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쟈라이 사역자 가하오의 순교로 복음의 문이 열리다”

▶ 하천에서 아이에게 세례를 주고있는 장면(출처:순교자의 소리)
▶ 하천에서 아이에게 세례를 주고있는 장면(출처:순교자의 소리)
▶ 하천에서 아이에게 세례를 주고있는 장면(출처:순교자의 소리)
베트남 선교 열전(5) – 베트남 전쟁 전후시기 선교 이야기

이 연재는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베트남에 입국한 찰리, 에그롱 선교사 부부가 전쟁의 참화 가운데에서 복음의 통로가 된 과정과 베트남 주민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대하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베트남의 현대 선교사(史)를 이들의 회고록 ‘베트남에 사랑을 담아’(To vietnam with Love)의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정령신앙과 물신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쟈라이 족 출신 가하오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쟈라이 족 크리스찬들의 리더였고 쁠레이꾸 모 교회의 사역자였다. 그는 겸손했지만 여러모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역자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는 때때로 셔츠 자락을 밖에 내놓고 신발끈이 거의 풀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루는 나에게 다가와 “물체가 두 개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태연하게 “뱃속의 회충을 죽이기 위해 가솔린을 한 컵 마셨다.”고 했다. 나는 “가솔린을 마신 후에는 성냥을 그어 같이 먹어야 뱃속의 모든 해충이 다 죽는다.”며 농담을 했다. 하루는 마을을 불태우겠다며 횃불을 들고 돌아다니는 미친 사람을 붙들고 기도해 나은 일도 있었다. 어쨌든 가하오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1961년 2월, 우리 가족이 쁠레이꾸에 들어온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가하오가 고향에서 온 전갈을 가지고 찾아왔다. 고향마을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작별인사를 하러 온 그의 얼굴에 근심이 어려 있었다. 가하오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아내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지난 2주가 마치 수년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역자가 2주 전 고향마을로 간 후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와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과 가하오의 형제 브라오가 마을에 들어가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거짓 소문에 사역자 희생

가하오는 35살의 젊은 사역자로 네 아이의 아빠였다. 만삭인 그의 아내는 또 다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역시 사역자인 브라오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었다. 그에게마저 무슨 일이 생긴다면 20만 명에 가까운 전 부족의 성도들을 도울 수 있는 현지인 사역자는 단 세 명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전통 사상에서 떠나 주께로 돌아오라는 가하오의 구령의 외침을 듣기 싫어한 일부 마을 사람들이 그가 미국의 CIA를 위해 일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을 노렸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그들은 가하오에게 들이닥쳐 손과 팔을 등 뒤로 묶은 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는 끌려 나가면서도 “너희가 어떤 일을 해도 나에게는 달라질 것이 없다.”고 외쳤다.

곧 베트콩들이 칼로 찌르는 아픔 속에서 가하오는 “쟈라이 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를 따를 것이다.”라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외쳤다. 당시에 그의 예언적 말씀을 이해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순교자들은 베트남의 소수 부족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러브 스토리를 미리 예언한 것이었다. 그의 순교는 이후 60년이 넘도록 쟈라이 족과 다른 인근 부족들이 계속 주께 돌아오는 길을 열었다.

더욱 더 담대하게

나는 이 소식 앞에서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분노가 치밀었다. 죄 없는 사람을 그토록 야수처럼 고문하여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은 그들은 누구인가? 그런 폭압 중에서도 믿음을 부정하지 않고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사역자 없는 쁠레이꾸의 교회들은 누가 지킬 것인가? 나와 아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갑자기 죽음과 희생이 나에게 실제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내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붉은 도당들이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부온메 투옷에서는 정부 관료들의 집을 포위하여 7명이나 죽였고 그 중 한 명은 지방 의회의 쟈라이 족 대표였다. 그는 겨우 일 년 전에 예수님을 영접한 충성스러운 증인이었다. 사탄이 쟈라이 족으로부터 교회의 흔적을 말살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완벽하신 계획이 성취될 것을 믿는다.”

우리는 공적인 관점에서는 전보다 더욱 조심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한 삶을 전하는 데는 더욱더 담대했다. 우리는 가하오의 순교 사건으로 다시 태어났다. [GNPNEWS]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20241101_Bible
성경 앱 '유버전', 7억 2700만 회 다운로드
20241030_Youngcheol Oh
[오영철 칼럼] 예상치 않은 선교적 만남
thai-mission-241030-1
태국 치앙마이 100년 만의 홍수… 도움의 손길 절실
20241023_God Behind Bars
美 교도소, 복음 들은 재소자 120명 예수님 영접

최신기사

‘미국의 선택’ 시작됐다…뉴햄프셔부터 하와이까지 이젠 결단
[GTK 칼럼] 다른 이름(2): 정죄의 메시지
젓가락질 하는 인도 소녀들을 보며 떠올리는 단상
美 사법부, 청소년 성 정체성 긍정하도록 권장... 부모들, 신념에 휘둘리는 '사법 정의 훼손' 우려
[정성구 칼럼] 죽었나 살았나
스페인 복음주의자들, 홍수 피해 지역 섬기면서 기도 요청
美 텍사스, 태아 생명 보호법에도 낙태 여행으로 태아 생명 위협받아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U.S
‘미국의 선택’ 시작됐다…뉴햄프셔부터 하와이까지 이젠 결단
Judge 20230328
[GTK 칼럼] 다른 이름(2): 정죄의 메시지
308_2_1_Photo News(1068)
젓가락질 하는 인도 소녀들을 보며 떠올리는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