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호 | 믿음의 삶
십자가 복음을 만난 이후 이제는 선교적 존재로 살리라 결단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복음사관학교(GNA) 훈련생을 마치고 협력간사로 참여하게 됐다. 믿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훈련을 통해 평소에는 몰랐을 ‘나’를 보게 됐다. 파스칼의 말처럼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 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주님은 나를 발견하기 위한 작은 벌레를 예비하셨다.
어느 날 강의를 듣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내 눈앞에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가던 길을 갔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잡겠지.’ 이것이 내가 가진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날 청소 시간에 한 선교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시 지나가는 벌레를 보고 치우시나요? 아니면 그냥지나가나요?” 이 질문 앞에 순간 마음이 흠칫했지만 애써 이 문제를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또다시 숙소 복도에서 벌레를 보게 되었다. 그때도 동일하게 그냥 지나쳤다. 마음속에 합리화가 일어났다. “잡고는 싶은데 지금 내 수중에 휴지가 없잖아. 그리고 지금 해야할 일이 있어서 바쁘잖아.” 나는 휴지가 없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그 주간에 메시지가 선포됐다. 제목은 ‘못 본체하지 말라’였다. 신명기 22장 1~4절이 본문 말씀이었는데 이 말씀 가운데 ‘못 본 체하지 말고’라는 문장이 3번이나 나왔다. 형제의 소나 나귀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찾아주고, 돌려주고 일으켜 주라는 성경 말씀이었다. 못 본 체하고, 못 들은 체하는 것은 결국 나를 속이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것은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일로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를 듣는 그날 나는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나 자신이 얼마나 나를 합리화하며 못 본 체하며 넘어가려는 자인지를 보게 하셨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려는 태도였음을 비추어 주셨다. 왜 이러한 태도가 드러났을까? 결국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내 원함이 더 컸기 때문임을 알려주셨다.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 나를 보게 하셨다. 내가 얼마나 나를 합리화하는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보게 하셨다. 이것은 휴지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였음을 알려 주셨다. 휴지가 없는 게 아니라 지체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한 가지를 더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못 본 체하지 않으셨다. 길 잃은 소나 양도 못 본 체하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귀한 우리들을 못 본 체하지 않으셨다. 이것을 확증한 사건이 바로 십자가였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못 본 체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다. 십자가에서 죄인인 나를 살리시려고 예수님의 생명을 대가지불 하신 것이다.
이처럼 주님은 나의 일상의 작은 일 하나에도 그분의 마음과 성품을 발견하도록 하셨다. 그날 이후 주님은 나의 마음을 바꾸어주셨다. 일상의 작은 영역에서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셨다. ‘내가 아닌 누군가 하겠지.’라는 마음에서 지체를 돌아보고 먼저 섬기는 마음을 주셨다. 이렇게 주님은 오늘도 일상의 작은 일들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닮도록 만드신다. [복음기도신문]
박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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