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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갈릴레오와 원숭이 재판(2)

사진: pixabay

3장 과학의 대세

미국에서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린 스코프스 재판은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청교도의 전통에 서있던 나라여서 개신교 문화가 우세한 상황에서도 결국은 공교육인 무신론과 진화론과 물질주의로 넘어가는 형국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이미 과학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한 예로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托马斯赫胥黎)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 查尔斯·达尔文)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物种起源)에 관한 댓글에서 소멸된 신학자들은 헤라클레스(Hercules, 大力士)에게 목 눌려 죽은 뱀처럼 과학의 요람 근처에 누워있다고 할 정도였다. Thomas Dixon,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New York, 2008), p. 2.

1절 정치적인 국면에서 과학과 종교

1항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托马斯.潘恩)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벤자민 러쉬(Benjzamin Rush)와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托马斯·杰斐逊)과 함께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된다. 그는 1776년에 일반상식(Common Sense)이라는 정치적 팸플릿을 써서 실제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는 촉발점이 되었다. 그의 반(反)군주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철학이 미국의 독립선언서(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를 형성하게 되었다. 페인은 또한 과학과 기술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영국으로 가서 뉴턴과 천문학 강좌에 참석하기도 했고 또한 하나로 구성된 철교의 디자인을 위해 많은 시간을 쓰기도 했다. 그는 후에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혁명을 거치면서 그의 관심은 군주제에서 기독교로 전환했다. 그러나 1794년에 쓴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에서 기독교는 수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과학과 과학계의 교수들을 반대해왔다고 불평했다. 그는 과학적인 사상가로서 기독교를 반대했다. 그는 성경을 평가 절하했다. 특히 구약을 그렇게 했다. 사제권은 영국에서 교회와 정치체제 사이에 간음의 관계를 형성했다고 보았다. 그가 기독교에 바라는 것은 자연과 이성에 따르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도덕의 중요성 그리고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중시했고 성경과 사제와 교회체제의 권위는 없앴다. 그는 이신교(Deism)를 추종했다. 그는 성경을 읽거나 교회에 가는 것보다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과학의 전체 범주인 우주를 품는 천문학이 하나님의 지혜와 힘과 일에 대한 연구로서 참된 신학이라고 했다. Thomas Dixon,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New York, 2008), pp. 11-12.

2항 문학에서

베르톨트 브렉트(Bertolt Brecht, 贝托尔特.布莱希特)는 「갈릴레오의 삶」(Life of Galileo)이란 희곡을 썼다. 그는 독일 공산주의자이다. 그는 파시즘을 반대하여 덴마크로 망명하여 살았다. 그는 갈릴레오에게 있어서 천주교는 파시즘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제롬 로렌스(Jerome Lawrence, 杰罗姆·劳伦斯)와 로버트 리(Robert Lee, 罗伯特·李)의 희곡 「바람의 유산」(Inherit the Wind)은 1925년 미국에서 일어난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을 다룬다. 이것은 1955년에 처음 상연되었고 1960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내용은 테네시 학교의 교사인 존 스코프스(John Scopes)가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치는 문제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는 반공주의인 맥카시(McCarthy, 麦卡锡) 시대였다. 기독교와 미국 정부는 함께 했고 물질주의와 진화론 등은 공산주의의 기본 철학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존 스코프스의 승리는 영웅적인 것이었다. 브렉트의 ‘갈릴레오’와 로렌스와 리의 ‘바람의 유산’은 드라마에서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의 충돌이 지적인 자유와 정치적인 힘과 인간의 도덕에서의 의문이 됨을 보여주었다. Thomas Dixon,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New York, 2008), p. 13.

4장 과학과 종교의 어원

1절 과학의 어원

과학은 science라고 한다. 이 단어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scientia 라고 해서 앞의 단어 sci는 ‘자르다’, ‘파고 들다’, ‘분리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양심을 뜻하는 conscience와 의식 혹은 인식을 뜻하는 consciousness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 양심, 의식, 자각 등의 단어들은 사람이 그 마음에 궁극을 파고 들어 마음과 생각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이 정도로 파고 들면 사람이 진리에 서야 하는데 자신의 양심과 의식을 팔고 죄악에 타협하면서 사람은 진리와 영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2절 종교의 어원

종교학자들은 religion이라는 말이 신과의 재결합을 의미하는 복합어라고 보는데 키케로(Cicero, 西塞罗BC 106~43년)에 의하면 religion이란 ‘다시(再)’라는 뜻을 가진 ‘re’와 ‘들어올린다’, ‘모은다(集)’, 헤아린다(量)라는 뜻을 가진 ‘leg’라는 어근이 복합된 말이라고 했다. 즉 ‘다시 들어 올린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이 신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믿음에 의해 다시 신의 세계로 들어 올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4세기 경의 유명한 신학자 락탄티우스(Lactantius, 拉克坦西)는 ‘re’는 ‘다시’라는 뜻이고 ‘leg’는 ‘맺는다(結)’라는 뜻이라고 보아 religion은 ‘다시 맺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religion은 라틴어 religio에서 온 말로 그 어원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하나는 ligare(잇다)라는 동사로부터 온 말로 신과 인간과의 결합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legare(정리하다)라는 동사로부터 온 말로 엄숙한 의례를 의미한다. 어원에 관해 어떠한 해석을 하던 간에 religio의 원시적 어의는 초자연적 사물에 대한 공포와 불안 등의 감정을 의미하였고 차츰 감정의 대상인 초자연적 사물이나 감정의 외적 표현으로서의 의례를 의미하다가 마침내 단계적이고 조직적인 신앙, 교의(敎義), 의례(儀禮)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위키백과사전, ‘종교의 어원’

