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이란 말을 이해할 때 우리는 흔히 ‘나에게 죄가 붙어 있다’, 그러니까 죄가 있고 내가 있고, ‘죄 따로 나 따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셨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나는 대로 ‘죄’를 고백하고 죄 보따리를 십자가 밑에 내려놓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토록 큰 사랑을 받고 이 무서운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았으니, ‘내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내가’ 주님을 위해 살아야지!”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기도에, 봉사에, 밤낮으로 이리저리 뛰는데도 영혼이 목마릅니다.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정죄가 내 안에서 끊이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의 노력과 최선의 벽에 부딪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요?
죄와 내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나의 생명 자체에 들어와 죄 따로, 나 따로가 아닌 ‘죄 곧 나, 나 곧 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는 내가 그냥 있으면서 죄를 떼어내는 작업을 할 수 없고, 죄인인 내가 죽는 길 외에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멀쩡히 눈 뜨고 살아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원형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실상 죽은 자요, 하나님께 반응하거나 진리에 반응하여 살 능력이 전혀 없는 ‘죄 장아찌’입니다. 장에 무를 박아 놓으면 무를 아무리 깨끗하게 씻고 잘게 썰어도 장이 무에 배어 장맛이 아예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장이 곧 무요, 무가 곧 장’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 존재가 죄의 장아찌가 되었다는 것은, 나의 죄 짐 보따리만 떼서 십자가 아래 놓을 수 없고 죄의 몸인 나, 즉 옛 자아가 그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한 인생인 죄인을 만나주실 때 주님은 어떤 부분을 고쳐주거나 채워주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 존재를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난 새 피조물로 만드는 새 생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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