불꽃을 뿜으며 수직으로 하늘로 차고 오르는 F-16 전투기는 정말 환상이었다. 이 장면이 내가 공군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4. 전쟁 같은 집사 숫자 줄이기

군산 교회는 연말이 되면서 성도들과 긴장 관계로 들어갔다. 이유는 장교와 하사관 가정이 약 20가정 정도 되는데 거의 다 집사였다. 문제는 집사가 집사다우면 괜찮은데 나의 보수적 신앙으로 볼 때는 술과 담배를 다 하면서 교회의 집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신자는 술과 담배를 하면서도 집사 직분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교회 행정적인 면에서도 ‘모두가 다 집사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집사의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미리 선언을 했다. 연말이 되어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집사의 숫자를 절반으로 줄였다. 그래서 집사였다가 집사로 임명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소령 집사도 있었다. 내가 당시 중위 목사였으니까 이런 행동이 몰고 올 파장이 어떤 것인지 한 번 짐작해보시기 바란다. 발표한 날부터 교회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목사와 성도의 관계가 아니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무협지에서 말하는 살기(殺氣)가 도처에 횡행했다.

내가 이렇게 겁을 상실한 행동을 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은 군대 교회라는 계급 사회니까 그렇지 일반 교회 같으면 목사가 정치, 사회적으로 암살당했을 것이다. 즉 일반 교회라면 아마 목사가 피눈물을 흘리며 쫓겨났을 것이다. 약간 과장해서 일반적인 상황을 예상해 본 것이다.

나는 그 후 계속 생각을 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은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나는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문제는 나의 전임목사들이 신자들과 관계만 좋게 하자고 집사 자격이 될 만한 사람도 아닌데 집사로 임명한 것들이 쌓여서 문제인 것이다. 나도 그냥 관계 좋게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왜 건드려서 이렇게 험악한 관계를 만들어야 했는지 정말 괜한 짓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5. 지휘관에 대한 기억

그러다가 정치적으로 한 번 모험을 할 만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부대의 지휘관인 전대장이 새로 바뀐 것이다. 내가 이 부대에서 두 분의 지휘관을 군종참모로서 모셨는데, 처음 지휘관도 역시 기독교인이셨다. 김씨 성으로 진짜 총명한데 첫 해에 장군이 안 되었다. 내가 ‘위로 예배’를 드리러 가서 ‘나의 주관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집사님처럼 총명한 분이 장군이 안 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말했다.

“목사님, 장군은 그야말로 General해야 합니다.”

General은 ‘장군’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인’ 이란 뜻도 있다. 총명하고 날카로운 집사님이 스스로를 평하기를 그 총명과 날카로움 만으로는 장군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후에 그 집사님은 장군이 되어 기무부대 부사령관을 하셨다.

후임으로 오신 분도 기독교인이었다. 나는 이 분이 오셔서 처음 주일에 예배드릴 때에 교인들에게 소개를 위하여 일어나시라고 했다. 집사님이 일어서셨다. 나는 앉으라고 했다. 집사님이 앉으셨다. 나는 두 번째 일어나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교회 분위기가 완전히 말 한마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혹은 정지된 것 같이 변했다. 이제 터질 그 어떤 두려움이 예배당에 꽉 찼다. 나는 두 번째 일어서시라고 한 후에 속으로 후회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일은 저질러졌다. 지휘관을 다시 일어나라고 했고, 내친 김에 계속 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앉으라고 말씀드렸다. 예배당의 무거운 중력(重力)이 나의 소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세 번째 ‘일어서세요.’를 말했다. 그리고 다시 ‘앉으세요.’를 했다. 중위 계급의 목사가 대령 지휘관에게 세 번 ‘일어나! 앉아!’를 명령한 것이다. 집사님은 나의 말을 따라 다 해주셨다. 그런 상황에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교회에서는 목사인 제가 지휘를 하기 때문에 부대 전체의 지휘관이시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저의 말에 따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 후 군산 교인들은 나를 센 사람으로 보고 집사의 숫자를 줄인 것에 대한 감정이 잦아들었다. 지휘관에게 저 정도 하는 목사인데 자신들의 집사 직분을 자르는 것은 얼마든지 할 목사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집사님에 대해 믿는 것이 있었다. 집사님의 성은 김씨이다. 김 집사님은 부대를 인계받기 위해서 처음 비행단에 오셨을 때에 교회부터 와서 기도를 하고 가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새벽 기도를 나왔다. 그 후 본부로 발령을 받아 떠날 때까지 딱 하루만 새벽 기도를 빠졌다. 무슨 일이 있으셨는가? 하고 여쭈어보았을 때에 집사님이 말했다.