5장 기독교 과학자들

과학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과학의 역사에서 보면 사실 기독교 과학자들의 발견이나 발명이 과학계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정도로 강렬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과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波义耳)은 그들의 과학을 하나님의 창조를 더욱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헌신한 것이었다. 갈릴레오도 과학과 종교는 상호 조화가운데 서로 존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과학과 종교사이의 건설적이고 협동적인 대화의 목표는 현대에서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에 의하여 승인되어왔다. 과학과 종교의 긴장은 많은 종교적인 과학자들에 의하여 대조되었다. 그들 가운데 신학적 물리학자인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约翰·查尔顿·波金霍尔), 게놈 프로젝의 지도자였던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S. Collins, 网络 弗朗西斯·柯林斯) 그리고 천문학자인 오웬 긴그리치(Owen Gingerich, 欧文·金格里奇) 등이 있다. Thomas Dixon,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New York, 2008), p. 3.

과학과 종교를 단지 갈등과 충돌과 긴장관계로만 보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도 어떤 면에서 비쳐지고 있다. 예를 들어 수학과 천문학은 중세시대 무슬림으로부터 그 자양분이 공급되었다. 즉 기도를 위해 메카의 방향과 정확한 시간이 필요했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종교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이슬람 학자들의 일은 바그다드에 있는 지혜의 집과 같은 곳에서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천문학과 점성술만큼 고대 헬라의 안과학과 의학을 개선하고 시험하고 보존했다. 그들의 표어는 누구나 천문학과 해부학을 모르는 것은 신의 지식 안에서 부족한 것이라고 했다. Thomas Dixon,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New York, 2008), pp. 15-16.

이런 말은 상당한 여유를 갖고 과학과 종교를 대하는 태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학문이 유럽으로 들어오고 무슬림에서 있다가 유럽으로 넘어온 유대교 공동체에서 실용의학과 과학이 강하게 연결되었다. 나중에 천주교에서 예수회에 의해 발전하다가 개신교에서 진화론적 생물학과 현대신학을 추종하는 일부 개신교 교단들과 연결되었다. 또 현대에서는 이타주의와 무제한적 사랑은 물리적 건강과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견해를 바티칸 연구소(Vatican Observatory)와 템플턴 재단(John Templeton Foundation in America)에서 말했다. 이런 표현은 과학과 종교의 학문적인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Thomas Dixon,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New York, 2008), p. 14.

7장 과학과 종교에서 더 생각할 문제들

과학과 종교에 관한 역사가인 존 허들리 부룩(John Hedley Brooke)은 과학과 종교에 관한 여러 가지 복잡한 관계에 관해 그리고 함께 존립하기 어려운 것에 관해 진지한 역사적 고찰을 했다. 예를 들어 과학과 종교는 지적으로 서로 모순되지 않게 양립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양립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 뇌 과학에서 사람이 죽은 후에 삶을 믿을 수 있는가? 성경에서 인간과 침팬지가 같은 조상에서 진화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물리학에 의해 구성된 엄격한 법 지배 체제의 세계에서 기적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또는 자유의지에서의 믿음과 거룩한 행동이 양자역학에 의해 기초한 것이며 지지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믿을 수 있는가? 지식의 근거와 권위는 무엇인가? 근본적 실재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교회와 정부의 적절한 관계는 무엇인가? 누가 교육을 담당하는가? 성경과 자연 중에서 어떤 것이 신뢰할만한 윤리의 안내자인가? 등등 여러 문제들이 있다. Thomas Dixon,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New York, 2008), p. 4.

6장 내가 생각해보는 과학과 종교

우리의 느낌에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해와 달과 별들이 움직인다. 그러나 실제로 지구는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지구의 자전속도는 시속 1,300km이다. 공전속도는 시속 107,000km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속 100km 정도로 달려도 5시간이 걸린다. 나의 경우에는 이것도 대단히 빠른 속도이고 위험을 느끼는 속도이다. 그런데 이 속도의 13배로 달리는 차를 운전한다면 나는 아마 심장이 떨려서 심장마비로 죽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매우 안정되게 여기고 있다.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은 속도를 이성적인 생각에 의하여 매일 매 순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병에 걸릴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일까? 토마스 딕슨(Thomas Dixon)은 인간의 이성이 속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Thomas Dixon,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New York, 2008), p. 7.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와 같은 속도를 느끼지 않고 사는 것이다.

이제 내가 앞서 소개했던 네 가지 지식의 바탕을 갖고 지구의 자전속도와 공전속도를 생각해보자. 감각(sense), 이성(reason), 증거(testimony), 기억(memory)을 다 동원해서 볼 때에 우리는 불안을 느껴야 한다.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속도가 조금이라도 더 빠르거나 느리면 인류 생존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안을 느끼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는 잘 되었어도 앞으로 미래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분명히 염려하고 불안해야 하는데 인류의 대다수는 그런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 안에 살게 하셨다. 은혜와 평안이 우리의 삶을 감싸고 있다. 과학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인식의 체계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학문이다. <끝>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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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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