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육아라는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정신이 없었다. 내 아이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었다. 이 아이를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없어 매일 벅찼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의 마찰도 잦아졌다. 반복되는 다툼 속에 남편의 사랑이 의심스러웠다. ‘애초에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 아니야? 아니면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졌나?’
하루는 별것 아닌 문제로 이야기를 하다 금세 심각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그동안 쌓였던 것이 폭발했다. 남편의 변심에 대한 대서사시를 읊으며 떠들어댔다. 실컷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에 당연히 남편이 먼저 사과할거라 믿었다. 이제 자신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겠지. 그런데 남편이 대뜸 “당신은 나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었어?”라고 물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라 당황했다. 여태껏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남편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표현했는데 이 무슨 기가 막힌 질문인가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 질문은 내가 남편에게 늘 하는 이야기의 본질과 같았다. ‘이러이러한 거 보니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에게 관심이 없어. 마음이 변했어’ 등등 남편의 말과 행동, 여러 가지 태도를 증거 삼아 코너로 몰고 갔다. 정작 ‘나는 남편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었을까? 남편 입장에서 내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철석 같이 믿고 있었다. 나의 마음을 남편에게 아주 잘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헌신과 사랑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었노라고.
남편의 질문이 주님의 질문으로 들려졌다. “너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었니?” 주님의 물으심에 잠시 시간을 갖고 잠잠히 묵상했다. 처음엔 충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수치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사랑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에 빠진 자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게 되었다. 순간 통곡이 터져 나왔다. 오로지 내 편에서, 내가 익숙한 방식대로 일방통행했던 사랑이었다. 아니 사실 사랑이라는 말을 감히 붙일 수도 없는, 사랑으로 위장된 내 만족과 고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삐뚤어져 있었으니 남편에 대한, 그리고 아이에 대한, 아니 모든 이에 대한 내 사랑이 온전하고 진실했을 리가 없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 15:23)
주님이 원하는 사랑법은 순종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은 순종이었다. 주님이 먼저 순종하심으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들에게 할 사랑은 순종뿐이었다. 정작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아닌 내 아집으로 마음대로 한 사랑이었다면 그게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죄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다른 어떤 것보다 말씀에 순종했을 때 주님이 얼마나 그 순종을 귀하게 받으시고 기뻐하시는지 하루하루 더 깊이 배우고 알아가는 중이다. 물론 남편을 대할 때도 이전보다 다르게 내 태도와 마음을 먼저 살피게 됐다. 그리고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닌, 주님이 말씀하시고 순종하라 하신 사랑이 무엇인지 기도하게 되고 구하게 되고 순종하기까지 매달리며 살아가게 하신다. 자기 확신에 빠져 제대로 된 소통마저 막혀버렸던 자에게 주님은 눈에 비늘을 벗겨주시고 내 실체를 확인하는 은혜를 주셨다.
앞으로도 더 많이 책망받고 죄 된 실존을 마주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해질 때까지 빛 된 주님 앞에 다 드러나길 소망한다. 주님이 보여주셨던 완전하고 온전한 십자가 사랑. 그 사랑을 받은 자답게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로 서도록 주님 계속해서 일하여 주옵소서! [복음기도신문]
유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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