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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존엄하게 죽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사진: Unsplash의 National Cancer Institute

소중한 친구 바이올렛이 호스피스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녀를 제대로 사랑하겠다고 결심했다. 전직 외상 외과 의사로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을 보았고, 피를 들이마시며 마지막 숨을 쉬는 환자들도 보았다. 홀로 두려움 속에서 죽는 사람도 있지만 사랑을 속삭이는 배우자의 팔에 안겨서 죽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보내는 바이올렛의 마지막 순간이 사랑으로 가득 차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그녀의 정체성을 반영하기를 바랬다.

바이올렛은 호스피스에 들어간 직후 의식을 잃었지만, 몇 시간이 며칠로, 며칠이 일주일로 이어지며 계속해서 생명을 이어갔다. 죽어가는 사람을 수십 번이나 보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긴 시간은 내게 충격이었다. 한때 전기톱을 들고 거친 땅을 개간했던 강하고 씩씩한 여성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 제발 그녀를 본향으로 데려가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존엄하게 죽기?

존엄사는 무슨 의미일까? 추상적으로, 우리는 모두 가족에 에워싸여서 최소한의 고통과 불안을 느끼면서 존엄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어지러운 현실에 대비하려고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어도 죽음이라는 과정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점은 “존엄사”라는 문구와 안락사를 섞을 때 대화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안락사 또는 의료적 안락사 지원(MAID)의 경우에, 말기 환자는 스스로 내린 처방(의사조력자살, PAS) 또는 의사가 놓는 죽음의 주사(안락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끝내는 데 필요한 도움을 요청한다. 두 가지 관행 모두 존엄성과 자율성을 동일시한다. 예를 들어, 의사 지원 자살을 옹호하는 단체, ‘Compassion and Choices’는 어떻게 해야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지침을 제공한다. “확실한 마무리”는 “자신이 즐겼던 삶에 걸맞은 삶의 마지막 경험을 계획함으로써” 가능한데, 거기에 필요한 것이 “사랑, 목적, 그리고 대리인(agency)”이라고 설명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존엄사 여부는 힘과 목적, 대리인에 달렸다. 따라서 약하고, 삶의 목적을 분별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길을 결정할 수 없을 경우에 인간의 존엄성은 시들어질 수밖에 없다. 슬프게도, 캐나다의 MAID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조력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바로 이 관점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에 MAID 수혜자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언급된 고통의 원인은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능력의 상실(86.3%)이었다. 두 번째가 목욕과 옷 입기 같은 기본적인 일상 활동의 불가능(81.9%)이었다. 통증 문제가 여전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였다(59.2%). 이런 통계가 보여주는 사실은 조력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삶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다름 아니라 의존과 무활동이라는 사실이다.

존엄성에 관한 성경적 관점

성경은 우리의 가치가 능력이나 자율성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창 1:26-27)로서 인간의 존엄성은 타고난 것이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걷거나 먹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존엄성이 위협받지 않는다. 약함과 고통이 존엄성을 앗아가지 못한다.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고 완벽한 성품에서 비롯한다.

캐나다의 중환자 치료 의사인 이완 골리거(Ewan Goligher)에 따르면, 조력사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존엄하게 하기보다는 가치를 떨어뜨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치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의사의 도움을 받는 죽음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대응(How Should We Then Die? A Christian Response to Physician-Assisted Death))’에서 이렇게 썼다.

조력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선택의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사람의 가치를 옹호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의도적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가 과연 진정으로 본질적인 인간적 가치와 일치하는지 여부이다. 사람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들면서 사람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조력사에 대한 지지는 필연적으로 사람에게 외재적 가치는 있지만 내재적 가치는 없다는 견해를 드러낸다. 사람은 중요하다, 그러나 진짜로,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37-38, 40)

성경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의상 존엄한 죽음이라는 말은 결코 인간 삶의 내재적 가치보다 자기 결정을 우선시할 수 없다. 오히려 필멸의 삶이 가진 신성함을 존중하는 동시에(출 20:13), 우리의 시간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사 40:6-8). 고통받는 사람에게 자비와 연민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동시에(마 22:39; 미가 6:8),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소망에만 집중하는 것이다(요 11:25-26).

우리는 독립, 성취 또는 자율성이라는 명확한 목적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다(창 1:26-28).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진정한 존엄사는 주님에 대한 의존성을 염두에 두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라도 그를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존엄함을 지키기

죽음은 마지막 원수이다(고전 15:26). 아무리 구체적으로 준비를 해도 죽음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힌다. 왜냐하면 죽음은 애초에 하나님의 창조설계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토록 괴로운 죽음 앞에서 어떻게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결코 생명을 앗아갈 권한이 없다. 그러나 사전 치료 계획을 통해 우아하게 마지막 날을 맞이할 수 있다. 의사 및 목사와 사전에 논의한 치료팀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치 있게 보내도록 도울 수 있다. 몇 달 남지 않은 환자에게 호스피스 케어는 다양한 지원과 지침을 제공한다. 그들이 없다면 그 시간은 공포로 가득할 것이다. 이 모든 계획은 하나님께서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신다는 진리를 드러낸다(창 50:20; 요 11:3-4).

나는 이 모든 아름다운 과정이 친구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무너지는 마음에 더 이상 바이올렛의 침대 옆에 있을 수 없었다. 병실을 나가려는 바로 그때 여자 원목이 부드럽게 내 어깨를 만지며 말했다. “삶과 죽음의 전환기를 바라보는 이 자리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요. 나는 항상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친절한 미소가 가득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분의 영광에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에 이 자리에 함께 있다니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고, 원목은 병실을 나갔다.

다시 바이올렛과 단둘이 있을 때, 위로의 물결이 밀려왔다. 그녀의 호흡이 점점 가늘어졌고, 조금씩 그림자처럼 희미해져 갔지만, 나는 여전히 친구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다. 나는 찬송가집을 펴서 바이올렛이 가장 좋아하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불렀다. 서른 번째 부를 때에는 눈물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이 바이올렛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부르고 또 불렀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녀를 본향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불렀다. 그녀에게 존엄성과 가치, 그리고 사랑이 넘치고 있음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계속해서 불렀다.

그날 저녁, 눈이 붉어진 채로 병실을 나갔을 때, 바이올렛의 간호사가 내게 물었다. “그 노래 말이에요. 당신 친구가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사랑스럽고 씩씩한 바이올렛을 통해 역사하셨다. 심지어 의식을 잃고 무력하게 누워 있을 때도 하나님은 사랑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이올렛을 들어 쓰셨다.

불치병이 주는 슬픔과 두려움에 직면해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약함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What Does It Mean to Die with Dignity?

캐서린 버틀러(Kathryn Butler) | 캐서린 버틀러는 중증외상외과의였다가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며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The Dragon and the Stone의 저자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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