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해 복음의 문이 열리다”

한 세기 동안 회심한 그리스도인 900만명에서 3억6000만명으로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아프리카에서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한 사람은 900만 명에서 3억6000만 명으로 늘어났다. 또 매월 1200개로 추산되는 새 교회들이 아프리카에서 개척되고 있다. 케냐의 마사이족 60만명(2000년대 중반) 중 약 9만 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이러한 통계는 아프리카에서 하나님 나라가 흥왕하고 있는 모습의 단면들이다.

지난 세대 100년 동안 아프리카는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많은 전도운동 경험했다. 한때는 그같은 전도운동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서구 선교사들의 경험 방식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아프리카 기독교는 아프리카식으로 변모했다. 20세기 끝무렵, 아프리카 전역의 수많은 종족들에게서 다양한 형태로 교회성장이 나타났다.

우간다 테소족

1875년 영국 탐험가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우간다에 처음 복음이 전파됐다. 테소(Teso)종족의 경우, 간헐적으로 전파된 복음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한 선교사가 이곳에 부임하면서 복음은 왕성하게 전파됐다.

그러나 1985년 군사 쿠데타로 밀톤 오보테 정부가 전복되면서 선교사들은 강제로 추방을 당해야 했다. 그 이후 90년대 들어 추방당했던 선교사들이 다시 현지에 갔을 때, 우간다는 전쟁으로 황폐화되고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 테소 종족의 어떤 교회도 살아남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테소족 신자들은 공포로 위축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다. 그들은 공포에 위축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테소족 신자들이 전한 메시지에 열정으로 반응했다. 혼란의 5년간 90개의 교회는 320개의 교회로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다.

동아프리카 마사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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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와 탄자니아 사바나 등지에 흩어져 살아온 마사이족은 서구 형식의 개발과 서구 개념의 근대화를 거부했다. 그런 마사이족의 용기와 주체성은 거의 독보적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가다.

이들은 아랍 노예 상인들과 식민 지배자들로부터 아프리카 내륙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선교사들은 오랜 시간동안 이들 마사이족의 복음화를 시도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주 적은 수의 마사이족 신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회심한 마사이족 그리스도인들은 종족 집단에서 대부분 쫓겨나 다른 도시로 이주해야 했다.

80년대 후반 이들 도시에 거주하는 마사이족 출신의 그리스도인을 만난 선교사들이 그들을 대상으로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 양육했다. 그렇게 훈련된 70명의 마사이족 복음전도자들은 다시 자신들이 떠나온 부족을 찾아갔다.

선교사들은 그 지역을 순회하면서 마사이족 복음전도자들과 유대 관계를 지속했다. 마사이족의 최대 15%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신자들은 대부분 초기 마사이족 원주민 평신도 전도자들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었다.

토고의 이페족

이페족은 토고와 베냉공화국의 사이에 위치하여 두 나라의 국경에 걸쳐 있는 부족이다. 10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들은 가장 복음화 되지 않은 남사하라의 비회교도 종족그룹이다. 토고에서 그들은 나라 인구의 약 36%를, 베냉에서는 약 55%를 차지한다.

한 선교사 부부가 80년대초 이페족을 찾아갔다. 첫 집회를 통해 수십명의 이페족 장년이 그리스도께 헌신했다. 이같은 경험을 갖게된 선교사 부부는 토고의 수도 로메로 돌아온 뒤 20여명의 전도자를 모집해 다시 토고의 외곽 마을을 찾아갔다. 3주 동안 다섯 개의 마을에서 복음을 선포했다.

이 기간 동안 5700명이 밤에 ‘예수’ 영화를 보고, 그중 400여 명이 주께로 헌신했다. 이 회심자들 중에는 이페족 마을의 추장과부추장도 있었다. 그 이후 본국 선교본부의 도움으로 선교사는 200여개의 다리를 세우고, 100여개의우물을 팠다. 이와 함께 복음 전도가 계속이뤄지며 1200명이 세례(침례)를 받았다.

에티오피아의 복음주의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사하라 남쪽의 아프리카 제국 중 유일한 토착 기독교 공동체의 본거지이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사로 가는 길에 빌립에게 세례를 받은 내시에게서 시작된 기독교의 역사가 오늘 에티오피아 정교회까지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 나라 기독교는 외부세계와 수백년간 단절된 채로 형성되어 왔다.

그 세월 동안 기독교는 많은 사람에게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로 인도하지 못하고, 민족적 정체성만 가꿔왔다고 한다.

1900년대 초반, 거듭남을 체험한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모임이 정교회 안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엠마뉴엘 무하버(공동체)로 알려진 이 운동은 기도와 말씀선포.연구, 그리고 하나님과 개인적 교제를 강조했다. 이 운동은 90년대 중반까지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이 참여하고 이 나라 기독교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성장했다.

그 이후본격화된 에티오피아 근대 선교를 통해 90년대 후반에 에피오피아 그리스도인 수는 무려 7만 명으로 추정될만큼 성장했다. 그 운동에 참여했던 성도들은 복음주의적 기도모임을 구성, 성경에 기초한 신학훈련을 받게됐다. 그렇게 28명으로 시작된 모임은 600명의 헌신자를 낳았다. 또 무교회지역에서 80여개의 교회가 세워지며 믿음의 훈련센터와 많은 가정교회로 이어졌다.

“아프리카 대륙의 부흥과 시사점”

아프리카는 지난 세기부터 최근까지 여러지역에서 다양한 하나님 나라의 부흥의 흔적이 새겨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반짝했다가 사라지거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전도운동들이 많다.

이는 크게 두가지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 가지는 너무 자신만만하게 대처했거나, 또 다른 한 요인은 너무 신중하게 대처한 결과라는 것이다. 너무 무리하게 진행된 전도운동이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의 시각은 외부의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교회를 과잉보호하면서 현지성도들이 미처 자생력을 키우지도 못하고 꽃이 시들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이다.

일례로 19세기에 파송된 아프리카 선교사들은 그들이 개척한 교회를 수십년 동안 현지 성도들에게 목양을 위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현지 지도자들이 미처 목양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선교사들이 가부장적인 권위의식을 고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선교사들은 여전히 정통교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며, 아프리카 성도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통해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도자가 해야할 바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몇 년씩 그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복음을 받은 그들을 주의 말씀과 성령께 위탁하고 과감하게 그곳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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