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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성탄절에 생각하는 구주의 의미

사진: Chad adden on Unsplash

(눅 2:8, 개역)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눅 2:9, 개역)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눅 2:10, 개역)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1, 개역)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2, 개역)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 2:13, 개역)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눅 2:14, 개역)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8, NKJV) Now there were in the same country shepherds living out in the fields,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눅 2:9, NKJV) And behold, an angel of the Lord stood before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around them, and they were greatly afraid.(눅 2:10, NKJV) Then the angel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for behold, I bring you good tidings of great joy which will be to all people.
(눅 2:11, NKJV) “For there is born to you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r, who is Christ the Lord.(눅 2:12, NKJV) “And this will be the sign to you: You will find a Babe wrapped in swaddling cloths, lying in a manger.”(눅 2:13, NKJV) And suddenly there was with the angel a multitude of the heavenly host praising God and saying:(눅 2:14, NKJV)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goodwill toward men!”
8.在伯利恒之野地里有牧羊人,夜间按着更次看守羊群。9.有主的使者站在他们旁边,主的荣光四面照着他们。牧羊的人就甚惧怕。10.那天使对他们说,不要惧怕,我报给你们大喜的信息,是关乎万民的。11.因今天在大卫的城里,为你们生了救主,就是主基督。12.你们要看见一个婴孩,包着布,卧在马槽里,那就是记号了。13.忽然有一大队天兵,同那天使赞美神说,14.在至高之处荣耀归与神,在地上平安归与他所喜悦的人。(有古卷作喜悦归与人)。

1. 창조된 인간의 실상

인간의 두 방향

인간의 미래는 두 방향으로 열려있다. 하나는 과학문명과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인하여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내가 볼 때에 인류는 대체로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또 하나의 방향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과학문명이 가져다 준 공포이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핵폭탄 하나로 약 4억 명의 인간을 죽일 수 있다. 이런 폭탄 20개만 터져도 인류는 전멸할 수 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을 보고 인류를 물로 쓸어버리셨다. 오직 노아의 가족만 살아남아 인류를 다시 번성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않아도 인류 스스로 파멸로 갈 도구를 갖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어쩌면 인간이 만든 이 핵분열과 융합을 이용한 폭탄의 사용을 허용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두 부류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어떠한 경우에도 두 부류로 나뉜다. 정치적 기술을 사용하고 여러 상황으로 인하여 연합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여하튼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뉜다. 정치에서 좌파와 우파, 경제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 성공과 실패자, 옳고 그름, 노력과 게으름, 선을 추구함과 이익과 쾌락을 위하여 악을 추구함 등등. 성경은 이것을 양과 염소의 무리로 표현한다. 이와 같이 인간이 두 부류가 되는 것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죄악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여기서 인간은 선을 따름과 악을 따르는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과 악의 기준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종적인 기준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를 따라 세상을 구성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리고 선과 악의 개념이 섞여있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따라 양심과 정의를 규정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2. 양심과 정의의 사회

헬라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올림포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가 인간을 만들 때에 양심과 정의를 주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양심과 정의를 따라 말하고 행동하면 인간 사회는 선하고 올바를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정치에 가담했고 직접민주주의라고 하는 놀라운 사회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 다수가 결정을 내린 것은 당대 최고의 현자인 소크라테스에게 독약을 내리는 것이었다. 다수의 횡포가 지혜를 죽였던 것이다. 인간은 양심과 정의를 따르는 면도 있겠으나 이익과 쾌락을 따라 판단과 행동이 흐려지고 결국 죄악의 세상을 만드는 성향이 있다. 

기독교 사회

인간이 만드는 세상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기독교인이 주동이 된 사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중세의 종교재판은 권력에 방해되는 자들을 처단하고 사회의 위기를 넘겨줄 희생양들을 찾아 죽이는 일들을 하기도 했다. 자유로움 안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어떤 경우라도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 중세 천주교의 행태에서 그와 같은 위험이 종종 노출되었다.

3. 인간의 희망

에덴동산, 성, 도시

하나님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거주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인간은 에덴동산 밖에서 살게 되었다. 인간은 에덴동산 밖에서 성(castle)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 법률의 보호아래 사면이 막힌 성이 아니라 도시(city)에 살고 있다. 그 도시 안에는 성공과 실패,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랑과 증오, 정의와 부정, 선함과 죄악이 함께 있다. 인간은 에덴동산의 밖에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그 뜻 안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에는 어떤 희망도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희망을 품고 있다.

판도라 상자의 희망

희망에 관해 말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헬라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절망의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임시방편으로 희망이 주어져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에 거기에서 인간을 궤멸시킬 모든 것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것을 견딜 희망이라는 것은 정말 미래의 세계를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마약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희망은 마약의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기독교의 희망

기독교에서 말하는 희망이 하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는 여자의 후손이 유혹자인 뱀의 머리를 파괴할 희망자이다. 여자의 후손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말해준다. 그것은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죄악에 빠진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죄악을 벗어날 수 없다. 설령 그렇게 보이는 고상한 품덕의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죄악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해탈을 말한다. 해탈은 세상의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이다. 이것이 죄악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과 연관을 지을 수 있는 지는 더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해탈이 죄악을 다 끊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죄악을 끊은 것이 구원은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은 구원이 아니다.

4. 여자의 후손과 예수 그리스도

여자의 후손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그는 유혹자인 사탄을 멸하고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된다. 즉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대하여 자신의 자유의지로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한다. [복음기도신문]

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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