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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칼럼] 거룩한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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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은 하나님 편에 자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있지 않으면 반드시 방자하게 행합니다. 허리에 칼을 차고 방자한 것을 쳐내는 것이 헌신이라고 했습니다. 헌신은 무엇을 쥐어짜서라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채우지 못하는 것을 쳐내고 하나님을 마음에 채우는 것이 헌신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는 것은 지금 우리의 일상이 아니라 주의 권능의 날에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는다는 것은 영원히 사는 ‘영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은 사람만 생명책에 기 록됩니다. 그리고 거룩한 옷을 입으면 즐거이 헌신합니다.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 앞에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리 부르짖어도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주의 권능의 날을 맞이하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을 맞이하는 주의 청년이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이 보이고 주님 앞에서 삽니다 우리들 마음의 눈은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비전, 돈, 가정, 스펙, 행복, 자녀. 그것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주님이 보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실 재입니다. 관념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은 곧 심판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심판하고 결정하시는 날입니다. 원래 왕이시지만 모든 만백성을 통해 왕의 왕으로 높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왕의 왕이시지 만 나의 왕 되었다는 말은 ‘당신이 곧 나의 왕이십니다. 당신이 제1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제 마음의 1등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일상에서 우리가 권능의 날을 맞이하고 있는가? 그것은 주님이 실제로 우리의 왕이 되셨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회사의 문제, 삶의 문제와 욕구 등이 제1현실 되었다면 주님의 권능의 날을 맞이하지 못한 것입니다.

청년기는 인생에서 최고의 에너지를 구가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청년이나 소년이나 장정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고 넘어지고 쓰러진다고 합니다.(사 40:30-31) 그래서 우쭐할 것도 없고 낙망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청년은 그래서 에너지가 넘치는 생물학적 개념의 청년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곧 마음속에 주님이 1등 된 사람입니다.

최소한 돈이나 자녀보다 주님을 더 바라보는 것이 주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 눈길을 의식하기보다는 주님을 더 바라보는 것이 주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주의 청년이 영롱한 새벽이슬 같다고 합니다. 새벽이슬은 밤의 끝자락에서 맺힙니다. 밤은 곤경, 어두움을 뜻합니다. 밤의 끝자락 에는 세상의 음습한 기운이 있습니다. 사탄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면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을 따라갑니다 ‘이것이 있어야 살아 이것이 있어야 좋아!’ 세상이 이렇게 말할 때 음습한 기운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이 음습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성경은 자녀를 마음에서 떼어냅니다. 목사니까 많이 이해하고 많이 참고 많이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은 썩어갔습니다.

성도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말을 함부로 하고 눈길도 사납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앙이 성숙하다는 분은 아마도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말도 사근사근하고 화제를 바꾸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도 말을 함부로 하는 그 사람이 입지 않을까요? 어떤 판단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속으로도 입지않고,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신앙이 성숙한 것입니다 분위기 깨지 않으려고 좋은 이야기하다가 망합니다. 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신앙은 개선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진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었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 습니다. 신앙의 성숙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존재론적 죄인에 대해 깨닫는 것이 먼저입니다.

즐거이 헌신한다는 것을 히브리어로 보면 ‘네다바’입니다. 즐거이 드린다는 뜻입니다 원형 동사형이 ‘나다브’입니다 아낌없이 드린다는 뜻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죽고, 다시 삽니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그것이 깨어지고 영롱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되어서 주님 바라볼 때 하나님의 엄위와 사랑과 공의가 다가옵니다. 그때 밀려오는 엄청난 에너지로 우리의 생명과 존재와 호흡을 주님께 송두리째 기쁘게 드리는 것이 ‘네다바’, 헌신입니다. 그때 오는 평강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성숙은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즐거이 내 삶 드립니다, 이 찬양의 가사가 ‘네다바’입니다. 내 영이 주의 임재 안에 갇혀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거룩한 옷을 입은 것입니다. 주님의 아름다움에 갇혔고 주님의 놀라운 은혜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다른 것을 꿈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히면 우리 영은 다른 것으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사사기 5:1-3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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