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BBC·AFP, 5월 일가족과 어선타고 탈북한 김씨 형제 인터뷰
“방역수칙 어기면 노동교화소 보내기도…감염 의심자 나오면 마을전체 격리”
북한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경을 봉쇄한 뒤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면서 굶어 죽는 주민들이 속출했다는 최근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증언이 나왔다.
북한 당국은 또한 방역수칙 위반자를 노동교화소로 보내고 남한 문화 콘텐츠 공유자를 공개 처형하는 등 통제 수위를 높여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고 이 탈북민은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6일 서울발 기사에서 지난 5월 일가족과 함께 어선을 타고 서해로 탈북한 30대 김 모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북한의 상황을 조명했다.
김씨와 그의 임신한 아내, 모친, 남동생 부부와 어린아이들 등 일가족 9명은 지난 5월6일 밤 어선을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북에서 암시장에 물건을 내다 파는 일을 했다는 김씨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근 수년에 대해 “많은 괴로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유행 초기에는 북한 주민들이 몹시 겁을 먹었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전 세계 각국에서 감염자가 죽어 나가는 모습을 방송하면서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지 않으면 국가 전체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주민은 방역수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노동교화소로 보내지기도 했다고 한다.
감염 의심자가 나오면 그 마을 전체가 봉쇄됐다. 해당 지역 주민 모두가 격리돼 먹을 것도 제대로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김씨는 전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은 국경 폐쇄였다고 한다.
김씨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오랫동안 불안정했지만 국경 폐쇄 이후 수입량이 줄고 가격이 급등하면서 모든 이들의 삶이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봄부터는 사정이 더 나빠져 굶어 죽었다는 사람들의 소식이 잇따라 들려왔다.
김씨는 지난 4월에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농부 2명이 아사했다고 말했다.
그에 앞서 지난 2월에는 이웃 동네의 한 노부부가 굶어 죽었는데 쥐가 시신 일부를 갉아먹는 바람에 경찰이 초기에 살인사건으로 오인했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BBC는 김씨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을 별도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세부 사항은 다른 소식통들의 전언과 최근 북한 상황에 대한 국제기구 보고서 등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최근 남한의 문화 콘텐츠를 강하게 차단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당국의 단속과 처벌 수위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으며, 지난해 4월에는 알고 지내던 22세 청년이 공개 총살되는 것을 강제로 봐야 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남한 노래 70곡과 영화 3편을 친구들과 공유했다는 이유로 이 지인이 본보기로 처형됐다면서 “모두가 겁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반사회주의 행동’ 단속반이 거리에서 주민들을 임의로 수색하고 위협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이들이 우리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다면서 ‘모기’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북한은 2020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전원회의에서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고 주민들이 남한을 비롯한 외부 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강력하게 차단하고 있다.
휴전선 인근 지역에 살아 어릴 때부터 남한 TV를 몰래 보고 자랐던 김씨는 갈수록 억압적 체제에 환멸을 느끼게 됐고 특히 코로나19로 당국의 통제 수위가 높아지면서 불만이 커졌다고 했다.
김씨는 갈수록 국가가 코로나19의 위험을 과장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많은 이들이 국가가 우리를 억압할 핑계를 찾은 것이라고들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탈북을 결심한 김씨는 어선을 소유한 남동생과 함께 7개월에 걸쳐 꼼꼼하게 탈출 계획을 세웠다.
그의 모친과 임신한 부인은 처음엔 탈북에 반대했지만 “우리 아이가 이 지옥에서 살기를 원하느냐”는 말에 결국 동의했다고 한다.
김씨 가족은 날씨가 험해 경비가 뜸하던 5월6일 밤에 출발했다. 동생네 아이들은 수면제를 먹여 재운 뒤 자루 안에 숨기고, 지뢰밭을 지나 몰래 대어 놓은 어선을 타고 출항했다.
일행은 해안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무렵 전속력으로 남쪽으로 향했다. 배 한척이 뒤에 보였지만 따라잡히기 전에 NLL을 넘을 수 있었고 약 두 시간 뒤 우리 해군에 발견되자마자 귀순 의사를 밝혔다.
북한 주민이 가족 단위로 어선을 타고 NLL을 넘어 귀순 의사를 밝힌 것은 2017년 7월 이후 약 6년 만이었다.
김씨는 남으로 넘어온 순간에 대해 “모든 긴장이 풀려 쓰러질 것 같았다”며 “하늘이 우리를 도와준 덕에 계획대로 탈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부인은 지난 10월 출산했고 가족들은 그즈음 북한 이탈주민 정착사무소(하나원)를 나와 아파트로 이사했다. 모친과 부인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국 문화에 익숙했던 김씨는 남한이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동생 김씨도 AFP와의 인터뷰에서 탈북을 통해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열린 탈북민 취업 박람회에 참가한 그는 항해사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동생 김씨는 북에서 오랜 기간 어업에 종사했지만 인맥과 배경이 없어 항해사가 될 수 없었다면서 “여기(남한)에서는 노력하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하니 한번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위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