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마을이라는 단체가 시작된 지 12년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한 한 분(이천영 목사)을 통해서 여러 고려인 가족들이 광주로 내려와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이들과 함께 교회가 세워지고 다양한 필요들을 따라 움직이면서 지금 광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수는 3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안산이나 경주 혹은 부산, 인천, 서울 등에도 있지만, 광주 광산구 월곡동이라는 단일 지역에 가장 많은 고려인이 살고 있습니다. 이 동네의 90%가 고려인 등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이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있습니다. 직업 상담, 부동산, 병원, 유치원, 학교, 러시아 식당 등 생활에 필요한 기관이나 시설들은 대부분 들어섰습니다. 고려인마을이라는 비영리단체(NGO)를 통해 이런 기반시설이 차츰차츰 갖춰지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매 주마다 러시아어로 드려지는 예배, 교회가 이 공동체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적 특성으로 이곳에는 국내에 입국한 고려인 가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부모들과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된 고려인 1.5세 즉, 다음세대 교육은 가장 시급하게 돌아봐야할 영역이 됐습니다.
갑작스런 한국행, 이주민 자녀들의 문화충격
이주민 1.5세들은 부모님의 갑작스런 이주에 따라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때문에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더욱이 막노동이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며 맞벌이를 하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정상적인 양육을 받기 어렵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살아가면서 삶의 태도나 영적인 상태가 너무나 비참합니다.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술, 담배, 문란한 성 생활 등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입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주민으로 복음 때문에 이 땅에 들어와 살게 된 저는 우연히 이곳 고려인마을에 관한 소식을 듣고 찾아와 이들 청소년을 만나게 됐습니다.
2년 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주일학교는 전임 사역자 없이 명맥만 유지한 채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자영업을 하시는 집사님의 섬김으로 주일학교가 운영되었습니다. 저는 새날학교라는 이주민학교를 통해 그나마 아이들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주님의 때가 되어 올해초 1월 5일에 고려인지역아동센터가 설립됐습니다. 저와 카자흐스탄 출신 선교사 1명, 한국인 선생님 등 세 명이 이 센터를 실질적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여 동안 꾸준하게 만남을 이어온 고려인 아이들은 아동센터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방과후학교처럼 오후 4시부터 저녁까지 진행된 첫 모임에 25명 정도 모였습니다. 학생 수가 조금씩 불어나 6월말 현재 이 학교에 등록한 아이들은 모두 100명이 넘었습니다. 그 중 70여 명의 아이들이 매주 주일예배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일 40여 명이 말씀과 기도로 양육 받는 모임이 형성되었습니다.
또 지역에 있는 십자가사랑교회의 도움을 받아, FC글로리아축구단에서 활동하는 복음의 증인들을 만나 티파티 모임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매일 모임에서 말씀을 나누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도 틈틈이 아이들과 다양한 믿음의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세 명의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전심으로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센터 선생님들은 집에서 부모와 쉽게 교제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때로는 아빠 엄마가 되기도 하고, 형이나 삼촌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센터에서 가르치는 것이나 대화 속에 담겨있는 모든 가치들을 마음으로 받습니다. 물론 옛사람의 모습이 여전히 있고 다듬어지지 않은 태도도 있지만 센터에서 하는 말이라면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받게 됐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복음으로 회복되는 이주민 다음세대
아이들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듣는 음악, 쓰는 말, 관리하는 SNS 페이지도 달라졌습니다.
다시는 세상 음악을 안 듣고 오직 찬양만 듣고 찬양만 부르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또 예쁘고 멋진 자기 사진들로 채웠던 SNS 대문 사진을 지우고 예수님의 사진을 게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삶에서 향기로운 꽃처럼 하나씩 예수 생명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자기 사진들을 다 삭제하고 예수님 사진, 신앙 고백들, 신앙 영상만으로 자기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주에 꼭 하고 싶은 일이나 프로그램이 뭐냐고 물어보면 ‘예배’라고 대답합니다. 예배에 대한 사모함, 주님에 대한 갈급함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 학생들은 저희 학교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 음악 교실, 연극 교실을 섬기기 위해 오신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이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미술치료 수업시간에 원하는 그림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제안에 어떤 학생이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왜 예수님을 그렸냐고 묻자 곧바로 자신을 변화시킨 복음을 얘기했다고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다양한 모습으로 모든 수업시간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꿈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압니다. 한국어도 못하고 지식도 많이 부족하고 정서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꿈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또 선교사가 되겠다고 자기 꿈을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힙니다. 축구선수든 통역사든 어떤 직업을 갖든 선교적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나고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다시 세상 유혹에 빠지는 아이들이 나타납니다.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는 자살 시도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쓴 소리를 하는 선생님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협박하는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도저히 변화되지 않지만 포기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나는 지도자 자격이 없는 것 같아.’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기도 합니다. 교사들 안에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위기의 순간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주님이 항상 승리하십니다.
고려인 다음세대가 한국 다음세대를 전도하기도
현재 이 사역을 섬기는 저희들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따금 한국인 사역자들이 방문해 잠깐이나마 말씀으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마음을 나눌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사는 두 사람이 전부입니다. 100여 명의 아이들을 일일이 상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셈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사역입니다. 건강에 한계가 오기도 하고, 최근 과로로 병원신세를 진 사역자도 있습니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 이주민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주님이 그들에게 힘을 주셔서 이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소망이 있는 것은 이주민 다음세대가 살아나면 열방만 아니라 한국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몇 주 전 사진 수업이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고려인 아이들과 탈북민 아이들이 함께 수업도 듣고 믿음의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탈북 아이들과 활발한 교제가 시작되면서 한국 아이들도 그 수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복음을 모르는 아이들이 바로 한국 아이들이었습니다. 고려인 아이들 중에는 주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에 열정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 고려인 아이들이 그 한국 친구에게 복음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복음은 온 세상에 미칠 기쁨의 소식이기에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너무 행복합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 수준의 일을 하면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GNPNEWS]
안드레이(고려인지역아동센터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