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네 맘대로 살지 말라!

ⓒ unsplash

 지금은 초월의 세계는 무시되고 하찮게 여겨지는 시대이다. 그 대신에 “위대한 자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의 삶에서 진ㆍ선ㆍ미에 대한 탐구는 별 쓸모없는 것으로 이미 전락해버렸다 

자녀들은 커가면서 다양한 종류의 영화와 영상물들을 보게 된다. 나는 자녀들에게 그런 영상들 속에서 “거짓말들을 찾아보라”고 얘기하면서 그들을 양육하였다. 사실, 이것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내 딸이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인 ‘트롤’을 보았다.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와 안나 켄드릭(Anna Kendrick)이 목소리로 출연한 유명한 작품이었다. 내 딸은 그 만화를 보자마자 곧바로 내게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 “아빠, 행복이 정말 우리 안에 있는 거예요?” 사실 그것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내 딸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딸은 “아빠,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되묻기도 하였다.

내가 그때 바로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대답은 아이스크림을 사줄 만한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다.

사실 모든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트롤’도 하나의 설교와 같다. 그 안에는 문화적인 교리가 담겨있다. 영화의 광고 문구에서부터 그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행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라고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트롤 공주인 파피와 브랜치의 대화에서도 영화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제시된다.

파피: 고마워요

브랜치: 아니에요, 제가 고마워요.

파피: 왜 제게 고마워하세요?

브랜치: 왜냐하면 제게 행복해지는 법을 보여주셨으니까요.

파피: 정말요? 그럼, 이제 행복하세요? 

브랜치: 그런 것 같아요. 행복은 우리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저 누군가 우리 안에 있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주제곡은 팀버레이크의 “느끼는 것을 멈출 수 없어요”(Can’t Stop the Feeling)이다. 이 노래는 파티에서 춤추며 부를 수 있는 아주 신나는 노래이다. 유튜브에는 이 노래의 애니메이션 버전이 있는데, 거의 6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영상은 시작하자마자 파피 공주와 그리슬 왕의 대화를 보여주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슬 왕: 너는 내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파피: 당연하죠! 행복은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 모두의 내면에 행복이 있어요. 나는 행복을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죠.

“나는 행복을 내 안에서 느낄 수 있어요!”

잠시도 쉼을 얻을 수 없는 피곤한 삶

사실 이런 현상은 예전에 없던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이런 생각들은 비상식적인 생각으로 취급되었고, 심지어 위험하다고 여겨지기도 하였다. 예전에 우리 삶의 의미는 우리가 스스로 발견하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 안에, 무언가 역사적인 유산을 물려받으며, 상당히 많은 책임을 짊어진 채 태어났다.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의 목적을 스스로 발견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날 때부터 우리 삶의 목적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이름이 베이커(Baker)라면 화덕을 구우면 되고 스미스(Smith)라면 연장을 만지면 되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근대 이후의 사람들의 삶이나 그 이전의 사람들의 삶이나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갇혀서 살았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외치는 목소리들을 들어보시라.

“네 마음대로 살아라.”

“네 자신에게 솔직하라.”

“네 자신을 찾아라.”

“네 자신을 사랑하라.”

“네 자신을 표현하라.”

“네 자신을 믿어라.”

오늘 우리는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지금은 초월의 세계는 무시되고 하찮게 여겨지는 시대이다. 그 대신에 “위대한 자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의 삶에서 진‧선‧미에 대한 탐구는 별 쓸모없는 것으로 이미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사실 이런 삶은 잠시도 쉼을 얻을 수 없는 피곤한 삶이다. 사실, 나는 내 운명을 깨달을 지혜도, 그것을 이루어낼 능력도 없다. 또한 내 삶의 수많은 난관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친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들을 이겨낼 자신도 없다. 나는 나의 내면을 탐구하기에도, 또한 내 삶을 스스로 이끌고 가기에도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우리 시대가 외치는 이러한 주문들은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부분적으로 진리가 들어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 시대의 이런 주문과 정반대로 가르친다.

세상: “네 마음대로 살아라.”

성경: “나(예수님)를 따르라”(마 10:38).

세상: “네 자신을 사랑하라.”

성경: “네 하나님 여호와와 네 이웃을 사랑하라”(막 12:30-31).

세상: “네 자신을 발견하라.”

성경: “네 자신을 부인하라”(눅 9:23).

세상: “네 자신을 믿으라.”

성경: “나(예수님)를 믿으라”(요 6:35).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근대 이후의 모든 사상들을 거부하고 옛날 시대로 돌아가면 될까? 아니다! 사실 성경은 옛 것이든, 새 것이든, 모든 시대가 가지고 있는 악한 생각들을 다 무너뜨렸다.

권위를 인정하라!

우리는 개인주의의 반대말이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조나단 리먼(Jonathan Leeman)이 이에 대하여 통찰력 있는 말을 하였는데,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의 반대말은 권위라는 것이다. 그의 책 ‘Don’t fire your church members’은 이렇게 시작한다.

개인주의는 반공동체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일부 은둔자들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개념을 좋아한다. 사실 개인주의는 권위에 대한 반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모든 권위가 다 선한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권위는 악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주변에서 권위주의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기도 한다. 심지어 교회에도 권위주의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한 권위들을 만들어놓으셨다. 다윗은 그 건강한 권위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삼하 23:3-4).

사실 권위만큼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하고, 가치있게 하는 것도 없다.

만약 우리가 프로 스포츠팀에 입단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를 뽑아준 구단주를 만나면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자세한 것은 감독과 대화하세요!” 스포츠팀에서 감독은 조직을 관리하는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선수는 감독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선발한 구단주의 권위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왕인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약 나를 따르기 원한다면 나의 교회에 보고하세요. 당신의 삶을 교회에 헌신함으로써 나에게 헌신하세요. 교회는 내가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고,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와 권위를 제공한다.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경건한 동지들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사람은 경건한 목사이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엡 4:11-14).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며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적용시킬 목사와 장로들을 계획하셨다. 목사들은 성도들을 모든 이단들과 잘못된 교리, 부패한 복음으로부터 보호할 책임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다. 바울은 감독의 자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건강하고, 성경적이며, 복음 위에 바로선 교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교회를 찾았거든, 교회에 등록을 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복종하고, 성도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초대교회로부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자라가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진정한 행복

전통적인 사람들의 생각이 옳다면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의무대로 살아야 한다. 만약 현대인들의 생각이 옳다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우리는 우리 주인의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그분과 그분의 백성에게 속해 있다. 

그러므로 자기집착에 갇혀서 살아가는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라. 우리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있는 배역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위해 우리는 존재한다. 이것은 속박이 아니다. 이것은 자유다. 그분을 위한 삶은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사실, 나는 내 운명을 깨달을 지혜도, 그것을 이루어낼 능력도 없다. 또한 내 삶의 수많은 난관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친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들을 이겨낼 자신도 없다 

맷 스맷서스트 Matt Smethurst | 미국 TGC의 총괄 에디터, ’Before You Open Your Bible’의 저자.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Third Avenue Baptist Church의 장로.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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