“저도 인간인 것을 보여 드리려고요.”

나는 이미 그런 분임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신자들에게 나름의 일을 저지런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군산 교인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아마 이 글을 보면 ‘우리가 속았다’ 하실지도 모르겠다.

6. 아기의 죽음과 교회

그러나 군산 교인들의 감정이 완전히 다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던중 나와 군산 교인들 사이에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어느 날 관사에서 한 어린아이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됐다.

사건은 이렇다. 아기들이 조금 크면 제 힘으로 뒤집을 줄 알게 된다. 그런데 아기가 몸을 뒤집었을 때에 아기 엄마는 감기에 걸렸다. 아기에게 감기를 전염시키지 않으려고 떨어져 있으면서 감기약을 먹었다. 지금은 졸리지 않은 감기약이 있는 줄 아는데 당시에는 아마 거의 모든 감기약이 먹으면 잠이 오는 것이었다. 아기 엄마는 그렇게 아기와 떨어져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아기에게 깔아준 담요가 푹신한게 문제였다. 아기는 뒤집을 줄은 알았지만 다시 몸을 바로 뒤집을 줄 몰랐다. 그러다 고개 힘이 점차 빠져서 그만 푹신한 담요에 코를 박게 되고 숨을 쉬지 못하여 결국 죽고 말았다.

사고가 어떻게 그렇게 기구하게 일어나는지! 죽은 아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두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그 죽은 아기의 시신을 교회로 운반해 와서 아기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집사님들과 함께 산으로 가져가서 묻었다. 일반적으로 아기가 그렇게 죽었을 때에 아기 엄마에게 묻은 장소를 모르게 한다. 만일 알게 되면 그 장소에 가서 하염없이 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기를 묻은 장소는 나와 집사님들만 알고 있기로 했다. 이 소문이 부대 관사에 좍 퍼졌다. 그 사건을 계기로 교회가 관사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안 믿는 사람에게도 내 인기가 높아졌다. 내가 부대의 어느 부서를 가도 군인가족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7. 초코파이와 영혼 구원

군산 비행단에서 특징이 있는 군 선교는 단기 사병들에 대한 것이었다. 병사들이 보통 군산 주변에서 살던 친구들이었다. 문제는 건강이 안 좋아서 단기사병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행동이 불량한 경우라든지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의 젊은이들도 단기사병이 되었다. 그들은 비행단에서 3주 21일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다. 군산 비행단에는 천주교의 신부나 불교의 법사가 없어서, 그들과 만나는 일을 내가 다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훈련기간 동안 주일 예배, 수요 예배에 다 부를 수 있었고 다른 평일에는 인격지도 교육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들과 18일을 만났다.

목표는 단 한 명의 영혼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거의 다 이루어졌다. 18일을 만나면서 빠른 시간에 친숙해졌다. 그래서 거의 마지막 시기에는 초코파이를 경매에 붙이는 것을 우스개 농담처럼 하며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받았다. 즉 그들의 영혼과 초코파이를 바꾸는 것이었다. 내가 초코파이 한 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영혼을 산다는 설정이었다. 아이들도 웃으면서 영혼을 나에게 팔았다. 그 후에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그들과 기독교 문화가 친숙하게 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했다.

군산의 유명한 횟집 근처에서 벌어진 추억도 있다. 당시 이 횟집의 하루 매상이 1억 원이라고 했다. 전주와 군산 간 도로에는 봄에 벚꽃이 핀다. 이 길을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벚꽃 속에 날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하루는 이 횟집 주변을 지나는데 덩치 큰 친구들이 고개를 숙이며 ‘목사님’하며 아는 체 했다. 약간 겁이 나면서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 친구들이 말하기를 군산 비행단에서 나로부터 설교와 강의를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했다. 순간 나는 조폭 두목이 된 느낌을 받았다. ‘기독교 조폭 두목’이 이런 건가?

8. 남겨진 생각 한 가지

내가 군산 비행단에 있으면서 한 가지 놀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미군 측에서 볼 때에 군산 비행단이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에 소속된 땅으로 주소를 사용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미국 본토에서 있는 사람들이 군산에 있는 군인에게 편지나 물건을 보낼 때에 ‘Gunsan in South Korea’가 아니라 ‘Gunsan in California’가 되는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인데 동맹 관계인 두 나라 국민들이 볼 때에 상식에 맞는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군산이 캘리포니아의 영토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은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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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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