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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무슬림들을 사랑하는 한 그리스도인이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보내는 복음 편지(4)

사진: Pixabay

밖에서 보는 이슬람(114)예배에 관한 우리의 착각

앗쌀람 알라이쿰!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평안을 기원합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예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나 무슬림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최선의 의무가 바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나서 오늘 예배가 ‘좋았다.’, 혹은, ‘잘 드렸다.’라고 서로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예배 혹은 잘 드린 예배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예배가 있다는 의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예배에 관해서 평가하고 싶다면, ‘오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셨다.’ 혹은, ‘받지 않으셨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인생은 매우 짧고, 유한합니다. 그 짧은 시간을 우리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원치도 않으시는 예배를 드리면서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예배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창조된 이후 처음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드린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성경 창세기 4장은 이와 관련한 기록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창세기 4:1~5)

위의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예배)는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예배)는 받지 않으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4~5절). 이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예배)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제사(예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하나님께서 욕심 많은 신이어서 우리가 무엇을 바치든지 무조건 다 받으시는 신이었다면, 우리는 전혀 걱정할 필요도 없으며, 무조건 많이 바치고, 드리면 되는 것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서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이기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성경 기록을 보면, 가인과 아벨과 가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둘 다 자기가 일하는 일터와 환경에서 나온 것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은 한 사람으로부터는 받으셨고, 다른 한 사람으로부터는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믿음의 제사였습니다. 그 당시 제사는 오늘날 우리의 ‘예배’라는 말이며, 오늘날에도 믿음을 가지고 드리지 않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히브리서 11:1). 또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히브리서 11:6)라는 것을 얘기합니다. 아벨이 드린 제사는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제사였습니다. 반면에 창세기 4장 7절에 보면, 가인은 행실도 올바르지 않았고, 죄의 유혹 속에 있었고, 하나님께 대드는 행동 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고 있었으며, 결국 마음속 죄악을 실행에 옮기며 아벨을 죽여 버리고 맙니다.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냐, 안 받으시냐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벨은 하나님께 그가 가진 첫 것을 드린 제사였습니다. 여기서 첫 것이란 가장 귀한 것이며, 가장 먼저 주님을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와 최우선으로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보고 계시며, 우리가 무엇을 드리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아벨의 삶이 가인과는 달랐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창세기 4장 4절에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제물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제물과 함께 드린 사람도 함께 받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삶과 함께 받으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우리의 삶은 그분이 받으시기에 합당한지를 함께 묵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그분을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마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합당한 삶을 함께 드릴 때 우리 예배도 받으시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좋은 모양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도, 멋진 옷을 입고 드려도, 아무리 많은 헌금을 드려도, 아무리 양을 자르면서 회개하는 모양을 보여도 우리 하나님은 절대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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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받으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까?’, ‘받으시면 좋겠다’라고 기대하면서 예배를 드리시지는 않으십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매 주일 교회나 모스크에 가서 일어나고 앉으면서 기도하고, 설교 듣고, 헌금 드리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신약 성경 요한복음 4장의 기록에서도 우리는 예배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장 23~24절)

이 성경 말씀은 사마리아의 한 여인 이야기인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 즉,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장소와 예배 의식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 여인과 같은 생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장소를 가장 거룩하게 만들려고 외향적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적인 거룩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하나님께서 더 잘 받으실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나 모스크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으로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예배만 거룩하게 드리기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거룩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 이외의 삶에서는 세상에서 이웃을 미워하고, 서로 싸우고, 거짓말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불신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처럼 살다가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되면 교회와 모스크를 찾으며 다시 한번 거룩한 모습으로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시 남은 시간 동안은 죄짓고, 다시 회개하고, 다시 죄짓고, 다시 회개하면서 끝없이 이중적인 삶을 반복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는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 예배가 신령, 즉, ‘성령’과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려질 때만 받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배를 드리는 그 시간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남은 시간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며, 예배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성령과 그리스도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온전하게 드려질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진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생각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말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 마음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행동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돕고, 희생하며, 겸손히 섬기고, 사랑하는 삶의 모습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이러한 삶도 없으면서 웅장한 장소나 화려한 의식, 거룩한 모습만으로 드리려는 어떠한 인간의 예배도 하나님께서는 받으시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곳에서 결코 하나님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의 남은 모든 삶을 예배로 받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그분께 늘 감사를 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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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 전)국립 앙카라대 교수, 현)아신대(ACTS) 중동연구교수, 한국외대, 장신대 신대원, 국립 이스탄불대 역사학 석사 및 박사 | 저서: ‘밖에서 본 이슬람, (1)무슬림 이해하기’, (2022, 라비사북스). ‘벌거벗은 세계사(경제편)’, 공저, (2023, 교보문고), ‘하나님의 운동(Motus Dei)’, 공역(2024, 라비사북스), ‘밖에서 본 이슬람, (2)이슬람 이해하기’, (2024, 라비사북스,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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